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솜사탕 Jun 30. 2023

그녀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건

닿아라, 하늘까지 닿아라! 나와 도담이 그리고 그녀

  달리던 차가 드디어 멈췄다. 차 문을 열자 구수한 소똥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차에서 내린 도담이도 시골 냄새에 정신없이 콧구멍을 씰룩댔다. 역시 이 냄새가 나야지. 드디어 용인에 온 것이다. 안내견학교가 있는 에버랜드보다 한참 떨어진 이곳은 나의 또 다른 일터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나왔다. 여기는 장애인 거주시설.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숙식을 하고 있는 곳이다.

 “오늘 상담은 어느 분부터이신가요?”

 “하늘(가명) 씨부터 순서대로 모셔갈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도담이는 상담실까지 척척 향했다. 매트를 깔고 도담이 물을 챙겨먹이고, 나도 이 공간에선 혼자서 착착 움직일 수 있다. 이곳을 찾은 것도 벌써 3년 차다.

 “하늘 씨 들어가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 들렸다. 그리고 터벅터벅 좁은 보폭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하늘 씨. 잘 지냈어요?”

 “네.”

 “저 누군지 기억나요? 이름이 뭐게요~”

 “음... 정..”

 “땡! 우리 지난주에도 만났는데 섭섭하네~”

 하늘 씨는 내 이름을 언제나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시각과 발달이 같이 있는 시중복 장애인이다. 가족이 있지만 거주시설에서 산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대화가 가능하고 한자어가 아닌 일상 단어들은 대부분 알고 있어서 대화에 전혀 지장이 없다.

 “음.. 기억 안 나요.”

 “에이, 너무 하네. 저 OOO잖아요.”

 “아, OOO 선생님.”

 “기억해야 해요. 아셨죠? 오늘 몇 월 며칠이게요.”

 “몰라요.. 4월?”

 “6월 29일이에요. 여름이에요. 밖에 비도 오고 있고, 꽃도 많이 피었어요.”

 “꽃... 어떤 꽃이요?”

 “아마 여기 장미도 피었을 거 같은데 이제. 여름엔 장미가 피니까요. 장미 만져본 적 있어요?”

 “네. 근데 가시가 있다고 아프다고”

 “맞아요. 조심해서 만져야 해요.”

 나는 이곳에서 네 명의 거주 장애인분들과 동료상담을 진행하는데 하늘 씨는 그중 하나다. 동료상담이라고 해서 대단한 라이센스가 필요한 건 아니다. 장애인이 장애인을 상담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주고 활기를 찾게 도와주거나 자립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담이라고 하기엔 한 달에 한두 번 오는 거라 그들은 내 이름조차 잊어버리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이들에게 조그마한 자극과 호기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작은 세상에서 그들의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나는 명백한 ‘외부인’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전하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그들이 그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콘크리트 벽 너머로 얼마나 많은 것이 존재하고 꿈틀대는지 그들이 알기엔 한계가 많다.

 “어떻게 지냈어요?”

 “아빠랑 전화했어요.”

 “우와~ 하늘 씨 너무 좋았겠다. 아빠한테 전화 오는 거 엄청 기대했었는데. 아빠가 뭐라고 했어요?”

 “아빠가 코로나가 안 끝나서 아직 만나러 못 온다고. 선생님 말 잘 듣고, 동생들이랑 언니들이랑 싸우지 말라고.”

 “음~ 아직 코로나가 좀 있긴 하죠.”

 나는 점자정보단말기에 ‘보호자 면회 가능 여부 확인 필요’라고 적었다. 아직 체온을 재고 방문자 명부를 적지만 시설 안에서도 마스크를 안 써도 될 만큼 방역은 완화되어 있었다. 시설 내 외출 프로그램이 개시되었는데 보호자 입장이 안 된다는 게 이상했다. 내가 상담하고 있는 분들 중 일부는 가족이 있지만 가족들은 ‘코로나’와 ‘바쁜 일상’을 이유로 그녀들을 만나러 오지 않는 듯했다.

 “아빠한테 하늘 씨는 뭐라고 했어요?”

 “보고 싶다고. 빨리 하늘이 만나러 와. 이모랑 아빠랑 하늘이랑 돈가스 먹으러 가자.. 하늘이는 아빠 보고 싶어...”

 “하늘 씨가 제일 하고 싶어 한 걸 잘 말했네요. 아빠가 얼른 오면 좋겠다.”

 “그때 거기서 아빠랑 이모랑 이모부랑 같이 돈가스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물가도 걷고, 고기도 구워 먹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는 아이처럼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있다. 오늘이 몇 년도인지, 자신이 몇 살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낸 ‘그때’는 선명하다. 이따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관심이 있는 것은 기억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럴 때면 난 마음 한편이 먹먹해진다. 시설로 가족들이 면회를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상담을 할 때면 하늘 씨는 늘 식구들을 찾는다.

 “하늘 씨는 영화 보는 거랑 쇼핑하는 거랑 뭐가 좋아요? 이번 단기체험 때 둘 다 했는데. 기억나요?”

 “기억 안 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어두워졌다. 기분이 가라앉지 않도록 화제를 바꿨다. 그녀는 평소 말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최근 진행한 검사에서 우울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들었던 터라 더욱 마음이 쓰였다.


 “뭐 하고 싶었던 거 있었어요?”

 “케익이 먹고 싶어요.”

 “아, 케이크 먹고 싶었구나.”

 “아니, 케이크 말고 케익이요.”

 그녀의 세상은 좁고 좁아서 ‘케익’과 ‘케이크’가 같은 것을 뜻한다는 것조차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하는 것도 자신이 해본 경험들뿐이다. 눈이 보였더라면 텔레비전 방송 등에 비춰진 화면으로도 호기심이 생기겠지만 그녀는 볼 수 없기에 자신이 경험한 것이 세상의 전부다. 시설에서 가끔 진행하는 나들이 프로그램과 자립센터 주관 체험 활동이 전부. ‘뭐가 해보고 싶냐’고 물어도 해본 것이 별로 없어서 앵무새처럼 늘 같은 것만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먹는 것.

 “케익이랑 케이크랑 똑같은 거예요. 말만 다른 거예요. 도넛이랑 도너츠도 그렇고.”

 “아, 둘이 같은 거구나. 케익이랑 탕수육이랑 짜장면 먹고 싶어요.”

 “그러게요. 누구 생일파티하면 좋을 텐데.”

 “선생님 과자 없어요?”

 “과자 없는데. 어쩌죠?”

 “다음에 가져와서 주세요. 선생님 만나는 날마다 과자 먹고 싶어요.”

 간식도 마음대로 먹을 순 없다. 각각의 건강 상태도 다르기에 먹는 것을 조절할 수 없는 이용인들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이러한 규칙으로 나 또한 몰래 과자를 그녀에게 건네줄 순 없다. 공동생활인 만큼 그녀만 과자를 손에 넣었다간 다른 이용인들과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체험할 때 밖에서 같이 만나게 되면 그때 케익도 먹고, 과자도 먹어요.”

 “네...”

 그녀의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울렸다. 그녀가 엎드렸다는 뜻이다. 그녀는 늘 엎드리고 누우려 한다. 무기력에 젖어있다. 이럴 땐 잠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먼저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강아지 같이 왔어요?”

 “그럼요.”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늘 씨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예전에 집에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고 했다. 평소의 나라면 누구에게도 도담이를 만지지 못하게 하지만 이렇게 상담 도중 무기력에 젖은 내담자들이 있을 때면 가끔 도담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한다. 길에만 나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를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좀처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담이도 상대방에게 흥미를 보이는 경우에만 놀이 시간을 갖는다. 강아지가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오히려 화를 내거나 우는 등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눈이 안 보이는 나로선 통제가 힘들다.

 “이리 와~”

 -탁탁탁!

 오늘은 도담이도 하늘 씨와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늘 씨가 손바닥을 치자 그녀 쪽으로 총총총 다가갔다.

 “간지러워. 왜 자꾸 핥아.”

 도담이가 그녀의 손과 얼굴을 마구 핥았다. 그녀가 웃었다. 행복해 보였다. 도담이는 하늘 씨와 상담실에서 술래잡기 같은 놀이를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내 발밑으로 숨었다. 도담이의 놀이 타임은 끝난 듯하다.

 “이리 와~”

 아쉽게도 도담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담이가 이제 쉬고 싶나 봐요.”

 “아이 참...”

 몇 번인가 더 그를 불렀음에도 도담이가 움직이지 않자 그녀도 포기한 듯 자리로 돌아와 앉더니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 씨. 지금 졸려요?”

 “아뇨.”

 “배고파요?”

 “아뇨.”

 “그럼 지금 제일 뭐 하고 싶어요.”

 “아빠 집에 가고 싶어요.”

 “....”

 에어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들렸다. 좀 전까지만 해도 들리던 새소리는 사라졌다.

 “하늘 씨, 요즘도 노래 교실 하고 있어요??”

 “네...”

 “우리 같이 하늘 씨 제일 좋아하는 노래 불러볼까요? 무슨 노래 좋아해요. 불러 볼래요.?”

 노래를 좋아하는 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오~”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왜 하필 이 노래를 부르는 걸까. 불러도 오지 않는 아빠. 딸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시중복 장애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충분히 안다. 그녀의 점자교육과 상담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그녀를 보러 와주면 좋을 텐데. 손을 잡아주시면 좋을 텐데. 아버지의 마음과 아빠가 보고 싶은 딸의 마음이 내 가슴에 겹쳐졌다. 나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그녀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포개져 상담실을 울렸다. 더욱더 큰 목소리로 하늘 씨가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천장에 닿아 내 온몸을 감쌌다. 이 목소리가 하늘에 닿길. 그녀가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를 볼 수 있길. 그녀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건 나도 도담이도 아닌, 그녀의 아버지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어깨에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