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면이란 건 없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아.
“나도 내가 이런 모습이 될 거란 걸 상상하지 못했어. ”
극작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누군가를 진짜로 자극하지는 않을 정도의 안정감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공연예술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끊임없이 논쟁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어떤 지점에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우월주의가 관극이라는 행위에서 발현된다면 공연예술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극 중 리비 퀸은 소위 말하는 팔리는 작품을 쓰지 못하는 작가이며 지금은 그 무엇도 아닌 존재로 자신을 정의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재능이 있다는 주변의 권유에 극작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재능이 부풀려지는 걸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된다. 예술가들이 느끼는 불안정함에 대한 그녀의 감정 묘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려 아둥바둥거리며 한없이 추락하는 그런 인생을 살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녀였다.
그렇게 삶의 스위치를 끄기를 고민하던 리비는 솔즈베리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소년 데클란 스완을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서 반짝거리던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된다. 재능이란 건 달콤하지만 위험하다. 재능이라는 희망에 매몰되어 결국 절망 속에 살고 있는 그녀가 같은 방식으로 데클란을 자극한다. 그녀에게 데클란은 극작을 위한 뮤즈이자 그녀가 갈망하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을까. 예술은 자신과는 다른 집단이 향유하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데클란에게 리비는 예술이란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닌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난 너를 통해 옳은 일을 하려는거야.”
적대적이고 방어적이던 소년이 처음으로 누군가의 관심을 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그의 이야기를 리비는 글로 써내려 간다.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알콜 중독자죠.
7년 전에 목 매고 죽었어요.
근데 사람들이 그래요, 저도 아빠처럼 끝날 거래요.
누가 어디 써 놓기라도 했나.”
리비와 데클란의 관계가 작가와 뮤즈 관계이든, 사랑이 섞인 애착 관계이든 상관없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그녀를 신뢰하고 있다. 그녀가 마치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 준 구원자라도 된 듯. 그녀는 그 무게를 알았어야 했고, 책임을 느꼈어야만 했다.
데클란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세상에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는 모두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을 통해 발현되는 모든 것들에 더 예민하고 집착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만 했다.
“나 목 매고 뒤져요?”
“아니, 네가 아니고 등장인물이 그런 거야.
내 생각엔 이 결말이 가장 좋은 것 같아.
극적인 장면이 있어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
내가 너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 알잖아.”
“나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면서 봐봐 이미 결말을 다 써놨네.”
숨막혀 토할 것 같아.
데클란은 리비의 글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느꼈을 지 모른다. 자신을 소재로 한 연극 대본을 보며 마주하기 싫었던, 목 매고 죽은 아빠와 결국 다를게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본인도 예상했던 그런 삶,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버릴 것 같은 사무치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소년의 모습을 작가는 보지 못 했다.
몹쓸 짓 끔찍한 짓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준다고?
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도 목소리가 있어.
...
“15파운드래요. 저는 공짜인 줄 알았어요.
이런 곳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고 했거든요.”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아니에요.”
작품을 창작하는 이들과 작품을 소비하는 관객들은 그저 사회적 우월함을 느끼기 위한 도구로서 예술을 이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 비극을 통해서만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걸까. 정작 그들이 작품을 통해 구하고자 했던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너를 통해 전하려는 게 뭔지 잘 알잖아.
모두 다 잘 될거야.”
난 언젠가부터 작품과 공감 지점이 안 맞는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더 슬픈 일은 함께 공연을 보는 관객들과도 심장박동이 맞춰지지 않는다는 것. 모두가 잘 되는 건 없다. 그저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그저 소재로만 사용하는 저질스런 작품이 판을 치는 지금의 공연계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작품.
많은 창작자들이 이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