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을 넘어 평안으로, 라흐마니노프

고난 속에서 피어난 영혼의 서정시

by 소담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최후의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 클래식 음악을 모르더라도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 2, Op. 18)>을 들어보지 않은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언젠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투표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1위를 차지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 한 인간의 깊은 내면과 격동적인 삶의 서사를 담아낸 자화상과도 같다.


일리야 레핀,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1873). 희망 없이 고통 받아야 했던 당대 민중의 모습은,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나 마주해야 했던 러시아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한다.


명망 높았던 몰락 귀족 가문의 후예로 태어나 유년기부터 시대의 격랑을 마주했으며, 조국 러시아의 혁명과 함께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그의 삶. 하지만 그를 가장 깊은 어둠으로 밀어넣었던 것은 갓 스물넷의 나이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의 실패와 혹평이었다. 이 좌절은 그를 3년간 깊은 우울증과 작곡가로서의 절필이라는 고통 속에 가두었다. 재능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진 예술가의 고독과 절망. 그 암흑 속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마치 존재를 잃어버린 듯 고통스러워했다.


그러한 어둠을 걷어내고 라흐마니노프를 다시금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그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며 다시 펜을 들었고, 그렇게 자신의 주치의에게 헌정한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이 곡은 고난에 휩쓸리던 한 영혼이 마침내 시련을 딛고 평화에 이르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며, 동시에 그의 부활이요, 내면의 승리를 상징한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 다닐 트리포노프


먼저 1악장의 도입부는 폭풍전야의 들판처럼 무겁고 느린 피아노 독주로 제시된다. 곧 위태로운 선율이 점점 고조되다가 이내 거세게 하강하며 극적인 오케스트라로 전환된다.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을 걷는 나그네의 고독을, 돛단배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거센 파도를 견디는 선장의 집념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매섭고 쓰라린 시련 속에서도, '이대로 주저앉으면 죽는다'는 강한 집념이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붙잡는다. 그렇게 격랑을 지나 어느새 찾아온 평온한 햇살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이어지는 2악장에서 그의 음악적 위로는 절정에 달한다. 1악장이 고난에서 평화로 다다르는 극적인 여정이었다면, 2악장은 잠시 편안히 쉬다 가라는 듯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고 그윽한 멜로디가 지친 은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특히 피아노와 클라리넷, 플룻이 주고받는 감미로운 선율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라흐마니노프가 그토록 갈망했던 내면의 안식과 치유의 순간을 표현한다. 이 안온한 휴식 속에서 그는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되찾았을 것이다.


마지막 3악장은 이전 악장의 명상적 분위기를 뒤로하고, 경쾌하고 벅찬 피아노 선율로 마무리된다. 처음의 비장함은 사라지고 활기찬 리듬과 피아노의 현란한 기교가 돋보이며, 이는 마치 오랜 고난을 이겨낸 영혼을 위해 베풀어진 향연을 연상케 한다. 이 악장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강렬하고 두터운 화성과 웅장한 피아노 스케일이 극대화되어, 마침내 안식의 품을 찾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한 인간의 승리를 웅변한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처럼 라흐마니노프 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좌절과 극복,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 위대한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 - <보칼리제> /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 지휘. 로린 마젤


또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는 비단 협주곡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보칼리제(Vocalise, Op.34, No.14)>처럼, 마치 어머니의 따스한 포옹 같이 깊은 위로를 선물하는 작품들도 많다. 목소리가 없음에도 조용히 흐느끼는 듯한 이 성악곡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애잔함과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 그리고 고독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을 담아낸다. 그것은 망명 이후 조국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야 했던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깊은 망향의 아픔과 고독한 내면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2번> 3악장 '아다지오' /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 지휘. 로린 마젤

나아가 압도적인 오케스트라 편성 속에서 진한 정서와 비장미를 선사하는 <교향곡 2번(Symphony No. 2 in E Minor, Op. 27)> 그의 위대한 유산이다. 특히 이 곡의 3악장 아다지오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아름답고 애절한 선율을 응축하며, 그가 가진 낭만적인 서정성의 정수를 보여준다. 길고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클라리넷 선율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과 비련을 노래하고, 이후 현악기들이 이를 받아 발전시키며 거대한 감정의 파고를 이룬다.


이는 떠나온 조국 러시아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내면의 발현이다. 그의 음악에서 왕왕 들리는 교회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울림은, 바로 이러한 향수를 음악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라흐마니노프는 고통을 고통으로만 그리지 않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 어떻게 우울증 극복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 또한 극심한 우울의 시절(또는 지금도) 이 음악에 기대어 위안을 얻었으며, 다시 살아갈 의지를 다잡곤 했다. 이러한 그의 음악은 격동적인 삶 속에서 피어난 비극미의 결정체이자, 동시에 삶의 어둠 속을 헤매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따스한 위로였다.


케노제르스키 국립공원 / 러시아, 아르한겔스크 州


강렬한 폭풍우를 헤친 뒤에 찾아오는 평화처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격동과 고요가 공존하는 위대한 서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 평화와 함께 세간의 냉혹한 평가와 좌절로 우울증에 허덕이던 라흐마니노프 또한, 낭만주의의 황혼 속에서 비로소 안식을 누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알았을까?

그토록 합류하기를 갈망하며 부랑자처럼 낭만주의의 문전을 서성이던 자신이,

낭만주의의 폐막을 장식할 거라고 말이다.





추천곡

-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 Op. 30)

- 전주곡 (Prelude in G minor, Op.23, No.5)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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