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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n 25. 2023

개리비안베이에 어서 오세요

안내견 도담이의 여름나기 1

 “보통 5시간만 대절하시는데 오래 있다 오시네요.”

 “가서 물놀이도 하고 오려고요.”

 그렇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보통 복지콜 대절 시간에 대해 질문하진 않는데 특이한 날이었다. 전화접수 담당자에게 안내견학교 가는 것으로 10시간이나 대절하는 게 낯선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나 역시 10시간이나 빌리는 건 처음이니까.

 도담이와 처음 가는 물놀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 집 강아지는 안내견이지만 그 이전에 리트리버였다. 그러니 TV에 나오는 다른 리트리버처럼 멋지게 수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오는 날 물웅덩이에 빠지는 것도, 목욕물에 들어가는 것도 몸서리치지만 그래도 막상 물에 들어가면 잠들었던 DNA가 꿈틀대며 멋지게 수영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솟구쳤다.

 “도담아, 우리 토요일에 수영장 갈 거야.”

 뒤집어진 채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는 그의 배를 마구 문질렀다. 귀찮은지 미동조차 없었다.

 “요기, 요 물갈퀴를 좀 써봐야지 않겠어? 남들은 갖고 싶어도 못 갖는 거야.”

 조그마한 발가락 패드 사이에 붙은 살을 쪼물거렸다. 쫄깃쫄깃하면서 어딘가 뽀득거리는 아주 작은 물갈퀴였다. 묘한 중독감에 계속 만지작거리자 간지러운 듯 그가 버둥거렸다.

 “또 언제 폐쇄될지 모르니까 얼른 가자. 개리비안베이 예약도 했다고.”

 속칭 개리비안베이. 안내견학교에 있는 수영장이다. 안내견학교 바로 옆에 에버랜드와 캐리비안베이가 있기 때문에 안내견 파트너들 사이에선 그곳을 ‘개리비안베이’라고 부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2년간 폐쇄되었기 때문에 방역 규칙이 완화된 지금이 아니면 또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내년 여름엔 그가 내 곁에 있을 거란 확신이 서지 않는 것도 조바심을 느끼게 했다.

 얼마 전, 홍 선생님이 사후관리차 우리 집에 찾아왔다. 건강을 체크해 주시고 발톱 정리를 마친 뒤 선생님이 조용히 물었다.

 “도담이도 이제 나이가 좀 있는데 다음 안내견을 받을지 생각해 보셨어요?”

 “아... 네. 전 받을 거예요.”

 “도담이랑 지내면서는 어떠셨어요? 안 맞거나 불편한 건 없었어요?”

 “네. 도담이는 진짜.. 잘해요. 정말... 도담이 같은 애는 없을 거예요.”

  당장 은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눈가가 뜨거워졌다.

 “다음에 적합한 강아지가 언제 나올지는 몰라요. 아무래도 강아지마다 성격도 스타일도 다 달라서. 그래도 미리 의사를 확인해서 생활에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할게요.”

 “네. 항상 감사해요.”

  홍 선생님은 도담이가 은퇴할 거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나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얼마 전 도담이와 같은 나이인 지인 안내견이 은퇴를 했다. 그 친구 역시 몸에 이상도 없고 실수도 없는 아이였다. 좀 더 건강할 때 은퇴를 하는 게 요즘 추세라고 듣긴 했지만 7살이 조금 넘어서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홍 선생님이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저기, 선생님!”

 “네?”

 “그럼.. 이제 도담이 은퇴 예비견 명단에 올라가나요?”

 “... 네. 그렇게 되었네요.”

 그때 홍 선생님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밝았다. 분명 선생님도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도담이는 듣지 마!”

 조금 무거워지려는 공기가 싫어 나는 도담이 양쪽 귀를 막는 척했다. 하지만 ‘곧’이란 단어가 마음에 떠나질 않았다. 특히 이렇게 그를 쓰다듬고 있는 순간이면 더욱 그날의 음성이 선명하게 귓가에 울렸다.

 쥐고 있던 발을 놓아주고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에서 구수하면서 꼬릿한 냄새가 났다. 도담이 냄새. 6년 동안 붙어 지낸 탓에 점점 무뎌져 가는 냄새였다.

 “이번엔 꼭 가자. 뭐든지 많이 경험하는 게 좋아.”

 나는 더위 탓에 옆으로 축 퍼져 있는 도담이 목을 끌어안았다. 내 맘을 아는 건지 성가신 건지 도담이가 가만 내 팔을 핥았다.

 그렇게 나와 테디베어, 도담이. 우리 트리오는 개리비안베이로 향했다. 전에 합숙할 때 사용했던 방으로 안내받았다. 물놀이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수영용 리드줄로 바꿨다.

 수심이 허리쯤 오는 야외 수영장엔 작은 분수도 있어 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공기도 상쾌하고 새소리도 들려오는 게 프라이빗 펜션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독점이니 그에 버금가는 사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담이는 물을 보고도 학학댈 뿐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좋아하는 거야?”

 “일단 좋아하는 거 같긴 한데.. 꼬리는 흔들어. 노는 방법을 모르는 건가.”

 테디베어가 말했다.

 물놀이가 처음인 도담이를 위해 내가 먼저 물속으로 들어와 그를 불렀다. 들어오고 싶어 하는 듯하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는 그는 어찌할 바 모르고 몸을 털었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적어도 물에 담그긴 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맘에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바로 도담이의 최애템 내추럴발란스 처키 비스킷!

 “담아, 요거 봐~ 간식이네.”

 부산스럽게 그가 콧구멍을 벌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닿을 듯 말 듯 교묘한 자리에서 그를 유인하기 시작했다. 먹을 거에 장사 없다고 그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옳지 잘했어.”

 발가락, 아니 발톱이 조금 젖었다. 10분 만에 이룬 성과였다. 발목까지 들어오는 데에 또 10분은 걸린 거 같았다.

 “있지...”

 “응?”

 “도담이가 점점 길어지고 있어. 기린이 물 먹는 자세 같아. 지금...”

테디베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다리 다 들어온 거 아니야?”

 “아니. 뒷다리는 그대로고 앞다리만 길어졌어.. 목이랑, 혀도...”

 그는 목을 쭉 빼고 개미핥기처럼 간식을 향해 혀를 늘이고 있었을 뿐 앞발을 제외한 채 꼼짝을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그냥 목욕만 시키고 올라갈까.” “그래도 한 번은 들어가 봐야 하지 않아? 안 들어가 봐서 그런 걸지도 몰라.”

 “도담이 안 들어가요?”

 그때 당직 선생님이 나오셨다. 우리 셋은 도담이 입수 작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그럼 제가 악역을 하죠. 뒤에서 살짝 밀어볼게요. 처음만 힘들어하고 막상 들어가서 잘 노는 애들도 많으니까 한 번 더 시도해 보시죠. 도담이가 들어가면 천천히 수영장 안쪽으로 이끌어주세요. 그럼 자세 잡고 헤엄칠 거예요.”

 “네.”

  나는 리드줄을 잡았다. 나와 테디베어는 물속에 먼저 들어가 간식을 먹이기도 유인하기도 하며 그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하나, 두울, 세...엣!”

비스켓 받아먹기에 한눈이 팔린 순간,

 “풍덩!!!”

 사냥감을 향해 네 발을 펼치고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사자처럼 그는 입수에 성공했다. 그런데 지시받은 대로 리드줄을 잡고 수영장 안쪽으로 재빨리 유도했지만 헤엄치는 도담이는 생각보다 빨랐다. 헤엄치는 게 맞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발은 분주했으며 필사적이었다.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곧바로 그는 수영장 벽을 향해 작은 물갈퀴들을 저어댔다.

 “무파사!!”

 그렇다. 그 모습은 라이온킹의 한 장면이었다. 스카 때문에 벼랑에 매달려 기어오르려 필사적인 무파사의 그 모습. 안타깝게도 도담이의 첫 수영은 10초 정도였다. 두 번째 입수는 그냥 자기 혼자 미끄러진 우연이었는데 이번엔 내 멱살을 움켜쥔 채 직립보행으로 걸었고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두 손으로 그의 등을 감싸고서 그냥 수중왈츠를 추었다.

 ‘누나 살려줘.’

 헥헥 거리는 숨소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물트리버는 무슨, 텔레비전에서 본 멋진 수영 장면은 10초 정도 연출되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에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는 그냥 도담이일 뿐 다른 개와 비교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다른 개들보다 얌전하고 파워풀한 워킹을 하는 게 도담이의 매력이고 달란트인 것이다.

 물에서 나온 우리는 한동안 햇볕을 쐬었다. 적당히 구름이 낀 것이 물놀이하기 좋은 날이었다. 열기에 익은 풀 향기 사이로 여름을 알리는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흠뻑 젖은 그는 겨우 숨을 고르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사실 나도 수영 못해.”

 도담이의 털을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나도 못해.”

 테디베어도 도담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다 끼리끼리 만나나 봐.”

 우리는 웃었다.

 “그래서 수영했어?”

 “말도 마, 수영은 무슨.”

 다음 날, 예전에 안내견이 있던 친구와 통화를 했다. 수영하러 간다고 했던 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거봐, 우리 희망이는 아예 가라앉았다니까.”

 “그래도 도담이는 할 줄 알았지.”

 “그것도 할 수 있는 애들만 하는 거라니까.”

 “그래도 조금 했어 10초...”

 나는 뭔가 빈정상해 꽁해졌다. 우리 아이만큼은 높게 사는 엄마의 기대가 무너진 기분이랄까.

 “그래도 가라앉는 것보단 낫네. 나는 애가 그대로 가라앉아서 건지느라 고생했어. 좀 무거워야지.”

 “아.. 나 이제 전화 끊어야겠다. 컨디션 멜롱이야.”

 전화를 끊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물속에 오래 들어간 탓에 감기에 걸렸는지 계속 머리가 아팠다. 으슬으슬 춥고, 콧물 나고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한여름에 전기장판 위에 몸을 지지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정말이지 애 키우는 엄마 같다. 새로운 경험 시켜주겠다고 의욕이 앞서서 일을 저지르고 결국 뻗는 건 나다. 꼬마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러워졌다.

 - 킁킁킁

잠이 들락말락 애매한 경계에 있을 때 코까지 눌러 덮은 이불 틈으로 촉촉하고 말랑한 무언가가 침입했다. 도담이 코였다.

 “벌써 6시야? 알았어... 밥 줄게.”

 그의 배꼽시계는 너무 정확해서 나에게 늘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엄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슬리퍼 속에 발을 집어넣었다.

“같이 가.”

 저만치 사료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그의 경쾌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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