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희극 1
76세에 홍 영감은 혼자 남겨졌다. 그의 아내는 난소암이 발견되고 반년을 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암이 발견되기 직전 그는 이 교수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며 음주와 노름을 즐겼는데, 그 무리에 있던 할머니와 바람을 피웠다. 그 할머니에게 주기적으로 돈이 건네진 것을 아내가 알고는 이혼하겠다고 강경히 나왔다. 그의 바람기가 한두 해가 아닐 터인데, 인제 와 이혼하겠다고 아들에게까지 알리며 일을 크게 만드는 아내를 무척 괘씸히 생각했다. 이혼의 말이 오가던 중 아내는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더 살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살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아내를 두고두고 원망했다. 아내는 이혼 대신 죽음으로 그에게 복수했던 것이다.
아내의 장례식에 그는 슬피 울었다. 장례 절차는 아들이 맡아서 했고, 아내 명의로 있던 꽤 많은 땅을 아들에게 상속했다. 상속세만 1억이 넘게 나왔다. 땅을 상속하며 그는 내심 아들이 자신을 맡아주리라 기대했다. 자기 밥을 한 번도 챙겨 먹은 적이 없던 그였다. 하나뿐인 아들이 그를 방치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아들은 집에 요양보호사를 부르고 그를 혼자 살도록 내버려두었다. 아내와 살던 집에 출퇴근하는 요양보호사가 오고 아들 내외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러서 얼굴을 비췄다.
술을 많이 마신 어느 날 밤 그는 자기 연민으로 슬피 울었다. 자신은 엄마를 잃었을 때가 아니라 아내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고로 가서 농약을 찾아 방으로 돌아왔다. 농약을 마시기까지 큰 망설임은 없었다. 농약을 마시고 자리에 누웠는데 진짜 죽을까 봐 무서워졌다. 급히 아들에게 전화해 농약을 마신 사실을 알렸다. 아들은 놀라 울면서 아빠에게 달려갔다.
응급실에서 긴급 처치를 했고 그는 요양병원에서 3달을 요양했다.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으나 노쇠한 그의 신체는 회복이 더뎠으며, 가벼운 치매가 왔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의사도 아들도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 아들의 차로 퇴원해서 집에 가니, 며느리와 아들은 주말부부로 지내며 아들이 자신과 함께 살겠다고 한다. 이제 혼자 자지 않아도 된다. 밤에 잠에서 깼을 때 옆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가 되었다. 그 사람이 아들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든든했다.
약한 치매가 온 홍 영감은 밥을 먹는 것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숟가락에 음식을 올려서 입으로 가져가려면 절반 이상의 음식이 상에 떨어졌다. 누군가 밥을 먹여주지 않으면 밥 한 공기를 제대로 먹기 위해 반나절은 필요할 수도 있었다. 또한 대소변이 의지대로 되지 않았는데,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의 구조상 신호가 와서 걸어가는 중에 실수하기 일쑤였다. 용변이 급하면 손에 잡히는 물건에 볼일을 봤는데 그것은 밥그릇이거나 국그릇이었고, 어떨 때는 현관이기도 했다.
아들이 출장을 가거나 낚시를 가면, 그의 아침과 저녁은 며느리가 와서 준비해 줬다. 오늘도 베트남으로 출장 간 아들 대신에 며느리가 출근길에 들렀다.
"아버님. 현관에 물은 왜 뿌리신 거예요?"
며느리가 들어서면서 묻는다. 어젯밤에, 현관에서 볼일을 본 일이 떠올랐지만 얼버무리며 대답한다.
"어…. 거기 뭐 물병이 넘어졌니?"
걸레를 찾아 현관을 닦고 있는 며느리를 홍영감은 물끄러미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