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내 모습에 이불킥을 하는 게 전부라면 잘 살아온 인생이다
선천적으로 스스로의 못난 행동을 오래 기억하는 나는 잠들기 전 항상 내가 했던 실수들이 퍼뜩 떠올라 잠에 들지 못하곤 했다. 편안히 누워있다가 눈이 번쩍 뜨이고, 심장은 쿵쾅거려 괴로웠다. 보통은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상처를 준 것 같거나 사회적 대처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을 때의 기억들이었다. 대체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그 행동을 한 건 분명 나였지만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곤 했다.
늘 조심하려고 하는데도 이렇게 실수 투성이 인생이라니, 아무리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실수가 계속되고 미래의 내가 괴로워하게 될 것 같아 내일이 두렵기도 했다.
좀 더 세심할 걸, 내가 그런 것에 미숙하다는 걸 미리 깨닫고 연습이라도 해둘 걸, 하고 늘 씁쓸한 기분으로 잠들곤 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질책하고 자책하며 마음 속의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긴장한 탓에 평범한 말도 어색하게 나가기 일쑤였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히려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잔뜩 위축되어 웅크린 채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을 발견했다.
잘하려고 마음을 먹는다고 그게 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잘하고 싶은 마음은 부담으로 다가와 내 마음에 무거운 추를 매달았다.
무거워진 마음은 작은 행동에도 망설이게 되었고, 어색해진 행동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흔들리게 했다.
자신감을 되찾고 싶었지만, 막상 과거를 뒤돌아보면 실수들도 많고 후회되는 일들도 많아 잘해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과거가 증거가 되어 나를 관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다. 의도한 것이든, 우발적으로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고를 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행동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끝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삶을 살아가고 그 안에서 행복도 추구하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여기에 대해 답을 내리면 내 괴로움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을 고민한 결과 결국 답은 '무슨 일이 있었든, 앞으로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책망을 인정하더라도 그 과거에서 서서히 벗어나 삶의 시계를 다시 돌리는 힘은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어찌되었든 삶은 살아가야 하고, 망각의 힘을 빌린 희망이 마음 안에 깃들어 있어야 남아있는 시간이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어쩌면 이불킥 정도로 정리되는 과거를 가진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인생인가를 깨달았다. 남은 인생은 모르지만, 나는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인생을 훼손하지도 않았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게 잠에 들 자격은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돼.'라는 어디선가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 스쳐갔다. 나는 여전히 작은 실수를 되짚어보곤 한다. 하지만 그럴 땐 생각한다. 이런 일에 심장 떨려하는 게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온 삶인지를. 참 평범한 삶이다,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할 필요없다고.
가만히 되뇌이다 보면 마음이 금새 가라앉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