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결의 작곡가, 드뷔시

음악으로 그려낸 유채화

by 소담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선구자란 외롭다.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이 아닌 처음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간다는 것, 그 험난함과 고독함은 마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황무지를 묵묵히 개간하는 개척자의 심정과도 같다.


클로드 드뷔시, 그는 인상주의자라는 멸칭 아래 낭만주의와 현대 음악의 경계를 바람처럼 떠돌던 풍운아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과도기적인 인물만은 아니었다. 드뷔시는 낭만주의라는 완성된 밑그림 위에 인상주의라는 필치로 생기를 불어넣고, 두 시대의 간극에서 자주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진정한 개척자였다.


<수련> (1906) / 클로드 모네


설핏 달빛이 비치는 윤슬을 상상해 본다.

그저 손으로 살짝 헤치기만 해도 사라질 듯하지만, 달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물비늘 속에서 잔잔히, 그리고 교교히 일렁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드뷔시는 그런 음악가다. 그의 음악은 명확한 형식보다 잡힐 듯 말 듯한 찰나의 인상, 그리고 감정의 떨림을 포착하여 듣는 이의 마음에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그 감각의 정수는 바로 <달빛(Clair de lune, L.75)>에 담겨 있다.


드뷔시 - 달빛 / 연주. 마틴 존스


드뷔시의 대표작 <달빛>은 그의 음악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로, 몽환적인 멜로디와 오묘한 화성을 통해 아름다운 달빛 아래 움트는 복잡미묘한 정서를 투명하게 그려낸다. 드뷔시는 기존의 전통적 화성 체계를 벗어나, 단지 일시적인 긴장 유도나 해소를 위한 불협화음을 새로운 음색이자 음률로 채용했다. 그의 특기라 할 수 있는 5음음계는 동양적인 이채로움과 부유감을 자아내고, 온음음계는 특정 조성으로의 강한 이끌림을 약화시켜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배가하는데, 이 두 음계의 절묘한 배합은 마치 안개가 수면 위를 유영하듯 은근한 감각을 더하며 드뷔시만의 음악적 개성을 완성시킨다.


드뷔시 - 아라베스크 No.1 / 연주. 니콜라이 루간스키


또한 드뷔시의 작품 중 하나인 <아라베스크(Arabesque No. 1, L.66)> 달빛과 함께 사랑받는 곡으로, 그의 초기 피아노 곡이기도 하다.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건반의 선율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인 이 곡은 그 이름처럼 정교하고도 신비로운 아라베스크 무늬를 청각화한 듯하다. 아직은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의 경계에 있던, 드뷔시의 실험적이고 과도적인 음악관을 드러내는 곡이다.


하지만 그의 인상주의 음악의 정수는 단연 <목신의 오후(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L.86)>라 할 수 있겠다.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에 영감을 받아 쓴 이 작품은 그가 낭만주의의 서사를 넘어 비로소 감각과 색채의 세계로 이행한 분기점이자,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이 완성된 작품이다.


<밤나무 아래에서의 키스> (1859) / 뤼도비크 알로움


이런 그의 음악은 마치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연인의 장난을 연상시킨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조성감과 자유로운 불협화음은 연인의 혈기와 같고, 정처 없이 떠다니듯 미묘하게 이어지는 화음들은 서로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망설이며 눈치를 보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그 묘한 유희 끝에 마침내 연인이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듯, 드뷔시는 모든 불협함 속에서도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파해내며 서정을 부각시킨 음악가였다.


해변가의 드뷔시.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드뷔시였지만, 정작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스캔들과 끊임없는 투쟁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18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드뷔시는 어린 시절 피아노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엄격한 제도권 교육에 회의적이었던 그는 점차 기성적인 음악 이론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음악원을 떠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잠시 당대 유럽 음악계의 거두이던 바그너에 심취하기도 했는데, 이내 그의 장황하고 독일적인 표현 방식에 반감을 느끼며 낭만주의의 자장(磁場)으로부터 탈피하고자 부단히 애썼다.


경제적 궁핍 등 자신을 둘러싼 여건은 넉넉지 않았으나 드뷔시는 그 고됨 속에서도 동양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이어갔다. 또한 평소 음악뿐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자유분방한 기질을 보였던 드뷔시는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며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기도 했다.


피크닉을 즐기는 드뷔시와 그의 딸 클로드 엠마. 거친 예술가였지만, 사랑하는 딸에게는 누구보다 다정한 아버지였다.


한편 그는 이런 혼란스러운 삶 가운데에서 자신의 딸에게서 가장 순수한 위안과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 사랑하는 딸 '슈슈(엠마의 애칭)'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안식처였으며, 이러한 깊은 부성애는 아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고 발랄하게 그려낸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 코너(Children's Corner, L.113)>로 승화되어 그의 음악 세계에 따뜻하고 순수한 빛깔을 더했다.


허나 드뷔시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경제적 궁핍은 계속되었으며, 복잡한 사생활 속에서 끊임없는 주변의 손가락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설상가상 말년에는 암까지 발병하여 투병 와중에도 음악 활동에 전념하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이런 그의 인생은 마치 예측불가한 인상주의처럼 드라마틱했다.


<에라니에서 해질 녘> (1890) / 카미유 피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뷔시는 언제나 묵묵히 자신의 음악적 여로를 걸어 나간 예술가였다. 그는 '단지 인상에 불과하다'는 항간의 편견을 깨고, 구조적 형식이 아닌 순간적인 인상(印象) 자체로도 얼마나 깊고 풍부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지 입증했다. 마치 여백의 미처럼 곧은 선과 화려한 물감으로 빼곡한 그림보다 오히려 질박하고 담백한 표현이 더 깊은 감정적 여운과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조용히 음악으로 들려준다.






추천곡

- 공상 (Rêverie, L.68)

- 기쁨의 섬 (L'isle joyeuse, L.106)

- 바다 (La 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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