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광고입니다만

by Perth

광고홍보학부 XX 학번이지만 광고인이 되겠다고 꿈꾸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해가 바뀌면 덩달아 하고 싶은 일도 달라졌다. 회사를 운영하고 싶기도 했고, (성적과 관계없이) 한의학을 전공하고 싶기도 했다. 고3때 꿈은 조향사였다. 화장품 학과가 있는 학교에 먼저 연락해서 캠퍼스 투어를 하기도 했고, 수시 1차로 지원하기도 했다. 결과는 탈락. 이과인데도 문과 성적이 월등히 좋았던 데다 중요한 수학 점수가 모자랐다. 수시 1차 탈락을 이후로 이공계 대학 진학은 쉽지 않겠다는 결론이 낫고, 수능을 앞두고 다시 꿈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거,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 내가 좋아하고 제법 잘 한다 소리를 듣는 거, 글쓰기. 그때부터 대학교의 학과들을 다시 검토했고 점차 지망학과가 좁혀졌다. 국문과와 광고홍보학과. 후자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잘 모르지만 카피라이터는 글을 쓰는 직업이니까 재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하고 어린 마음에서였다.


아무튼 여러 학교의 국문학과와 광고홍보학과를 지원했고 그중 한 곳에 합격했다. 스무살, 그렇게 나는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광고홍보학부 신입생의 삶을 시작했다. 1학년은 기숙사에 들어갔다. 흔히들 대학, 기숙사 생활에 로망이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나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등 떠밀어 낯선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밝고 개성 있는 동기들 사이에서 기를 펴지 못했던 거 같기도 하다. 기숙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글쓰기든 영어든 꽤 잘 한다는 평을 받았지만 대학교에 와서야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영어 교양 수업에서도 위축되어 있었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는 제대로 된 답을 적어 내려갈 수 없었다.


광고홍보학부의 거의 필수였던 광고 소모임에 가입했지만 그곳에서도 겉돌았다. 동기, 선배들에게 인기 있거나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그게 또 속상했던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전공 공부를 썩 잘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선배들에게 싹싹하게 굴며 함께 어울리지도 않았다. 특출난 거 없이 위축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무려 4년(휴학 시기를 포함하면 정확히 5년) 간.


물론 모든 게 다 재미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 친한 친구가 생겼고, 친구 자취방에서 그때 유행하던 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거나 충동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놀러를 간다거나 하는 즐거운 추억도 조금씩 쌓였다.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수업은 꽤 재밌었고,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교수님의 말을 경청하며 필기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수업은 PR 에이전시에서 근무하시는 교수님의 홍보학 수업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대학교에서 예습 복습을 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교수님의 수업을 연이어 들었고, 그분은 모르지만 일방적으로 롤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홍보대행사에 취업해야겠다고.(지금 생각하면… 대기업을 목표로 해서 열심히 학점관리와 어학점수를 쌓는 게 더 나았겠다 싶긴 하다)


PR인이 되고 싶었지만 당시 학교 수업 90%는 광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여러 광고 수업을 들었고, 공모전도 한두 번 지원했지만 내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눈에 들어오는 카피를 쓰는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것만 깨달았다. 그렇다고 PPT를 기가 막히게 만들지도 못했으며, 자료 조사에 능하거나 제안서를 논리 있게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나마 할 줄 아는 건 발표, 프레젠테이션이었지만 그게 다였다. PT를 잘하는 애들은 많았다.


지금 와 그때 썼던 제안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를 보면, 그 수준의 과제를 채점해야 했던 교수님께 새삼 죄송하다. 그리고 어쨌거나 광고일을 하며 돈을 버는 스스로가 신기하기도 하다.


PR 에이전시에서 일하면 기사를 쓸 일도 많을 테니 국문학을 전공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 때가 되어선 국문학과를 복수전공했는데, 내가 막연히 생각한 국문과 수업은 문예 창작에 가깝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당시 내 학교생활은 엉망이었기 때문에 출석률도 최하였고 어려운 전공 수업은 따라갈 수 없었으며 당연하게도 시험지에는 죄송하다는 장문의 반성문만 쓰고 나와야만 했다.


누군가 청춘이 찬란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의 청춘만큼은 흑백이라고 덤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의 나는 광고홍보학과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공모전 수상 경험이 0회인 채 졸업을 했다.


당시 우리 세대를 칭하는 말은 많았다. 88만 원 세대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나는 무슨 배짱인지 무스펙으로 졸업을 했고 당연히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보다 먼저 취업한 친구들에게 “절대 광고회사는 가지 않을 거야”라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대행사 12년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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