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직장인 고민 1) 사원

by Perth

연차에 따라 고민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최근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고민이 달라지는 경우도 분명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기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거기에 새로운 고민이 얹어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지니 하루하루 산다는 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소모된다고도 볼 수 있다.(와중에 회복은 더디다.)


퀘스트가 끝도 없는 거 같은데, 아이템은 보이지 않고 언제 다음 스테이지를 지나 엔딩에 다다르는지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 찰나와 같은 보람과 의미를 찾아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최근 고민과 불안의 늪에서 허덕이다가 과거 사원, 대리 시절에는 어떤 고민을 했고 극복을 했는지 떠올려 봤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줄 수 있는 작은 팁을 기대하며. 음,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소소한 위로가 되면 좋겠다.


사원의 고민

사원의 고민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 거 같다. 물론 이건 내 경우이다. 첫 번째로는 실무적인 고민. 두 번째로는 내가 하는 일의 중요도에 대한 고민. 생각해 보면 나를 괴롭게 했던 건 특히 후자였지만, 일단은 첫 번째 고민부터 이야기해 보겠다.


사원 때는 글 한 줄 쓰는 게 어려웠다. 소셜 콘텐츠의 카피부터, 광고주 보고용 문서에 기재하는 내용, 그뿐만 아니라 내부 혹은 외부에 보내는 메일 제목을 쓰는 것조차 난관이었다. 첫 회사는 사수에게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개인이 스스로 배우기를 바라는 곳이었다.(지금 생각 해보면 당시 나보다 어렸던 사수는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거 같다) 눈치껏 포털 등을 검색해서 팁을 얻어야 했다. 그러니까 알아서 잘하는 센스 있는 사원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나마 메일 등은 회사 선배들이 보내고 받는 것들을 눈치껏 따라서 썼다. 맞춤법이나 기본적인 문장을 쓰는 능력이 썩 나쁘지 않아 크게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당시엔 페이스북이 막 대두되던 시절이었고,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소비자와 소통하던 때였다. 나는 주로 공공기관의 페이스북 콘텐츠를 생각해 내야 했고(심지어 당시에는 하루 3건을 발행해야 했다. 물론 주말 포함이었다) 댓글로 소비자의 질문에 위트 있게 하지만 선은 넘지 않게 응대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그때까지 나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이었고, 페이스북 계정도 없었다.(유머도 없었다) 픽셀이 무언인지, cm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았고,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의 세게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사서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브랜드에 애정을 가지고 일해라,였는데. 입사 3개월에 그게 생기기가 참 힘들었다. 그것도 클라이언트가 그전까지는 인식하고 살지 않았던 공공기관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열심히 찾고, 아이디어를 내고 노력했던 거 같다.


입사 3개월 차,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떼었을 때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혼자 정부청사에 파견을 나가야 했다. 아직 회사 사람들과도 친해지기 전이었는데 수많은 광고주 틈에서 책상 하나를 두고 일해야 했다. 당시엔 모르는 것 어설픈 것 투성이었는데 광고주는 디지털 대행사에 다니니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많이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내가 실무적으로 아는 건 많지 않았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처리하기 바빴지만 그게 다였다. 프로의 솜씨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많은 배려를 받았던 거 같다. 이제 막 20대 후반에 접어든, 사회 초년생이 혼자 파견 나와 있는 게 딱해 보였던지 여러모로 광고주는 챙겨주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늘 얼어붙어 있었고, 움츠러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호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거 같다.


그곳에서 SNS 이벤트를 기획 운영하고, 보도자료를 요약해 트위터에 게재하거나, PPT로 콘텐츠를 만들에 페이스북에 올렸다.(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 재직했던 회사에선 그걸 원했다) 그 당시 내 손을 거쳐 나갔던 콘텐츠나 보고서는 어설픈 것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업무적으로 분명 성장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엔 매일 정부청사로 출근하는 것도, 수십 명의 낯선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혼자 일하는 것도, 회사 상사들에게 1주일에 한 번 보고하러 들어가는 것들도 모두 힘들었다. 디자인 전공이 아니었기에 콘텐츠를 PPT로 만들 때면 위축되고 클라이언트에게 잘못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잘하지는 못해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때 콘텐츠를 기획하고, 긴 분량의 정보의 중요한 부분만 취합 요약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내가 한 일의 결과를 정량적 데이터와 함께 정성적 분석을 통해 보고서로 작성하는 법도 어설프지만 배웠다. 당시에는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고, 내 손에서 나가는 모든 문서나 콘텐츠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다만,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오랫동안 스스로를 갉아먹었던 거 같다.


당시 친한 친구는 꽤 큰 광고 대행사에 근무하고 있었고, 유명한 브랜드의 프로젝트의 팀원으로 다양한 영상을 촬영하고 광고제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친구를 만날 때면 부러웠다. 광고인을 꿈꾸진 않았지만, 이왕 업계에 발을 디뎠으니 많은 사람들이 보는 광고를 만들고 상도 받고 싶었지만 내가 만드는 건 흘러가는 콘텐츠 하나에 불과했다. 사실 그 생각은 꽤 오래 사원, 대리를 지나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보통 광고 회사에 입사하면 각각 형태는 다르더라도 부푼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멋진, 의미 있는 일을 해서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도 그렇듯. 그러다 보면 사원 시절 하는 일들, 이벤트 당첨자를 선정하거나 소비자의 문의에 응대한다거나 하는 업무들은 너무나 사소하게 느껴지고, 이런 일로 내가 뭘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건 당연한 생각이다.


최근에 본 커리어 관련 영상에서도 인터뷰이는 그와 같이 말했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결국 그 일들이 실력을 쌓게 도와줄 거라고. 그 말에 동의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실력이 된다. 하다못해 당첨자를 선정할 때 더 수월한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말이다.


인턴, 사원 때의 성장은 스스로가 체감하기 어려운 거 같다. 한참 지나서야, 어느새 같은 문서를 작성할 때 시간이 단축되었구나 하는 걸 느끼고. 무수한 정보 중에 쓸만한 것들 것 발견하는 눈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느리게 성장하는 기간 동안, 내가 분명 ‘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참 어렵다.


그럼에도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인턴, 사원 시절 경험한 일들은 차곡차곡 쌓이고, 그때 내가 했던 고민과 성장하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은 배신하지 않는다. 뻔한 말 같지만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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