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게 한 두 문장
“나갈까, 말까.”
일본에 온 지 만 16년이 되던 어느 겨울, 저는 매일같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어요.
이력서는 깔끔하진 않았지만, 지금 회사는 일본 톱 티어 증권사.
입사한 지 4년, 자리를 잡았고 복지도, 연봉도, 타이틀도 모두 만족스러웠죠.
내 집도 마련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고,
마치 물살에 몸을 맡기기만 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도,
제 안에서는 조용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어요.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그 시기, 회사를 나갈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곳은 조직 안에서 더 바랄 게 없는 구조였고,
평생 다니면 안정은 확실히 보장되는 자리였어요.
하지만 문득 들었던 생각은,
그 안정이 혹시 나를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것이었어요.
“이 안에서 내가 더 자라날 수 있을까?”
“나는 결국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지금 나가는 게 정말 미친 짓일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다가
하나의 문장이 명확하게 떠올랐어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자.”
그건 단순한 경구가 아니라,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우물 속에 머무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경고처럼 들렸어요.
언젠가 돌아오더라도,
지금은 나가보자.
더 넓은 세상을 보자.
그렇게 결심했고, 저는 결국 회사를 나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했지만,
그 선택은 제 인생의 두 번째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첫 번째는 일본에 처음 왔던 날이었겠죠.)
두 번째 문장은,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들려왔어요.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워킹맘 상무님과 점심을 먹던 날,
그분이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인생의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가 아니어야 해요.
일, 가족, 친구, 취미, 배움… 여러 개여야 하나가 무너져도 인생이 다 무너지지 않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어요.
저는 그때까지 정말
‘커리어’라는 단 하나의 기둥에만 모든 걸 걸고 살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일이 흔들릴 때마다
삶 전체가 위태로웠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생존이 위협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그 당시 싱글이었고,
가족도 없고, 연애할 여유도 없었고,
결혼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어요.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여성이 가족의 지원 없이 풀타임으로 일한다는 건
숨 막히는 일이었고,
“여자는 일도 하고, 집안일도 다 해야 한다”는 시선 속에
매일매일 싸워야 했거든요.
그 상무님의 말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정말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어요.
그분은 어렵게 워킹맘의 길을 걷고 있었기에
그 한마디의 무게가 더 깊이 와닿았죠.
일본계 회사도, 외국계 회사도 경험하면서 느꼈던 건
어떤 조직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내 삶의 ‘기둥’을 새로 세워보기로 했어요.
그게 요리학교였고,
꽃이었고,
와인이었고,
부동산 공부였고,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박사 과정이 되었어요.
일은 여전히 제 삶의 중요한 축이지만,
이제는 일이 전부는 아닌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제 스스로에게
“노마드 취미부자” 라는 별명을 붙이게 되었죠.
좀 웃기지만, 꽤 마음에 드는 말이에요.
지금 돌아보면,
커리어 초반엔 너무 많은 걸 증명하려 애썼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빨라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더 오래 버텨야만 한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
그 안에서 ‘일’은 어디쯤 자리해야 할까.
그 질문에 솔직해지니
비로소 삶이 흔들릴 때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매년, 제게 이런 질문을 던져요.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올해 내가 이 회사에서 얻은 건 뭘까?”
“내가 바라보는 방향은 여전히 그곳일까?”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 두 문장이 늘 제 마음속에 떠올라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자.
지붕을 받치는 기둥은 하나여선 안 된다.
이 글이
지금 ‘여기 있어도 되는 걸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힌트가 되었으면 해요.
무언가 하나를 시작한다고 다른 걸 포기하라는 법은 없어요.
삶은 긴 호흡이에요.
하나씩, 천천히, 멈추지 않고 가면 돼요.
여자라서, 가장이라서, 회사원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자기 삶을 접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계속해보는 것.
저는 그게 진짜 ‘계속하는 삶’이라고 믿어요.
포기하지 말고, 그냥 조금씩 계속해보기.
어쩌면 그게 가장 나를 편하게 해주는 길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