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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30. 2023

교실 속 전쟁

두 여자

 어떤 선생이 있었다. 집이 부유하거나 성적이 우수하면 그 선생의 눈에 들 수 있었다.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고1 담임이었던 그녀는 야욕이 넘쳤다. 대입에 대한 욕망, 대치동에서 기어 나온 마수 같았다.

 학생을 대학에 보내려는 열성적인 선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아이들끼리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그녀가 싫었다. 그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 늘 뭔가 음모를 꾸미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조용히 맞서 싸웠다.


 처음부터 우리가 맞수는 아니었다. 나는 아직 고등 교복이 어색한 새내기였고 그녀도 그해 처음 고1을 맡았다고 했다. 그녀가 1학년을 맡게 된 경위에도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당시 우리 학교 교장은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분이었다.(정말 노래로 불러주셨다.)

 그런 교장이 학벌주의 그녀와 상성이 맞을 리 없었다. 교무실 속 둘의 신경전이 살벌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결국 늘 고3 담담이었던 그녀를 교장이 1학년에 배정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도 그때는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사유에 빠져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노래는 끔찍했지만 자아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이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나와 그녀의 생각도 맞지 않았다. 그녀 역시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인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미묘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반 아이들을 극명히 갈랐다. 자리를 고루 섞어놓아도 우리는 그 가름을 알아챘다. 세상 밖은 몰라도 학교 안은 알았다. 학교에서 아니,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 소리 없는 전쟁을 온몸으로 치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밖의 세상을 교실로 끌고 들어왔다. 저 높은 빌딩으로 출근하려면 좋은 대학 문턱을 밟아야 해. 대학에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101가지 리스트가 그녀의 머리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 인간성에 관한 리스트에는 항상 먼지가 굴러다녔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그녀의 사상이 피부로 느껴져 따끔거렸다.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교실을 둘러봤다. 이 기시감을 함께 느끼는 동지가 있는지 살폈지만 모두 앞만 보고 있었다. 이때 자신의 정론에 품은 반발심을 눈치챈 듯 그녀의 눈길이 내게 머물렀다. 나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우리 사이로 무언가 강한 불꽃이 튀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녀와 나는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시험기간,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책상자리 배치를 직접 했다. 집안과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과 예체능계나 수업태도가 불량한 아이들로 분단이 나뉘었다. 나는 후자 쪽이었다. 교실의 독재자는 상 벌점 제도를 만들었다. 열등 팀 에게 교실 청소 당번을 몰아주어 우등 팀이 공부할 시간을 더 벌게 할 셈이었다. 모두 눈치챘지만 우등은 묵인했고 열등은 부당하다고 생각할 뿐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 사건은 내게 좋은 명분이었다.


 학기 중 면담 시간, 내 느슨한 학교생활이 어린 시절을 조부모님과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 그녀의 냉소적인 언행 때문에 나는 남몰래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가면 나는 그녀가 복도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사냥감을 쫓듯이 노려보았다. 그녀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마저 흠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것은 그녀였다. 이제 내가 총대를 매야했다. 벌점이 있으면 상점도 있다. 교과서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독후감을 노렸다. 같은 팀 아이들에게 한 장 씩 써오라 부탁하고 나는 열 장을 썼다.

 대입 제도의 마구니. 그녀는 반 아이들이 내게 글쓰기 숙제를 종종 부탁하곤 했었다는 것을 몰랐다. 우리는 열등과 우등으로 나뉘는 존재가 아니다. 강점이 다를 뿐이었다. 나는 매일 글을 써냈다. 도서부원이어서 소스를 얻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평소처럼 책을 읽고 후기를 쓰기만 하면 됐다.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뭐 씹은 얼굴로 내 독서록에 칭찬 도장을 찍었다. 도장이 늘 때마다 통쾌함에 발끝이 저릿했다. 그때 나는 펜대의 힘을 알았다. 글로 이토록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속된 기한마감일, 우리는 가장 높은 상점으로 매점 이용권과 청소 면제 권을 따냈다. 우리의 압승이었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고 열등은 환호했다. 우등은 벌로 한 달 청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역시 독재자. 그녀는 결과 발표 직후 벌 청소를 보름으로 급히 바꾸었다. 부당한 일이었지만 번복하며 붉히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한동안 킬킬댔다. 그때 쓴 독서 기록장은 지금도 승리의 증표로 가지고 있다.


 교실 속 차별과 주입식 교육. 그런 녹록지 않은 전쟁을 몇 번 치렀다. 내 승률은 높았다. 그녀는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나를 어떻게든 잡으려 안달냈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내 뒤 꽁 무늬를 눈으로 집요하게 좇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그녀를 보며 그랬듯 흠을 뒤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손아귀를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그녀는 총을 들고 쫓아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는 절대 잡히지 않는 노루였다. 그 한해 맞수를 골리는 맛으로 다녔다. 되레 방학이 무료하기까지 했다.


 1학년을 마무리하는 날,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눈에 새겼다. 전근을 가게 되어 이제 볼 수 없는 내 포수, 적군, 스승.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나를 모호한 표정으로 안아주고 사라졌다. 그녀는 알까. 내가 아직도 즐겁게 글 쓰고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쓴 독후감은 내 대학 입시에도 도움이 되었다. 케케묵은 원한은 증기처럼 날아갔지만 아직도 가끔 그녀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쓴 물이 올라오며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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