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시대, 저항의 멜로디
안개가 자욱히 깔린 깊은 밤, 번화한 대도시의 어느 무도회장. 장내를 빼곡히 채운 내빈들 사이에 화려한 연미복을 입은 남녀 한 쌍이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다. 흥겹고 웅장한 왈츠 리듬 가운데 유려한 곡선이 펼쳐지고, 서로 미소 지으며 끝없는 밤을 노래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의 웃음 속에는 묘한 애수(愛愁)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단지 스쳐가는 그림자가 아니다. 마치 찬란한 순간 속에 스며든 슬픔의 징조처럼, 이 무도회가 끝나면 헤어질 것이라는 걸 예감하는 듯이.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더 있다. 밤의 어둠만큼이나 짙고 검은 코트를 입은 노신사. 그는 차디찬 거리에 멈추어 서서 망연히 무도회장의 불빛을 지켜보고는, 체념하듯 이내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추위일지 아니면 외로움을 달래려는 의식일지 옷깃을 여미며 쓸쓸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한 예술가의 영혼이 빚어낸 쓸쓸한 초상이었다. 1950년대 암울한 소련의 밤거리를 거닐었던 이 위대한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시대를 응시했다. 그는 바로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다.
그가 응시했던 시대의 복합적인 감정은 바로 이 왈츠에 담겨 있었다. 단순히 무도회 음악이 아닌 이 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우아함이라는 탈을 쓴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았다. 경쾌한 왈츠 리듬에 스며든 애조는 마치 사람들의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과 불안을 비추듯 슬그머니 스며든다. 그의 음악은 항상 그러했다. 화려한 외피 속에 숨은 모순, 그리고 체제에 길들여진 형식미 너머로 번져나가는 내면의 파동.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작 <왈츠 2번>(Waltz No. 2)은 바로 이같은 이중적인 정서를 정교하게 품은 작품이다. 본래 재즈 모음곡이란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이 곡의 '재즈'는 단순한 흥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그것은 체제에 의해 급조된 유희처럼 느껴지고, 청자는 그 안에서 기이한 부조화의 조화를 감지하게 된다. 아마도 이 곡이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으면서도 동시에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적 고뇌를 가장 은유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우아하고 애수 어린 왈츠를 작곡한 그는, 단지 낭만적인 서정을 노래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거대한 이념의 수레바퀴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생존 사이를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했던 비극적인 지성인이었다. 이러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시대의 압력 속에서 탄생한 통렬한 외침이며, 동시에 침묵 속에 감춰진 저항의 언어였다.
쇼스타코비치는 모순의 시대를 산 음악가였다. 체제를 찬양하는 듯한 작품 속에 아이러니와 냉소를 숨기고, 겉으로는 복종하면서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유를 갈망했다. 예컨대 그의 명작이라 평가받는 <교향곡 제5번>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 예술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은 체제에 대한 이중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평론가들은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이 체제의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요된 환희와 폭력적인 억압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고 분석한다.
외적으로는 경쾌하고 승리의 기쁨에 넘치는 것처럼 들리지만, 반복되는 단조로운 선율과 과도한 음량은 마치 웃음을 강요당하는 자의 슬픔과 같은 기이한 불협화음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체제에 굴복하는 척하며 침묵의 저항을 이어간 방식이자, 그의 예술적 양심이 만들어낸 위대한 역설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이처럼 암울한 시대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더불어 예술가로서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는 마치 시대의 비극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1906년 혁명의 도시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의 격동기, 즉 혁명과 내전, 그리고 스탈린의 공포정치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소련 당국은 그의 예술혼에 끊임없이 족쇄를 채우려 했다.
그 첫 번째 족쇄는 1936년,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음악 대신 혼란"이라는 소련 관영지 프라우다의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알고 있었다. 그 배후에 스탈린이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은 그에게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왔고, 이때부터 쇼스타코비치는 감시와 검열의 그림자 속에서 작곡 활동을 해야 했다.
겉으로는 체제를 찬양하는 듯한 작품을 내놓아 생존을 도모했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양심과 자유를 향한 갈망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의 음악 곳곳에는 이러한 역설적인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으며, 이는 쇼스타코비치만의 음악이 가진 모순적인 아름다움의 근원이 되었다.
비록 엄혹한 독재 체제 아래서 탄생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선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예술혼을 지키고자 했던 한 음악가의 집념이자, 불의와 부조리 속에서도 진실을 관철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다. 때로는 날카로운 풍자로, 때로는 깊은 슬픔으로, 때로는 냉소적인 유머로 시대의 모순을 응시한 그는 단순히 불운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가 아니라,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음악을 통해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진정한 투사였다.
그의 선율 하나하나는 폭압적인 체제 아래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 영혼의 번민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 정신의 위대한 승리인 것이다.
-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Piano Concerto No.2 : II. Andante, Op.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