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장애가 제도의 탓은 아닌걸요

한국의 여러 장애 제도는 촘촘해요 충분히

by 윤남주

여기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장애 관련 제도는 이미 매우 촘촘하고 정교한 편이다. 제도만 놓고 보면 영국보다 더 앞서 있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문제의 본질이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 더 분명히 깨달았다.


장애 부모들이 힘든 이유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일상이 부모의 고됨을 덜어주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 환경, 사회적 태도, 부모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는 문화, 그리고 주변의 작은 배려들. 이런 것들이 부족하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가 있어도 부모의 삶은 늘 벼랑 끝에 서 있게 된다.


영국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나라가 ‘장애’를 대하는 방식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장애 아동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접근한다는 것. 그 시선의 차이가 결국 부모의 삶까지 바꾼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매일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한국에서 특수교사로 일할 때, 나는 부모들이 외출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동이 어렵다는 이유 하나로 “그냥 안 나가는 게 마음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이동을 ‘큰 결심’이 아니라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 버스 기사들은 아이가 천천히 오를 때 자연스럽게 기다려주고, 휠체어나 유모차 공간 확보는 예의가 아니라 규격이다. 자동 경사판, 스텝 없는 역, 어디서나 가능한 장애 없는 이동. 이런 환경들은 부모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오늘도 안심하고 나오셔도 돼요.”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버스 한 대의 경사로,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해주는 기사, 회의에서 부모의 의견을 진심으로 들으려는 태도.

이 작은 요소들이 부모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주고,

부모가 여유를 되찾아야 아이와의 일상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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