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얼굴이 있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 그 사람이 구체적인 한 명일 때도 있고, 막연한 다수일 때도 있다. 누가 됐든, 그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손이 달라진다. 조금 더 그럴듯하게, 조금 더 깔끔하게,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보여줄 글을 쓸 때,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부끄러운 감정은 숨겼고, 약한 모습은 지웠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꺼내지 않았다.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깔끔하지만 텅 빈 문장이었다. 읽어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고, 다시 찾아 읽고 싶은 구석도 없는 글.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글이었지만, 정작 나조차 감동하지 못하는 글이었다.
전환점이 된 것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쓴 글이었다. 어느 날 밤, 마음이 복잡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원망이 뒤섞여 있었고, 그것을 느끼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면 절대 쓰지 않았을 내용이다. 하지만 그날은 나만 볼 거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썼다. 검열 없이, 포장 없이, 떠오르는 그대로. 다 쓰고 나서 이상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마음속에 뭉쳐 있던 것이 풀어지는 느낌. 그리고 글을 다시 읽어보았을 때, 그것이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나다운 글이라는 것을 알았다. 꾸미지 않았기에 날것의 힘이 있었고, 보여주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거짓이 없었다. 그 글은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았지만, 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글이 되었다. 독자가 없는 글이 오히려 가장 진짜였다는 역설. 그것이 글쓰기에 대한 내 생각을 뿌리째 바꾸어 놓았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글에서는 실패가 없다. 서툴러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감정이 날것이어도 창피할 일이 없다. 그 안전한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평소에는 감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밑바닥을, 거기서는 쓸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쓴 글이, 결국 자기 목소리를 찾는 가장 빠른 길이 된다.
모든 글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 나만 읽을 글, 서랍 속에 넣어 둘 글, 쓰고 나서 지워도 괜찮은 글. 그런 글부터 써보자. 독자를 잊은 자리에서 비로소 나를 만나게 된다. 가장 솔직한 글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