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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Feb 18. 2023

사진

할아버지의 필름카메라

 빈소에서 그의 영정 사진을 보았다. 할아버지의 상이었다. 병상에 들어가신 이후 늘 죽음을 상상했다. 죽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고백하자면 나는 철없는 손녀라 할아버지가 떠난 후의 나를 더 걱정했다.

 할아버지는 첫 손녀인 나를 가장 예뻐했다. 떼를 쓰고 응석을 부려도 뭐든 들어주었다. 액자 속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그때처럼 자애를 띠고 반짝였다. 성장 통으로 앓는 손녀의 다리를 밤새 주물러주고 비 오는 날 학교 앞으로 마중 나오던 할아버지.

 조문객들이 내 손을 잡고 토닥였다. 할배가 너를 참 예뻐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죽음을 처절하게 실감했다. 안온하고 너그러운 세상의 소멸이었다.

 할아버지를 보내는 삼일장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의 시작. 주인 잃은 집에서 할아버지의 앨범을 찾아봤다.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좋아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만날 때마다 셔터를 꾹 눌러 찍어두었다. 필름카메라를 특히 좋아해 손에 들고 다니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애지중지 키운 화분, 화사하게 피어난 꽃, 일광욕하는 강아지를 담고는 했다. 사진으로 그의 시선을 엿보았다. 온통 따듯하고 환한 시야였다.

 가족들의 사진이 가장 많았다. 할아버지의 영원한 어린 신부 할머니, 그 둘 사이 자식들. 내가 태어나고부터 내 사진이 쭉 이어졌다. 이불보 위에 눕힌 갓난아기와 깨 벗고 물장구치는 아이가 웃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날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나 보다.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할아버지는 떠났고 나도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만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가 있었던 세상의 시간 덕분에 나는 여전히 그의 충만한 사랑을 느낀다. 오래된 매실과 뜨끈한 눈물과 남은 사진이 그 사랑을 증명한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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