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직업인이 될 줄 알았어

by Perth

공모전 경력 무, 아르바이트 경험 무, 어학연수 경험 무. 20대 중반의 나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았다. 당연히 취직이 쉽지는 않았다. 목표로 했던 홍보대행사에서 클리핑 아르바이트(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뉴스 등을 취합, 분류하여 보고서 작성)를 하면서 인턴에도 도전했지만 당연히 탈락했다. 너무 당연한 결과여서 충격받지도 않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었지만, 주변 친구들은 모두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 상태였다. 그리고 사회에선 내 나이를 늦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다 핑계다. 확신이 없었고 겁이 났다. 혹여나 1년을 허비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건 고스란히 내 경력의 공백이 될 테니. 그래서 마음을 접었고, 이는 아직까지도 후회가 된다. 그 후엔 초라한 이력서를 가지고 여러 홍보대행사의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탈락의 연속이었다.


‘전라도 출신이에요? 개인적으로 좀… 근데 우리 대표님은 좋아해요.’

‘술 잘 마셔요?’

‘대선 후보 중 한 명을 골라서 제안서를 써오세요.’


면접에선 이런저런 말들을 들었다.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고, 허무한 기분을 느꼈던 적도 많았는데 결국 그 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20대 초반을 낭비한 스스로에 대한 탓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참 많이 미워했다. 물론 (좋게 생각하면) 약이 된 것도 있다. 후에 팀원의 면접을 볼 때 저런 말들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일종의 반면교사라고 생각한다.


스물일곱, 겨우 취직한 작은 홍보대행사는 공공기관을 클라이언트로 둔 곳이었다. 사실 이곳에서는 좋은 기억이 없다. 나이가 많은데 신입이라는 사실이 마치 잘못이라는 듯한 상사들의 태도에 자존감은 땅에 떨어졌다. 유료 폰트나 이미지를 사용할 수 없어서 긴 시간 무료 사이트를 뒤져서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다. 심지어 기관의 공식 SNS 콘텐츠를 기획자로 취직한 내가 PPT로 만들어 발행해야 했다. 보고서를 잘 쓰면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네라는 말이 칭찬으로 돌아왔다. 많이 울었고, 출근길에 사고가 나기를 매일 바랐다.


그 후에 누군가가 나에게 직장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나는 말한다. ‘내’가 우선이라고. 정말 못 버티겠다 싶으면 도망쳐도 괜찮다고. 사실 그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12년째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변함은 없다. 돈을 벌고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지키는 것 내가 내 삶을 온전히, 건강히 살아가는 것은 무시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어렵게 취직한 직장에서 어떤 사유로 그만두게 되었을 때, 하고 싶던 일을 결국 포기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탓하거나 미워하지 말라고도 말하고 싶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뻔한 말이지만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서 다시 걸으면 된다. 스물이든 서른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신의 삶을 더 사랑하고 중요히 여겼으면 좋겠다. 사회적인 시선에 현실적인 부침에 너무 많이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곳에서의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을 버티고 그다음 회사는 역시나 작은 광고대행사였다. 전 회사보다는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나는 세 곳의 회사에서 1년 내외의 시간을 보냈고, 대리 직함을 달고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차장이 되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배우고 성장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투성이다. 직장인으로서 12년 차가 되다 보니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도 달라진다. 좀 더 깊은 고민을 통해 제안서를 논리적으로 탄탄히 할 것, 팀원들을 잘 관리할 것.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피드백들이다.


거기에 더해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고민하게 하는 건 직업인으로서 나의 역량이다. 12년을 일했지만 광고제 수상 경력도 없고, 분명 누구나 아는 국내외 유명 브랜드와 일을 하며 성장했지만 직업인으로서 나의 능력이 충분한가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학교를 다녔을 때처럼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A, B 혹은 100점, 90점으로 수치화해서 받을 수는 없으니까.(물론 연봉협상과 기업에서 하는 동료 평가 등이 있긴 하지만) 매일 내가 잘 하고 있나 의심하게 된다. 비슷한 연차의 사람들이 SNS에 올린 글에 공감하고 상처받는다. 이만큼 일했는데도 확신이 없어 흔들리고 휘둘리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하다.


어릴 땐 막연히 상상했다. 지금 나이가 되면 멋진 셔츠를 입은 채 출근해 회의시간에도 팀장다운 솔루션을 제시하고. 뷰가 좋은 오피스텔(어릴 땐 멋모르고 오피스텔이라는 게 근사해 보였다)에서 하루를 곱씹으며 커리어를 착착 쌓지 않을까. 뭐 그런. 드라마와 영화가 만든 환상은 당연하게도 사회생활 시작 후 차곡차곡 부서졌다.


현실의 나는 매일이 위기인 차장이고, 불안과 걱정으로 가라앉는… 월세를 내는 세입자이자 여전히 방황 중이지만 더 나아질 게 없을 거 같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현대인이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나는 직업인으로서 잘 살고 있을까.

12년 차인 나도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많은 물음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는커녕 매일 늘어나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적확한 답을 찾는 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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