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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l 11. 2023

댕댕런에 가다

2022 댕댕런에서

 나는 도담이와 추억을 더 만들고 싶어졌다. 그가 은퇴하기 전 뭔가 뜻깊은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았다. 평창에도 놀러 가고 제주도도 갔지만 그것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추억이 필요했다. 그런데 뾰족이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올해는 코로나가 끝나서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댕댕런을 개최할 생각이에요.”

 그때 유튜브 라이브에서 강형욱이 말했다. 나는 강형욱 훈련사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종종 그의 라이브를 보고 있었다.

 “댕댕런?”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정확히 뭘 하는 건지 몰랐던 나는 녹색 검색창에 ‘댕댕런’을 쳐보았다. 행사에 참여해서 걸으면 유기견 센터 아이들에게 사료가 기부되는 행사였다.

 “기념품, 기념품!”

 보통 걷기 행사에는 꼭 기념품이 있는 법. 나는 기념품을 찾아보았다.

 “강아지 간식, 참가자 유니폼, 반려견 유니폼(별매)... 메달!!”

 완주한 사람들에게 메달을 주는 것 같았다.

 “행사 당일 행사장에서 강아지 배변을 부스에 가져가면 반려견 간식으로 교환해 드립니다.”

 뭐지 이 RPG 게임 같은 체험은! 두근두근!

 나는 테디베어에게 전화를 했다.

 “댕댕런 가자 댕댕런!”

 “댕댕런? 그게 뭔데?”

 “강형욱이 주최하는 거, 반려견 동반 걷기 행사”

 “좀 먼 데? 송도야. 송도 달빛 어쩌고 공원이라는데?”

 “복지콜 대절해서 가면 되지 뭐. 가자, 가자! 메달 준대!”

 테디베어는 나의 떼에 못 이기는 척 참가신청을 해주었다.

 ‘강형욱 훈련사를 만날 수 있어! 도담이랑 메달을 받을 수 있어! 게다가 개똥 RPG 게임 체험도 할 수 있어!’

 댕댕런 행사까지는 한 달 남짓 남았지만 나는 설렘에 벌써부터 잠을 자지 못했다.

 “근데 복지콜 대절 실패하면 어쩌지? 토요일이라 치열할 텐데...”

 “그럼 일반 택시라도 잡고 가든지 하지 뭐. 송도까지 지하철을 타도 되고...”

 “으아.. 5km도 걸어야 하는데 지하철을.. 끔찍하다... 아직 날도 더운데.”

 나는 행사 전주 금요일이 오길 기다렸다. 장애인 복지콜을 대절하려면 이용할 날로부터 딱 일주일 전에 신청 접수를 받기 때문이었다. 신청을 한다고 해서 다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9시가 되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 100% 선착순제였다.

 “8시 59분...”

 그리고 당일. 시각 부분에 보이스 오버 포커스를 맞춰두고 하염없이 9시를 기다렸다.

 “9시!!”

 나는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계속 통화 중. 으아 안 되는데...

 “네. 서울생활이동지원센터입니다.”

 ‘걸렸다!’

 “저 다음 주 토요일 대절되나요...?”

 “네. 딱 큰 차 두 대 남았네요.”

 극적으로 콜 대절에 성공했고 우리는 송도로 향했다.

 “도담아, 오늘은 너 안내견 아니야. 누나 반려견이야. 여긴 반려견 걷기 행사라고.”

 나는 미리 택배로 받은 도담이 행사 유니폼을 입히며 말했다. 그렇다. 도담이는 오늘 안내견이 아닌 반려견으로서 출전하는 거다. 이전에 안내견 차림으로 다른 걷기 기부 행사에 참여한 적은 있어도 반려견으로서 참여한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내견이지만 나에겐 한없이 귀엽고 소중한 반려견 도담이. 그와 반려견으로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행사장은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한 걸음만 떨어져도 강아지가 서너 마리는 있을 정도였다. 몇 천의 반려인들이 모였으니 당연하겠지만 리드줄만으로 도담이를 컨트롤하기엔 너무 많은 개들이 달려왔다.

 “안되겠다. 하네스는 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네스를 채웠다. 그래도 노란 코트를 안 입어서인지 코트를 입혔을 때보단 덜 주목받는 듯했다.

 완주 코스는 5km. 우리는 후발대로 출발선에 섰다.

 “출발!”

 나뭇가지가 드리운 트레킹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코스 일부엔 바다도 보이는 모양이라서 갯벌이 보인다고 테디베어가 말했다.

 - 학학학!

 도담이가 힘껏 당겼다. 그의 앞지르기 본능이 발동 중이었다. 도담이는 누가 자신의 앞에 서는 걸 싫어해서 꼭 자기가 맨 앞에 서려고 용을 쓴다.

 “도담아 이건 경주가 아니야. 경치를 좀 즐겨봐. 저기 나무도 있고. 냄새도 좀 느긋하게 맡아보고. 서울이랑 다른 좋은 공기잖아.”

 도담이는 내 말을 무시하고 바로 앞 견모차를 추월했다.

 “반칙. 맞은편 길로 가면 안 되지. 자동차였음 큰일 난다.”

  - 학학학학!

 도담이 꼬리가 마구 내 종아리를 때렸다. 완전 들떠 있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봉사자들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중간에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물을 주는 부스가 있었다.

 “이제 반 왔다. 물 좀 마셔.”

 - 벌컥벌컥벌컥!

 도담이가 충전이 되었는지 다시 속도를 높여 걸었다. 바닷가라 제법 습도도 있고 날도 더웠지만 도담이는 잔뜩 신이 나서 지칠 줄을 몰랐다.

 “너, 곧 은퇴하는 거 맞니? 누난 지금 힘들어 죽겠어. 너보다 내가 먼저 은퇴하겠다 야.”

 그때 도담이가 주춤주춤 걸었다.

 “아 화장실 시간이네.”

 나는 배변 벨트를 도담이 허리에 채웠다.

 - 끄응!

 사방이 흙밭에 풀밭이니 화장실도 지천이었다. 도담이는 몇 번인가 뱅글뱅글 돌다가 시원하게 속을 비웠다.

 “개똥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아이템을 가지고 이벤트에 참여해 보십시오.”

 “그게 뭐야.”

 테디베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는 눈이 보이던 시절 엄청난 RPG 게임 덕후였으므로 이 멘트를 날려볼 즐거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개똥을 NPC에게 줘야 해. 보상으로 간식을 받을 수 있댔어.”

 “NPC라니, 아무리 봐도 메달이 아니라 그거 하러 온 거 같은데?”

 “사실 그럴지도.”

 테디베어가 또 웃었다.

 “완주!”

 흙길과 비탈길, 살짝 돌길을 걸어 우리는 도착지점에 왔다.

 - 헥헥헥!

 “덥지? 물 줄까?”

 도담이가 텀블러에 남은 물을 모조리 먹어버렸다.

 “이제 교환해야지! 메달, 간식!”

 나는 행사 참여에 필요했던 어플을 확인했다. 어플에는 5km 이상이 잘 찍혀 있었다.

 “메달은 저쪽에서 받는 거 같아.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늘도 없고.”

 “아이템 교환은?”

 “잘 모르겠네. 안 보여 여기선. 좀 돌아다녀 봐야 할 거 같아. 그늘에서 쉬고 있어. 바꿔 올게. 가서도 좀 기다려야 할 거 같아.”

 내 몸뚱이는 더위에 이미 시뻘겋게 익어 있었다. 도담이도 더운지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반쪽 RPG구만. NPC는 기다리게 안 하는데...”

 “아가씨 현실 세계로 돌아오세요.”

 “칫.”

 나는 누워있는 도담이에게 말했다.

 “도담아, 또 똥 안 마려?”

 “아이템 더 모으려 하지 말고. 도담이 하루 한 번 하는 거 알잖아요.”

 “쳇. 나를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테디베어는 나를 나무 밑 그늘에 데려다주고 길을 떠났다. 사람들은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이템 교환과 메달에 심취해 있던 탓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나는 광장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원래부터 아가씨 같은 성격이 아니라서 맨바닥에 앉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 학학학!

 “얼음밖에 안 남았네.”

 한낮이 되자 더욱 더워졌다. 나는 얼음으로 도담이 발바닥을 문질러주었다. 행사에서 받은 스포츠음료도 미지근했다. 무대 쪽에서 가수가 공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 안녕하세요. 강형욱입니다.

 “강형욱이다!”

 강형욱 훈련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 유튜브에서 들었던 목소리랑 똑같았다.

 “여기 보상 아이템!”

 테디베어가 미션을 완료하고 내게로 돌아와 기다란 육포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번엔 메달을 내밀었다. 메달은 코르크로 만들어져서 강아지가 걸 수 있는 무게였다.

 “메달에 산책왕이라고 쓰여있어.”

 도담이에게 메달을 걸어주었다. 테디베어 메달은 내 거. 우리는 완주 포인트로 돌아가 사진을 찍었다.

 - 경품 추첨 후에 강형욱 훈련사와 기념사진 촬영이 있으니 촬영을 희망하는 참여자분들은 참고해 주세요

 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큰소리에 놀랐는지 몇몇 개들이 짖어댔다.

 역시나 우리는 경품에 당첨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을 남기고 싶었고 우리는 촬영을 진행하는 부스 앞에 줄을 섰다.

 “와.. 진짜 길어. 다들 찍고 가나 봐.”

 부스가 저 멀리 점이 되어있다고 테디베어가 말했다.

 - 끄응, 끄응

 줄 서는 게 이해 안 가는 도담이가 찡찡댔다. 또 앞에 가자고 떼를 쓰는 거다.

 “안 돼. 줄 서야지. 너가 막 다 뚫고 다니니까 누나가 평상시에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민망해 죽겠다구. 사람들은 줄을 서야 해.”

 - 끄으응~~~

 도담이가 낮은 소리로 성대를 울렸다. 언짢다는 증거다.

 - 학학학!

 그때 뒤에 서 있던 검은 리트리버가 도담이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너무 거칠게 놀 수 있으니 나는 하는 수 없이 안내견 코트를 입혔다. 이 옷을 입히면 다른 반려인들이 조심해 준다.

 “안녕하세요~ 오! 좀 특별한 친구가 왔네요. 이 친구는 제가 안 만질게요.”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거진 1시간은 기다린 듯했다. 강형욱은 노란 코트를 보고 단번에 도담이가 안내견임을 알아차렸다. 사실 그가 도담이를 좀 쓰다듬어 주었음 했다. 하지만 그는 훈련사에 공인이었다. 아무리 내가 부탁했다고 해도 잘못 찍힌 사진 한 장에 강아지 훈련사가 안내견을 만졌다는 둥, 여러 이슈에 말려들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팬이 강형욱 훈련사가 난처해질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우리들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곧 은퇴라 추억 삼아 왔어요.”

 “오~ 그렇구나. 잘 오셨네요.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네. 그래도 좋은 추억 만들었어요.”

 “완주하셨어요?”

 “그럼요.”

 “오~ 대단하신데?”

 배려해 주는 건지 강형욱 훈련사는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우리에게 말을 많이 걸어주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행사장을 그냥 빠져나왔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응?”

 “강형욱 훈련사한테. 고맙다고,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훈련사님 영상은 내가 도담이 받기 전부터 봤으니까. 도담이랑 친해질 때도, 도담이 때문에 힘들 때도 나름 많이 도움받았거든.”

 “흐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사실 있었어.”

 “어떤 거?”

 “개통령님이 보았을 때 우리 도담이가 행복해 보이는지 말야.”

 “도담이는 행복하지 당연.”

 “아니, 뭔가 전문가의 예리한 눈빛으로도 그렇게 보이는지 궁금해. 확신이 필요해.”

 “물어볼 걸 그랬네.”

 물어본다고 해도 분명 행복해 보인다고 해줄 테지만 내 마음이 편안해질 확신이 필요했다. 도담이가 나와 지내서 행복했다는 확신. 그가 은퇴하기 전에. 그래야 편한 맘으로 그를 보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내년에 또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도담이랑.”

 “그러게요.”

 - 드르렁, 드르렁

 달리는 차 안에서 도담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도담이한테도 좋은 추억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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