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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치와와였다

대화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by 장혁수

1. 나는 너와 대화하고 싶다.

요즘에는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기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혹시 내가 그의 예민한 부분을 건들지는 않을지 걱정부터가 앞선다. 나는 태생이 말쟁이여서 말하는 걸 참 좋아한다. 물론 듣는 것도 참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에세이를 쓰는 이유도 말하고 싶어서다. 대화란 주고받아야 하지만 에세이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되니까 오히려 더 좋다. 그래도 역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늘 궁금하다. 어느 날엔 동네 벤치에 앉아 계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인터뷰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다.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듣고 싶었지만, 나의 행동력이 거기까진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느 외국 인플루언서가 그와 비슷한 느낌의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는 것을 봤다. 그는 차와 찻잔을 가지고 다니며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에게 차 한잔을 권하고 그들의 인생을 들었다. 너무너무 멋진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나오는 불그스름한 노을과 풍경, 할아버지의 멋진 인생 이야기는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한발 늦었지만, 나도 언젠가는 같은 주제로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요즘은, 특히 한국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참 어렵다. 물론 나조차도 낯선 이가 나에게 이유 모를 호감을 가지고 말을 건다면 “도믿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긴 한다.

무언가 나와 진짜 대화를 하고 싶다기보단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어쩔 수 없다만, 대화하길 좋아하는 나로선 여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번은 역전에서 어린 여성 한 분이 길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항상 대화에 굶주려 있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엄청나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의 친절한 설명에도 급히 떠나지 않고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계속 대화하다 보니 그녀는 뭔가 생각대로 되지 않은 듯이 불편해 보였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와 그녀를 슬쩍 바라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가곤 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도믿”이었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도와주려다가도 대화가 뭔가 도믿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애매하니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한참이나 서서 대화를 나눈 그녀는 이내 지쳤는지 자긴 가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내 얘기가 재미없었나...” 하며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내 집에 와서 누나와 부모님께 이 얘기를 했다. 그들은 박장대소하며 그녀가 도믿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나에게 일러주었다. 그제야 내 머릿속에서 그녀와의 대화 내용들과 그녀가 왜 대화 중간중간 불편해했는지, 사람들이 왜 이상하게 쳐다봤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이후 한동안 역전을 지날 때마다, 나는 죽은 눈으로 아무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다녔다.

내가 이 일로 상처받았던 이유는 대화에서 나 혼자만 진지했고 나 혼자만 진심이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 이후론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를 시작할 땐 약간 조심스럽다. 특히 역전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면 앞으론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나는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을 드러냈다. 마치 배를 까놓은 강아지처럼. 그런데 알고 보니 상대방은 나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큰 상처였다.

아마 다른 이들도 이런 비슷한 이유 때문에 대화를 시작하거나 누군가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 힘든 것 아닐까? 혹시 나 혼자만 진심이면 어떡하지? 상대방은 나와 친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과 같은 것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그런 것일지도?

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배신감은 더 클 수도 있겠다. 확인된 사람이 아니라면 시작도 하기 싫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대화를 시도할 거다. 상처를 감수하더라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하지만 상처받을까 봐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진 않다. 나는 그냥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대화하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인정과 위로

군대 가기 전 제주도를 혼자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매우 사회적인 사람이다. 외로움을 잘 타고, 혼자 외출도 못한다. 심지어 밥도 혼자서 먹을 바엔 굶어버리곤 했다. 그런 내가 친구는 없고, 군대 갈 시간은 다가오니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군대로 끌려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해!!” 하는 불안감에 제주도행 비행기를 하루 만에 끊고 짐을 싸들고 떠나버렸다.

J인 나의 삶에서 이렇게 무계획으로 무언가 실행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일단 오토바이를 하나 빌리고 무턱대고 빈티지 샵으로 향했다. 혼자 여행하니 좋은 점은 비효율적으로 동선을 짜도 된다는 것이다. 배려해야 할 동행자가 없으니 그날은 하루 종일 빈티지 샵만 돌아다녔다.

처음 들어간 빈티지샵 사장님은 딱 봐도 어마무시한 멋쟁이 었다. 그의 콧수염에서부터 고집스러운 취향과 성격이 느껴졌고, 그건 너무너무 멋있어 보였다.

나는 멋진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상품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사장님은 본인의 가게와 제품에 대한 자부심 어린 설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너무… 멋져용…”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낭만 하나로 육지의 모든 걸 버리고 온 그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했을까? 나의 진심 어린 인정에, 나는 그가 함락당해 버렸음을 느꼈다. 그는 본인의 휴대폰으로 찍어온 인디언들의 사진과 제품에 대한 각종 여러 가지를 보여주며 기뻐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내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물론 손님들 사진을 원래 찍어주신다고 했지만)

이 이후로도 다양한 카페와 가게들을 가봤지만, 만난 모든 사장님들은 모두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추지를 않으셨다. 나는 그때 혼자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다. 만약 일행과 함께 왔다면, 나는 일행과 대화하느라 그들의 모든 제품을 공들여 구경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멋진 사장님들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겠지.

나도 사장님께 어디에나 있는 그저 손님 1로 기억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혼자 오토바이로 여행 왔다 하니, 낭만 있게 생각해 주시며 본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본인에 대해서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거나 알아줄 때 기뻐하는 듯싶다. 그 사장님의 패션에 대한 본인의 철학과 그 열정에 대해서 말했고 나는 혼신의 리액션으로 ‘멋지다..!’를 반복했다.(진심이었음) 그의 만족하는 표정은 듣는 이의 입장에서 상당히 기분 좋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건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그 사장님의 인생을 전부 들은 건 아니지만, 그만의 멋을 지켜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그걸 낭만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미련해 보일 수 있고 손가락질받을 수도 있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런 것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그의 삶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인정과 위로가 필요한 듯하다. 대화를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의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사이가 깊어질수록 더 깊은 상처 혹 자신도 모를 상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힘듦을 인정해 주고 위로해 준다면 좋을 것 같다.

3. 더 깊은 대화

나는 가끔 대화할 때 내가 하는 말이 재밌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앞에서 내 얘기를 듣고 있는 이가 사실 별로 관심 없는데 배려하는 차원에 그냥 들어주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넌지시 “아 내 얘기 너무 재미없지?”하고 말해본다. 그때마다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 너무 재미있어 계속해봐”이렇게 말한다.(해준다)

나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닮고 싶단 생각을 하곤 한다. 그의 삶을 동경하게 되고 그가 가진 매력을 뺏고 싶은 마음이다.

대화하기 싫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가끔 이유 없이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풍기는 분위기에서 뭔가 내가 가지지 않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 주로 이런 부류에 속하는 듯싶다.

저 사람의 속마음은 뭘까? 혹은 저 사람은 무슨 관심사를 가졌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어떤 티브이 프로에서 본 건데, 사람은 모두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산단다. 내가 학교나 직장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또 가정이나 친구들에겐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난 어렸을 때 통일되지 않은 나의 삶의 모습이 힘든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진짜 웃긴 개그맨이었다. 항상 만나는 친구마다 나에게 나중에 개그프로에 나가라고 말했었다. 가정에서는 좀 과묵한 편이었던 것 같다. 동생들에겐 한없이 무서운 형이었고 매사가 대충대충 이었던 것 같았다. 사회에서는 늘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고, 그 모습 속에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끌어주기도 했을 정도로 선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그 모습을 학교 선생님에게 발견당해서 학교에서 선행상을 받게 되었는데, 나는 기쁜 감정보단 학교에서의 나는 이런 애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오히려 내가 이런 상을 받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나는 진짜 나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항상 괴롭게 했다.

왠지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 가식적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죄책감이 있었다. 그 티브이 프로에선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은 좋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항상 나의 사회적 가면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름 성공한 듯싶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도 나는 한결같이 한 인격체로 대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나 싶다. 이 모습도 나고 저 모습도 나인걸. 굳이 하나로 만든다면 좋겠지만 굳이 그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난 당신이 가면을 썼든 안 썼든 사실 상관없다. 나는 당신이 대화할 때 점점 무장해제되어서 속마음을 드러내는 대화상대가 되길 바란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음과 고민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한다. 간혹 내가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끄럽고 마음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상대.

깊은 신뢰가 있다면 가능하겠지 싶다. 약간 성당에 있는 고해성사 같은?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 마음 놓고 얘기할 상대 한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우린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자. 상대방의 약점을 드러내기보단 덮어주고 이해하는 그런 대화 상대.

4. 치와와

본인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건 축복이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겠지.

요즘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나도 무리에서 항상 웃긴 포지션을 맡아서 활동해 왔다. 항상 내가 사용하던 레퍼토리는 비난 개그였다.

예를 들면 녹색옷을 입고 온 친구에게 “대나무냐?” 이런 거 말이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재밌다고 할지 몰라도 당사자는 기분 나쁠지도 모른다. 그 당시엔 나도 몰랐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린 사건이 있었고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사과한 뒤 다시는 남을 비난해서 웃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나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개그를 시작했다. 그러자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나를 돼지라고 불렀다면 사람들은 나를 돼지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곧 이 방법도 버렸다. 결국 나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상대도.

비난은 무언가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위이다. 상대방을 비난하면 상대장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위이고 나를 비난하는 것은 나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위이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우린 너무 서로에게 짖어대기 바쁘다. 어느 유튜브에서 우린 서로 너무 증오한다고들 한다. 우린 왜 우리를 싫어할까. 그 유튜브 영상에 가장 많은 좋아요가 달린 댓글은 “그렇다 우린 사실 치와와였던 것이다 “라는 댓글이었다.

치와와는 얼마나 볼품없이 작은 존재인가. 그가 큰소리로 짖어댄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화나 있는 치와와는 피곤할지도 모른다. 먼저 스스로를 사랑해 보는 것이 좋겠다. 나를 사랑하다 보면 남들도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를 이해하면 남들도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용서해 보고 남들도 용서해 보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고 남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대화란 참 어려운 일이다. 혹 상대방이 나와의 대화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우린 대화를 통해 살아간다. 어디선가 지나가다 나를 발견한다면 말 걸기를 두려워하지 마시길. 언제나 당신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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