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의 완전함, 쳇 베이커

연주는 차갑게, 그러나 가슴은 뜨겁게

by 소담


1988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파란만장했던 한 남자의 인생이 끝났다.


초여름 어느 새벽, 한때 젊음과 낭만의 아이콘이었던 남자는 한 호텔의 창문 아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비참히 생을 마감했다. 그의 방에 덩그러니 놓인 마약들과 트럼펫은 마치 다잉메세지로써 그의 사인을 묵시하는 듯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아야 했을까. 그는 죽기 직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윽고 이 의문은 멀리 가지 않은 채 트럼펫 앞에 멈추었다.


남자의 인생은 생전 그가 트럼펫으로 빚어내던 즉흥 연주도 같이 파란만장했다. 때로는 예측불허의 음표들처럼 역동적이었으며, 또 때로는 없는 하향선처럼 쓸하고 비감한 음율로 가득했다. 재즈계의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은 그의 이름은 바로 쳇 베이커다.


쳇 베이커 - Let's Get Lost
쳇 베이커 (Chet Baker)

'재즈계의 제임스 딘', '쿨 재즈의 왕자(Prince of Cool)'로 불리는 쳇 베이커는 그 별명만큼이나 조각상 같은 수려한 외모에 나른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속삭이는 듯한 여린 트럼펫 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쳇 베이커의 연주에는 백설탕처럼 정제된 감미로움과 탄산 방울처럼 천진난만한 순수함이 가득했다. 그의 트럼펫은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흐르는 한 줄기 빛 같았고, 보컬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다가왔다.


쳇 베이커 - I Fall in Love Too Easily

한편으로 이런 별명과 이미지 때문에 그는 종래의 재즈계에서 '여자들에게 감성팔이나 하는 부잣집 도련님', '재즈도 모르는 햇병아리'라며 순수 예술인 재즈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따가운 비난과 냉대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의 나른하고 서정적인 트럼펫과 보컬은 종종 '가볍고 진지하지 못하다'는 오해를 샀고, 이는 그가 오직 외모와 대중성에만 편승하는 아티스트라는 편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더욱이 당시 재즈계의 흐름은 하드 밥(Hard Bop, 강렬하고 뜨거운 비밥) 넘어 다양한 시도를 추구하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끌고 있었다. 한때 쿨 재즈의 태동에 기여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그는 쳇 베이커의 감미롭고 서정적인 쿨 재즈 스타일을 '진지하지 않다'며 탐탁치 않아 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음악적 견해뿐 아니라 인종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미묘한 긴장감이 존재했다.


쿨 재즈의 순수한 서정성을 노래한 쳇 베이커와, 재즈의 전위성을 대표한 마일스 데이비스. 이 둘은 상반된 음악적 지향점과 복잡한 개인 감정으로 인해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었고, 이는 히 미국과 소련의 냉전을 방불케 했다.



이렇게 찬란한 빛과 냉혹한 비난이 교차하던 와중 쳇 베이커의 삶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천부적인 기질이랄 수 있는 지독한 약물 중독과 방랑벽, 이로 인한 끊이지 않는 고통은 쳇의 심신을 좀먹어갔고, 설상가상 그를 덮친 괴한들의 린치는 그의 커리어와 인생 전반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어쩌면 그는 리스 신화의 아라크네와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절륜한 베틀 솜씨에 대한 오만으로 신의 권능에 도전하다 결국 거미가 되어버린 아라크네처럼, 쳇 베이커는 뛰어난 연주 실력과 연약했던 내면으로 인해 마약이라는 유혹에 깊게 빠져들었고, 이는 곧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씨앗이 되었다.


감미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던 손은 수전증 환자처럼 떨려가고, 그윽하던 눈빛은 퀭하게 찌들어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별처럼 찬란하리라고 믿었던 빛, 그렇게 명이 다해가는 라멘트 전구처럼 광채를 잃고 명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시련은 그의 음악을 더욱 깊고 진솔하게 만들었다.


" 정교함이 떨어져서인지 소리에 개성이 생겼어. 예전의 쳇 같지만 더 깊어. "
- 영화 <본 투 비 블루> 中 -



안면 골절과 앞니 손상을 안겨 준 이 사건은 트럼페터인 그에게 있어 사형 선고와 다름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부상을 당했을 때 결코 그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리라고 보았다. 재활을 위해 음악 활동을 재개했을 때도 여전히 동정과 조소의 시선은 계속되었다. 마치 공기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졌다고, 세련된 기교도 없다면서. 그 말대로였다.


이전의 현란한 테크닉은 더이상 없었다. 기교적 완벽함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잃음으로써 도리어 더욱 강한 무기인 진실함을 얻게 되었다.


그의 트럼펫 소리는 이제 소년의 여린 한숨을 넘어, 인생의 모든 풍파를 견뎌낸 사내의 노래가 되었고 그의 목소리는 모든 가식 없는 진심을 담은 고백처럼 들렸다. 그 안에는 특유의 슬픔과 쓸쓸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시련을 통해 얻은 깊은 성찰과 인간적인 공감이 녹아 있었다.


쳇 베이커 - Over the Rainbow (1962)

그가 1962년 녹음한 'Over the Rainbow'는 이은 쳇의 면모를 응축한 곡이라고 본다. 희망찬 가사처럼 높이 상승하는 원곡과 달리, 이 버전은 낙관적으로 벅찬 희망을 노래하지도, 화려한 기교를 뽐내지도 않았다. 무미건조하면서도 쓸쓸한 음색은 역설적으로 모든 것에 초탈한 듯한 담담한 체념과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쳇의 마지막 순간 또한 그러했다. 1988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끝이 난 그의 파란만장한 삶. 이 비극적인 죽음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트럼페터의 쓸쓸한 최후이자 쳇의 고된 삶의 종지부였다.


나는 아직도 그가 죽기 직전 어떠한 생각을 했었는지 모른다. 그저 거미가 되어서도 실을 잣는 아라크네처럼 그가 남긴 수많은 유작들을 통해 파란만장한 삶의 실타래를 반추할 뿐이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 역시 쳇처럼 현란한 기교와 유려한 문장으로 나의 불완전함을 감추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간 나는 완벽함을 추구한 글쓰기를 해 왔다. 한 치의 오차없는 정보, 유려한 문장, 빈틈없는 논리. 그것이 좋은 글의 미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나의 진심, 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담겨 있었는가? 어떻게 보여지느냐만 의식했을 뿐, 그 안에는 내가 없었다. 나의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 더 치밀하게, 더 완벽하게 보이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쳇의 음악이 내게 가르쳐준 건 달랐다. 그의 음표 하나하나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 때로는 불안정한 음정마저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정제되지 않았음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역설적인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추구했던 완벽함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될 수도 있음을. 내가 드러내길 두려워했던 불완전함 속에, 바로 진정한 완전함이 깃들어 있다는 역설을 말이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그렇게 함께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 아닐까.



미완성 작품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깨진 기와가 남모를 사연을 품듯이 우리의 불완전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유한 개성과 진정성을 부여한다. 서투른 필치, 때로는 논리의 비약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고뇌와 성찰을 담고 있다면 그 글은 온전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헛된 기교로 나의 불완전함을 감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서투름, 나의 결핍, 나의 방황마저도 결국 나를 이루는 소중한 조각들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의 글은 나의 이야기가 담긴 완전한 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추천곡

- Blue Room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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