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이 짧은 문장은 언제나 생각보다 어렵다. 이름과 나이, 직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조금 더 솔직하게 ‘나는 어떤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 문득 말문이 막힌다. 그 질문은 사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라는 훨씬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 돌아가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뜨개질을 좋아해서 매우 정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은 매우 사교적이고 활동적인사람입니다.”
“저는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적응력도 빠르며 여러 가지 일을 좋아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처음엔 멋진 키워드를 떠올리려 했는데 자꾸 싫어하는 걸 적고 있더라고요. 제지당하는 거, 판단받는 거, 편견 있는 거, 부정적인 말, 기운, 행동들… 다 싫어요. 머리 쓰는 것도 싫고요. 저는 몸을 쓰는 걸 좋아하고 자유를 추구해요. 열정적으로 할 땐 아주 열정적인데, 안 할 땐 완전히 안 움직여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이 불안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심리학과 예술을 통해 나만의 작품에 빠져드는 걸 즐기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마음속 작은 변화를 도와주는 교육과 코칭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스쳐 지나가는 일이라도 지적 호기심으로 열정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재고 따지지 않고 먼저 도전하는 편이에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좋아해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겉은 좀 퍽퍽해 보이지만 속은 부드럽고 감동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잘 웃지 않아서 우울해 보인다는 말을 듣지만, 차분하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여행과 요리를 좋아해요. 낯은 좀 가리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입니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하러 자주 다니지만 스스로는 굉장히 집순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에선 ‘네가 무슨 집순이냐, 완전 외향적이지 않냐’고 하지만 전 MBTI도 I고요. 모순적인 특성을 같이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산책을 좋아해요. 친구들은 제가 리액션이 너무 좋아서 방청객 같다고 말해요.”
자기소개가 끝나자, 사회를 보시던 선생님이 말했다. “자기소개 잘 들으셨죠? 아직 서먹서먹하지만, 소개를 듣고 나면 ‘아, 나랑 겹치는 부분이 있구나’, ‘의외로 집순이신 분들이 많구나’ 하게 되죠.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이 따뜻한 분들도 많고요. 오늘 자기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순서로 넘어가볼게요. 너무 멋졌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묻는다.
'왜 나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왜 저 말에 상처를 받을까?'
'왜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을까?'
이 질문들은 삶의 방향이 흐려질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오른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살아갈 방향을 찾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건 단순한 자기소개용 정보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성과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는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 넘쳐나는 시대다. SNS에는 모두가 자신을 소개하고, 말하고,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점점 더 자기 자신을 모르고,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규정짓는 일에 익숙해진다. 자기소개는 점점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보일까’를 조율하는 일이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가끔, 나를 설명하는 모든 말들이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자기를 안다는 건 스펙이나 특징 몇 개를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을 들여다보고, 낯선 내 안의 모순을 마주보는 일이다. 슬픔에 민감한 나, 실패 앞에서 작아지는 나, 사람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나. 그렇게 모순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자기 이해는 시작된다.
자기 이해는 완성형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문장을 평생에 걸쳐 써 내려가는 삶의 작업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자주 바뀌고, 고쳐지고, 다시 쓰인다. 결국, 자기소개란 지금의 나를 잠정적으로 정리해보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나를 소개하더라도 그걸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가 자신을 알고 싶어하는 이유는, 더 잘 살기 위해서고, 더 따뜻하게 관계 맺기 위해서며, 때로는 그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좋은 자기소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