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을 견디는 방식이 삶의 태도를 만든다는 생각
지난 달, 내가 쓰는 영국 통신사 ‘보다폰’이 갑자기 안 터졌다. 집 와이파이도 보다폰이라 넷플릭스도 안 되고, 휴대폰 데이터도 먹통. 콜센터에 전화하니 “인공위성 문제라 곧 해결될 것”이라는데, 언제쯤 되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결국 이유 모를 정지 상태로 두 시간쯤 지나서야 다시 터졌다.
신기한 건, 아무도 화내지 않았다는 거다. 줄줄이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없고, 통신사를 바꾸겠다는 말도 없고,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 아, 이게 영국인가 싶었다.
문득 몇년 전 KT 먹통 사태가 떠올랐다. 생업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고, 나라 전체가 들썩였지.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너는 너고 나는 나지만, 내 이익을 건드리는 순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반면 영국 사람들은 느림과 불편을 감당하며 사는 데 익숙한 모습이다. 한국이었다면 큰일 났을 텐데, 여기서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게 조금은 우스웠다. '이게 끝이라고?'
뭐가 더 낫다곤 할 수 없다. 그게 국민성이니. 그리고 한국이 이렇게 급격히 경제가 성장한 가장 큰 요인은 국민성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 차이는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고 느낀다. 한국에서는 ‘그 사람의 어려움 때문에 내 시간이나 에너지가 영향을 받는 건 싫다’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나는 너의 불행에는 관심 없어’라는 냉정함도 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해져서 적어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