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마에스트로, 피아졸라

반도네온으로 펼쳐낸 삶의 드라마

by 소담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누에보(Nuevo, 새로운) 탱고의 창시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 '탱고는 피아졸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이전까지 단순한 무용곡이던 탱고를 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린 혁명가였다. 격렬히 몸을 부딪치는 남녀의 춤 너머에 피아졸라는 라틴 민족의 정서와 삶, 철학을 담아냈고 재즈의 즉흥성과 클래식의 정교한 구성미를 융합하여 탱고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융합을 통해 탄생한 그의 탱고에는 클래식 음악과는 또다른, 남미 음악만의 독특한 애수와 서정성, 정열이 가득하다.


1930년대, 뉴욕 맨해튼의 빈민가.

피아졸라의 삶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피아졸라는 일찍이 집안의 경제적 곤궁함으로 미국의 뉴욕으로 이주하여 유년기 대부분을 뉴욕의 거친 빈민가에서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아마추어 반도네온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생일 선물로 반도네온을 받으며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낯선 악기였지만 반도네온은 곧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또한 뉴욕이라는 다채로운 도시의 환경 속에서 그는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접하며 폭넓은 음악적 기반을 다졌다. 특히 바르토크,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당대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에 깊이 심취하며 대위법과 현대 음악 기법을 익혔고, 이러한 기반은 훗날 그가 누에보 탱고를 창시하는 데 있어 긴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청년이 되어 고향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피아졸라는 당시 전설적인 탱고 악단 '트로일로 악단'에서 반도네온 연주자로 활동하며 전통 탱고의 뿌리를 깊이 있게 이해했다. 그러나 당시 악단의 환경은 그의 예술적 지향점과 거리가 멀었다. 피아졸라는 훗날 "카바레는 매음굴이었다"고 회상할 만큼 퇴폐적이고 난잡했던 분위기에 넌더리를 냈고, 악단의 상업적인 요구와 자신의 음악적 이상 사이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다.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탱고에 대한 깊은 회의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낡고 정형화된 틀에 갇힌 탱고가 아닌, 진정한 예술로서의 새로운 음악을 갈망했던 피아졸라는 도피하듯 파리 유학길에 오르는데, 그곳에서 그는 나디아 불랑제라는 운명적인 스승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나디아 불랑제.(1887~1979) 그녀는 레너드 번스타인, 아론 코플랜드, 다니엘 바렌보임 등 뛰어난 음악인들을 길러낸 음악 교육자였다.


불랑제는 피아졸라의 클래식 음악 작곡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음악적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피아졸라는 탱고를 길거리의 음악, 저급한 대중문화로 여기며 자신의 진정한 예술적 열망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급 음악인 클래식을 배우러 파리까지 온 그에게 탱고는 지워버리고 싶은 낙인과도 같았기에, 불랑제 앞에서도 자신이 탱고 음악가임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불랑제는 외려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를 일깨웠다. "탱고가 바로 당신의 음악이다, 그것을 버리지 말라"는 불랑제의 조언은 피아졸라가 자신의 뿌리인 탱고로 회귀하여 누에보 탱고를 창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언제나 저항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가 창시한 누에보 탱고는 전통 탱고계로부터 '탱고를 모독한다'는 극심한 비난과 냉대를 받았다. 심지어 그의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을 듣기 싫어 택시 기사가 승차를 거부하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였다. 춤을 추기 어렵고, 기존의 멜로디와는 달리 불협화음과 복잡한 구조를 가진 그의 탱고는 당시 대중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


하지만 피아졸라는 이러한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마침내 탱고를 예술 음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삶의 다양한 경험과 부단한 도전은 그의 음악에 독특한 색깔을 입혔고, 궁극적으로 '보는 탱고가 아닌 듣는 탱고'라는 누에보 탱고의 혁신을 이끌었다.


19세기 중반 유래된 반도네온은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 아르헨티나로 전파되었다. 아코디언과 비슷하나 고유의 묵직하고 애절한 음색을 지닌 이 악기는 빠르게 탱고 음악의 상징이 되었다.

먼저 피아졸라 음악의 꽃은 반도네온에 있다. 어딘가 삐뚤빼뚤하고 흐트러진 듯하면서도 그 안에서 생명처럼 꿈틀대는 반도네온의 음색은, 그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남미인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응축한 듯하다. 반도네온의 양면성은 두 가면으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웃는 가면 <리베르탱고(Libertango)>, 다른 하나는 우는 가면 <오블리비언(Oblivion)>이다.


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선 채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피아졸라. 이 특유의 자세는 관객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기 위한 피아졸라의 연주 철학이었다.


피아졸라 - 리베르탱고(Libertango)


리베르탱고는 그 이름만큼이나 강렬하고도 거침없는 라틴 민족의 정열 그 자체다. 그것은 바로 이다. 격정적으로 춤추는 남녀의 땀,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는 소시민의 땀, 어떤 괴로움도 딛고 의연히 일어서고자 하는 라틴인의 땀. 끊임없이 짓밟히고 넘어질지언정 끝내 굴복하지 않겠다는 남미인들의 강인한 의지가 전해진다. 이 곡에는 기성 탱고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피아졸라의 혁명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아졸라 - 오블리비언(Oblivion)


이와 상반되게 오블리비언은 애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리베르탱고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화려한 불빛을 연상시켰다면, 오블리비언은 그 불빛 뒤에 숨겨진 스산한 밤공기와 어둠을 보여주는 듯하다. 구슬픈 반도네온의 도입부가 마치 넘치는 욕조의 물처럼 전신을 천천히 저며오기 시작하면, 곧이어 숨 고를 새 없이 교대하듯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선율이 나를 끝없는 슬픔에 침잠시켜 버린다.


모래성처럼 흩어져가는 기억을 쌓아보려 하지만 그것은 곧 망각의 밀물에 휩쓸려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이란 참으로 공평하다. 좋은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모두 가차 없이 지워버리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망각을 두고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 했던 걸까.


이러한 망각 앞에서, 문득 나는 생각에 잠긴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그리운 얼굴에 대한 외로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깊은 슬픔을. 그 공허함 속에서 오블리비언은 나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울고 싶지만 눈물을 흘릴 힘조차 없을 때, 나는 오블리비언을 듣는다.



피아졸라는 생전 "나의 탱고는 발이 아니라 귀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춤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아낸 진정한 예술 그 자체였다. 기존의 비난과 냉대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탐구했던 그의 삶과 예술 정신은, 때로는 정열적으로 때로는 슬픔 어린 선율로 우리 삶의 다양한 단면을 비추었다. 그의 음악은 더 이상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뒷골목에만 머무르지 않고, 탱고와 재즈, 클래식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음악이 되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피아졸라의 탱고는 끊임없이 연주되고 재해석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명과 위로를 전하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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