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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의 청년, 쇼팽

쓸쓸한 밤, 그의 피아노가 건네는 조용한 위로

by 소담
안녕하세요. 소담입니다.
본래 이 글은 하나의 긴 평론으로 쓰여졌으나, 좀 더 편안하고 깊이 있는 호흡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연재의 형식으로 새롭게 엮게 되었습니다. 각 회마다 한 명의 작곡가를 다루며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의 결을 내밀히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글에 앞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는 처음엔 가벼운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ADHD라는 병증을 앓고 있는 나는 본래부터 산만한 성정 탓에 무언가에 진득하게 집중하는 일이 늘 어려웠다. 등산이라는 여정이 누구에게나 힘겹다지만, 내게는 그 산의 첫 계단에 발을 내딛는 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종종 나를 번민의 유치장에 가두었고, 변덕스러운 마음은 짓궂은 주인처럼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가도 이내 내쫓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혼돈 속을 헤매던 중, 내게 진정한 위로가 되어준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과 낭만은 삶의 목적인 거야.
- 존 키팅 (로빈 윌리엄스 役) -


나는 이 말이 인간 실존의 이유와 예술의 본질을 꿰뚫은 명언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선상에서 음악은 내게 살아갈 이유이자 신산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내게 있어 음악이란, 타인의 내면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나는 쇼팽과 베토벤을 비롯한 수많은 작곡가들의 음악 속에서 깊은 감동과 치유를 받았고, 그렇기에 이들의 고뇌가 서린 작품들을 단지 한순간의 청취로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이 음악을 매개로 하여 나 자신의 내면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이 글은 그들에 대한 작은 헌사이자, 내면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무엇보다 이 글은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하는 글이기도 하다. 늘 마음속에만 머물던 생각들을 이제야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아무런 기대 없이 던진 브런치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졌을 때만 해도, 나는 기쁨보다도 정과 부담감이 앞섰다.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그 조심스러움 끝에 이 글을 올리는 것은 나처럼 음악을 통해 치유를 얻는 이들이 있을 거라는 희망, 그런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서이다. 아울러 이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큰 위로이자 격려이기도 하다.

하여 이 글이 더 이상 닫힌 내면의 낙서가 아닌 솔직한 나의 이야기로써, 더 나은 나로 나아가고자 하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설익고 미숙한 글이지만, 이 글에 담긴 진심과 음악에 대한 애정이 독자 여러분에게 오롯이 전해지길 바란다.


프레데리크 쇼팽 (Frédéric Chopin)


쇼팽의 음악은 서정의 정수다. 섬세하면서도 힘차고, 때로는 애틋하며, 감정의 경계에서 망설이는 듯하다.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던 당시 쓴 곡 <혁명 에튀드(Études, Op. 10, No. 12)>는 마치 평생 화를 내지 않던 온화한 사람이 마침내 분노를 터뜨리듯 거칠지만, 그 거칠음마저 어딘가 조심스럽고 어설픈 인간적인 절제미가 느껴진다. 슬퍼하지만 울부짖지 않고, 분노하되 불처럼 타오르지도 않는다. 그 섬세하고 사려 깊은 조율 속에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여리고 진실한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폴란드의 젤라조바볼라(Żelazowa Wola)에 위치한 쇼팽의 생가.


이런 그의 음악은 마치 자신의 한계를 아는 이가 세상과 속삭이듯 소통하는 모습 같다. 연약하고 조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맑고 순수하다. 그렇게 언제나 감정의 간극 위에 머물며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청년의 낭만과 풋풋한 열정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쇼팽의 섬세한 감성과 표현력은 그가 남긴 여러 피아노 소품곡들에서 엿볼 수 있다. 녹턴(Nocturne), 발라드(Ballade), 프렐류드(Prélude). 이 중 녹턴과 프렐류드는 복잡하거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디 속에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고즈넉한 사색을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Nocturne No. 20 in C-Sharp Minor / 마리아 조앙 피레스


흔히 야상곡(夜想曲), 밤의 음악이라 불리는 녹턴은 쇼팽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피아노 소품이다. 이 소품곡은 고요한 밤의 정취를 다루는 한편, 단순히 조용한 위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때로는 은은하며, 때로는 경쾌한 선율로 밤의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진폭을 다채롭게 묘사한다.


Ballade No.1 in G minor, Op. 23 /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이와 대조적으로 총 4곡으로 이루어진 발라드는 쇼팽의 서정성과 내면적인 긴장감이 극적으로 융합된 걸작이다. 폴란드의 애국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의 서사시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은 이전까지 성악곡에 머물렀던 발라드를 피아노의 영역으로 가져옴으로써 피아노 독주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 아울러 짧은 단편임에도 심오한 감정을 응축한 프렐류드 또한 쇼팽의 섬세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다.


이처럼 쇼팽의 음악은 다양한 형식과 깊은 서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런 다채로운 감정의 면면에서 쇼팽의 음악은 특히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다. 모국을 떠나 평생을 타지에서 살아야 했던 그에게, 폴로네이즈 마주르카는 단순한 민속 무곡을 넘어 조국 폴란드에 대한 애국심과 향수를 상기시키는 매개체였다. 이 작품들은 쇼팽이 평생 품었던 고향의 그리움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흔적이기도 하다.


라파우 블레하츠(Rafał Blechacz)의 '영웅 폴로네이즈' 연주


그중에서도 대표곡인 <영웅 폴로네이즈(Polonaise in A-flat major, Op. 53)>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경쾌하고도 장대한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이 곡은, 전장의 참화를 온몸에 새긴 개선장군이 마침내 군중의 열광적인 갈채와 환호를 받는 순간을 그려내는 듯하다. 험난한 시간을 이겨낸 영웅의 숭고한 기상과 함께, 승리의 환희 속에서도 지난 고통을 회고하는 뜨거운 눈물까지. 쇼팽 특유의 폴로네이즈 형식을 통해 영웅의 다층적인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와지엔키 공원에 위치한 쇼팽 동상.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이 공원에서는 쇼팽을 기리는 연주회가 열린다.


이처럼 쇼팽의 음악은 피아노라는 악기와의 깊은 교감 속에서 펼쳐지는 정서, 섬세함, 그리고 절제된 감정 표현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진정한 이유이다.


늦은 밤 스탠드가 켜진 조용한 방 안에서 눈을 감고 이어폰을 낀다. 이윽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녹턴을 듣고 있노라면, 꼭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티 없는 청춘의 맑은 순수함이요, 꿈이요, 열정이다.

시를 읊조리듯 유려하고 나직한 피아노 선율을 통해 나는 오늘도 위로와 힘을 얻는다.




추천곡

- 왈츠 7번 (Waltz No. 7 in C-Sharp Minor, Op. 64 No. 2)

- 습곡 Op. 25 1번, '에올리언 하프' (12 Etudes, Op. 25, No. 1 in A Flat Major 'Harp Study')

-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Piano Concerto No. 2, Op. 21, II. Largh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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