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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n 28. 2023

내 어깨에는

안내견의 무게

 내 가방은 또래 30대 여성들의 것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날이 갈수록 콤펙트해지는 여성들의 가방과 달리 내 가방은 나날이 거대해진다. 크로스, 숄더, 백팩 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결국 A4 크기 이상이고 대체로 투박하다.

 “완전히 엄마네. 엄마.”

 엄마는 늘 내 짐 보따리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거기에 한 마디 더, ‘평생 아기 키운다.’

 “똥기저귀 챙겼어?”

 “똥기저귀 아냐. 배변 봉투, 배변 벨트.”

 “그게 그거지.”

 짐을 쌀 때도 체크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내 가방 안 물건들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물/밥그릇.

 튼튼하고 설거지가 용이한 캠핑용 스텐 그릇을 사용하고 있다. 대형견인 만큼 크기는 한 뼘 정도로 구겨지지 않아서 그냥 통째로 넣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전엔 자바라식(접어지는 형태) 실리콘 그릇을 썼지만 이게 또 관리를 잘못하면 곰팡이가 핀다. 곰팡이를 알아보고 대처하기 힘드니 그냥 불편하더라도 스텐을 사용하고 있다.

 두 번째, 물.

 언제나 같이 외출하기 때문에 450mL 보온병에 물을 넣고 다닌다. 한 여름엔 여기에 얼음까지 한 병 더 추가되는데, 얼음은 오래 외출하는 날, 도담이의 갈증을 해소시킬 때 효과적이다. 거기에 얼음 한 알을 꺼내 발바닥을 문질러주면 아스팔트 열기에도 좀 더 견디고 금세 더위를 식혀줄 수 있다.

 세 번째, 밥.

 귀가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날에는 밥을 싸 들고 다니는데 이 또한 100g이 넘고 주먹만 한 크기다. 간식이 떨어지면 야금야금 한 알씩 꺼내 주기도 한다.

 넷째, 배변 벨트와 봉투

 도담이 화장실 처리를 위한 도구로 매너 벨트와 비슷하다. 벨트에 배변 봉투 손잡이를 걸고 반대 손잡이 구멍에 꼬리를 통과시키면 고구마를 주울 필요 없이 한 번에 자동으로 담겨 처리가 편하다.

 다섯째, 매트

 카페나 음식점 등 잠시 정착할 때 도담이가 쉴 수 있도록 깔아주는 매트. 리트리버가 들어갈 사이즈므로 갓난아기 한 둘은 거뜬히 눕힐 만큼 넉넉한 크기다. 그러나 가방에 넣음 이 또한 짐.

 여섯째, 우비와 실내복

 여름철엔 안내견 우비, 택시나 실내에 들어갈 일이 있는 날엔 실내복을 들고 다닌다. 아기들 우주복처럼 네 다리를 모두 넣는 부분이 있어 이게 또 참 귀엽다.

 일곱째, 장난감과 간식

 간식은 보행 간식과 정착 간식 두 가지 정도 들고 다닌다. 보행하면서 보상으로 줄만 한 것은 작은 비스킷류, 정착 시 주는 건 씹는 맛이 좋은 개껌류를 주로 들고 다닌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는 가지고 놀 장난감도 들고 다닌다.

 여덟째, 손수건과 물티슈

 비 올 때 젖은 발이나 머리를 닦아줄 때 사용한다. 물티슈는 신발 벗고 들어가는 곳에서 도담이 발을 닦아줄 때 사용한다.

 기본 물품이 이 정도니 내 가방은 늘 백팩이다. 아주 간혹 동네 마실을 나갈 땐 배변 벨트만 덜렁덜렁 들고 다니긴 하지만 일을 하러 갈 땐 이것들을 다 싸 짊어지고 다닌다. 도담이 짐들에 점자정보단말기 등 개인 짐들이 더 해지면 10kg은 기본이다. 분명한 사실은 내 짐보다 도담이 짐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도담이는 신체 구조상 이 엄청난 무게의 가방을 멜 수 없다. 그러니 내가 다 들어줘야지.

 “엄마네. 엄마. 똥기저귀 가방에 이유식 싸 들고 다니는 엄마. 누가 시킨다고 저걸 하겠어. 자기가 좋으니 하지.”

 “그러게 말이야. 도담이가 이 누나의 마음을 알까 몰라.”

 나는 가방을 들쳐메고 거리로 나섰다.

 “좋은 일 하네. 너가 수고가 많다~~”

 “눈이 슬퍼 보여. 고생이 많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럴 때 나는 외치고 싶다.

 ‘나도 만만치 않게 수고한다고요! 내 가방 안 좀 보실래요?’

 속으로 수십 번은 외쳤지만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다. 매일 외출할 때마다 한 짐 가득이고 감기몸살에 걸리든, 비가 오든 상관없이 아침 7시엔 기상해야 한다. 그래야 도담이의 밥과 화장실을 챙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 늦잠을 반납한 지 벌써 몇 년인가. 저녁 늦게 약속도 함부로 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도담이 컨디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도련님이 피곤하지 않도록 늘 상태를 확인해야 그가 앞으로도 외출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 파트너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호흡을 맞추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아이고~ 무거운 가죽 메고 다녀서 힘들겠다.”

 이런 말도 서럽다. 핸들이 달린 하네스를 보고 그 말을 하는 듯한데 핸들을 잡는 건 나다. 즉, 하네스도 엄밀히 따지면 내가 들고 다니는 것이다! 카페나 실내에선 대체로 하네스를 풀어주기 때문에 도담이는 깔아준 매트 위에서 그냥 뒹굴거리며 잔다. 외출 계획이 없는 날도 산책을 나가고, 주말엔 애견 놀이터나 인적 없는 울타리에서 같이 뛰어놀기도 한다. 그러나 잠깐 스쳐가는 사람들이 이런 생활을 속속들이 알 리 없다.

 “안내견을 받았으면 그 정돈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7~8년의 세월 동안 매일, 한결같이 이 생활을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양치를 시키고, 정기적으로 목욕을 시키고. 매년 예방주사를 챙기며 심장사상충약 같은 구충약도 잊지 않고 먹인다. 발톱과 발바닥 패드 털도 정기적으로 정리하러 병원에 다닌다. 집에 돌아오면 깨끗이 빤 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빗질을 하면서 상처나 문제가 없는지 손으로 만져 확인도 한다. 보통의 반려견의 경우, 가족들이 공동양육을 하는 분위기지만 안내견은 다르다. 시각장애인 당사자, 즉 안내견의 파트너가 전담한다. 그래야만 리더로서 안전한 보행을 유지할 수 있다. 파트너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대개 비슷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들었다. 자, 이러한 일상을 보고도 안내견만 수고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안내견 파트너들은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이 모든 일상을 클리어하고 있는 것이다. 뭐, 눈 감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애초에 보통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어쨌든 안내견 파트너로 살아간다는 건 시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상당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도담이가 빨리 나가자고 사정없이 꼬리로 내 허벅지를 때린다. 자기는 여기에 볼일 없댄다.

 “알았어. 그만 재촉해. 가자.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로 미리 주문한 빵을 받아 계산을 하고 허겁지겁 지갑을 가방에 넣었다. 도담이는 사뿐사뿐, 나는 뒤뚱뒤뚱. 생명의 무게는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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