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손편지의 시대 : <바이올렛 에버가든>

차가운 기계손의 소녀, 사랑을 배우다

by 소담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


바이올렛 에버가든 OST - A Doll's Beginning / Evan Call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없었던 옛날, 우리는 언젠가 손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시절을 살았었다. 손으로 직접 꾹꾹 눌러쓴 글씨, 종이 위에 번지는 진한 잉크와 흑연의 흔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설렘과 떨림.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전에는 반드시 사려와 고민의 과정이 선행했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쓰여진 편지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숨결이 실려 있었다.


우리는 나날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서, 은연중에 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릭 한 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함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편지라는 매체가 지닌 만과 무게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편지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매개체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마음의 연결고리이자, 보이지 않는 진심이 담기는 소중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낙관과 번영이 넘실대던 벨 에포크의 한복판, 에펠탑 아래 모여든 군중들. 문명의 첨단은 그 시대의 낭만을 우뚝 품고 있었다.


손끝으로 전하는 마음,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가장 생동하게 꽃피웠던 시절을 잠시 되짚어 본다. 바로 찬란한 문명의 아름다움과 풍요가 공존했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이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이어진 이 평화기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황금기가 한데 어우러져 인류가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던 때였다.


전등불이 밤을 빛내우고, 전차와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며,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는 등 새로운 문명이 꽃피웠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손으로 소통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아날로그적 방식을 사랑했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이 스치고 향긋한 차 향이 퍼지던 낭만적인 살롱에서는 깊은 대화와 함께 은밀한 편지가 오고 갔다. 때로는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애틋한 그리움을 나누었으며, 또 때로는 삶의 고뇌와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타인과의 진실한 연결을 꿈꾸었다.


19세기 미국 주간지 '퍽(Puck)'에 실린 제국주의 풍자화. '문명'이라는 깃발을 든 영국이 '야만'의 깃발을 든 아프리카 원주민을 진압하고 있다.
1863년 영국, 물 배급을 기다리는 빈민가 주민들. 이는 당시 사회상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운 낭만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겉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대의 이면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야욕이 꿈틀댔고, 계급 갈등과 빈부격차는 사회 도처에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화려한 문명의 허울에서 인류는 곧 다가올 거대한 전쟁의 먹구름을 인지하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시대의 번영이 빚어낸 역설적인 평화는 결국 전 세계를 휩쓸 잔혹한 전쟁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대지 위에는 황량한 폐허만이 남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상흔이 자리 잡았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문명의 어둠 속에서 처롭게 피어난 가 있었다. 들꽃처럼 순수했던 그녀는 전쟁 병기로서 험난한 임무를 수행했고, 그 참화 속에서 살아남아 비극의 증인으로 새로운 시대를 마주해야 했다.


전쟁은 그녀에게 깊은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소녀에게 갑작스러운 평화는 너무도 생경하고 혼란스러웠다. 잃어버린 양팔의 감각처럼, 그녀의 마음에도 커다란 공허함이 드리워져 있었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자동 수기 인형 서비스, 바이올렛 에버가든입니다."


이제 소녀는 이 아닌 타자기를 잡고서 사람들의 마음을 활자로 엮어주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녀의 이름은 바이올렛 에버가든. 그녀는 바로 이 아날로그 감성의 정점에 서서 잊혀져 가는 편지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우는 존재이자, 아름다웠으나 상처투성이였던 시대가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바이올렛에게 남은 것은 육체와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흔,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상관인 길베르트 소령이 남긴 "사랑해"라는 알 수 없는 한마디뿐이었다.


감정이라는 개념조차 모른 채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병기로 훈련받은 그녀에게 이 단어는 삶에 대한 거대한 물음표였다. 소령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마치 그의 눈동자를 닮은 에메랄드 브로치처럼, 그 말은 그녀의 가슴 한편에 각인처럼 깊이 박혔다.


바이올렛은 소령의 마지막 말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 의미를 찾아 헤매던 중 길베르트 소령의 오랜 전우 진스 중령의 도움으로 'C.H. 우편사'에 취직하며 자동 수기 인형(Auto Memories Doll)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타자기로 편지를 작성하는 바이올렛.


작품 속 자동 수기 인형은 의뢰인의 감정과 생각을 글자로 옮겨 편지를 대필해 주는 직업이다. 아직 교육의 기본권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고, 대다수의 시민이 문맹층인 작품 속 배경에서 이들의 존재는 빛을 발했다.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또는 어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자동 수기 인형은 끊어진 소통의 다리이면서 마음과 마음을 잇는 통로이기도 했다. 러한 중요성으로 여금 자동 수기 인형은 엄연한 지식층의 일원자 사회적인 선망을 받는 직업으로 대우받았다.


하지만 바이올렛에게 자동 수기 인형란 직업은, 단순히 사회적 성공 넘어 그보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구였다.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어 시작한 일. 그녀는 어쩌면 이 직업이 그 질문에 다가가기 위한 관문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그녀는 자동 수기 인형으로 살아가며 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사람들의 감정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 멀리 떠나보낸 자식을 향한 그리움, 미래를 약속하는 연인의 맹세, 혹은 헤어지는 이별의 아픔까지.


다양한 의뢰인들의 사연을 마주하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을 하나하나 체득해 나아간다. 차가운 기계 의수로 타자기를 두드리던 그녀의 손끝에는 점차 온기가 스미고, 공허했던 눈망울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은 바이올렛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기나긴 여정이기도 했다. 그녀가 만나는 모든 의뢰인은 자신에게 소중한 감정의 조각들을 건네주었고, 바이올렛은 그 조각들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성장해 갔다.


그렇게 감정을 배우던 바이올렛은, 타인의 마음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자리했던 미지의 감정들, 시에 길베르트 소령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과 그리움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한 부분임을 자각한다.


바이올렛의 정신적 지주이자 그리움의 대상, 길베르트 소령.


그녀의 감정 학습은 자신의 삶에 거대한 물음표를 던진 한마디, 길베르트 소령의 "사랑해"는 말을 이해하려는 시도와 궤를 함께했다. 길베르트 소령. 부르기만 해도 먹먹한 그 이름은 바이올렛에게 길베르트 소령은 단순한 상관을 넘어 그녀를 '인간'으로 대해준 유일한 존재였다.


그에게 바이올렛은 무기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였고, 소령은 감정이 없던 소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며 비인간적이었던 그녀의 삶에 처음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 알 수 없는 한마디는 전쟁이 끝난 후 바이올렛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단어가 되었으며, 그녀가 자동 수기 인형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기쁨, 슬픔, 분노, 행복, 그리움 등 복잡다단한 인간의 감정들을 체험했다. 슬픔에 잠긴 부모의 눈물, 연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 혹은 오랜 친구에게 전하는 우정의 메시지를 통해 바이올렛은 곧 사랑이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수많은 감정의 파편들이 모여 이루어진 복합적인 결정체임을 깨우치게 된다.


한때 과거에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로 고통받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아픔마저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감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


바이올렛은 더 이상 명령에만 따르는 병기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바이올렛은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려다, 결국 자신의 진실한 마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령이 남긴 마지막 말 “사랑해"는 그녀에게 단순한 언어가 아닌 삶을 꿰뚫는 진실로 다가왔다.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고, 고통스럽고, 또 아름다운지. 바이올렛은 자신의 삶과 편지를 통해 그 감정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내 그녀는 길베르트 소령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는 자신이 걸어온 모든 여정과 깨달음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었다.


"소령님, 이제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들판을 거니는 바이올렛. 누군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향해, 그녀는 어디로든 기꺼이 달려간다.

바이올렛은 여전히 자동 수기 인형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엮어주고 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편지들은 단순한 문자를 넘어,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삶을 잇는 따뜻한 연결고리가 된다. 이제 그녀의 눈빛에는 과거의 공허함 대신 깊은 이해와 연민의 빛이 감돌고, 차가웠던 기계 팔은 진심을 담는 따뜻한 도구가 되었다.


이처럼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한 소녀의 치유와 성장을 통해 소통의 진정한 의미와 감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아울러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작금의 디지털 시대. 우리는 과연 기술의 편리함만을 좇으며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비극적인 전쟁의 상흔 속에서 피어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아날로그적 감성의 가치와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일깨운다. 아직 이 작품을 접하지 않았다면, 바이올렛이 전하는 진심 어린 편지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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