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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n 13. 2023

도망쳐!

그와 달리는 순간

 ‘빨리!  빨리!’

 하네스를 잡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엔 느릿느릿 걷던 도담이가 내 눈치를 보며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가자, 가자!”

 나는 그에게 외치며 뛰었다. 도담이를 만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도담이가 있어 이렇게 뛰기라도 하지 않는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스스로가 약자라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몸이 좀 불편하고, 할 수 있는 게 상대적으로 적을뿐, 보호받아야 하거나 신변을 걱정해야 할 약자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난 후로 나는 타인, 특히 남성들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고 느낀 건 시각장애인이 되고 1년이 채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도담이가 없었기에 덩어리 정도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조금 남은 시력과 흰지팡이로 거리를 활보했었는데 그날은 인권 공부를 위해 강남구에 위치한 여성전용 센터로 수업을 받으러 가고 있던 길이었다.

 “휴~ 다 올라왔네.”

 “어디 가요?”

 지하철역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뒤에서 한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아, 뭐.. 갈 곳이 있어서요.”

 “눈이 안 보여? 지하철 타는 곳에서부터 봤는데 도와줄까?”

 얼굴을 알 수 없는 젊은 그 남성은 어딘가 서툰 한국어를 하고 있었다. 역에서부터 봤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혹시 나를 따라온 건가?

 “괜찮아요. 익숙해서 혼자 갈 수 있어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에 나는 거칠게 흰지팡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남자가 포기하지 않고 급한 발걸음으로 나를 따라왔다.

 “도와줄게.”

 “아니,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러지 말고, 내가 도와줄게. 어디로 가? 키 크다, 키 몇이야?”

 남자는 내가 거절했음에도 급구 내 손목을 잡았고, 체포하듯 내 겨드랑이 깊숙이 자신의 팔을 걸었다. 목소리 위치로 봤을 때 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인 듯했지만 그 외에 남자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이러지 마시라고요.”

 “내가 데려다줄게. 어디 가?”

 어느새 남자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그의 팔이 걸린 오른팔은 이미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도움을 청하려고 소리를 높이기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만큼 형편없는 눈을 나는 갖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남은 왼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 왜? 내가 도와준다니까.”

 “제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재빨리 교육센터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틈에 내 다리 사이에 낀 흰지팡이를 그가 잡아 빼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잃으면 안 된다는 맘에 재빨리 그것을 움켜쥐었다.

 “이거 접어도 되지 않아?”

 “아니 제껀데 왜 맘대로 만지세요!”

 흰지팡이를 쥐고 크게 휘둘렀다. 당황한 남자가 내 팔에서 떨어져 나갔다. 기회였다. 이 남자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이렇게 예쁜데 눈이 안 보여? 나랑 결혼할래? 아, 남자친구 있어?”

 “네. 있으니까 그냥 가요. 좀!”

 “같이 살아?”

 “같이 살면 어떻고 따로 살면 어쩔 건데요. 그냥 가세요.”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가 한 번쯤은 얻어맞길 바라며 좌우로 흰지팡이를 저어댔다. 하지만 남자는 잘도 내 흰지팡이를 피하는 건지 단 한 번도 맞지 않았고, 오른편으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어디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주택가는 늘 그렇다. 한낮엔 거의 사람이 없어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누가 쫓아와도 나를 구해주지도 않는다.

 “중국에서는 많이 같이 살아.”

 - 웅웅웅!

 평소엔 잘 못 느끼던 가방 속 핸드폰 진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누구든 상관없었다. 내가 곤란하다는 걸 알릴 수만 있다면.

 “여보세요?”

 “전화하셨어요? 지금 어디쯤이세요?”

 다행히 센터 선생님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어.. 음.. 지금 근처인데 좀 나와주실 수 있으세요? 길을 잃은 거 같아서요...”

 “길을 잃었다고요? 이상한 날이네요. 지금 나갈게요.”

 3개월 가까이 센터를 오가면서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지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혼자 센터까지 갔다가는 이 남자가 나의 동선을 알아버릴 테니까.

 “이제 됐으니까 그냥 가세요.”

 “내가 데려다줘도 되는데.”

 “가세요 좀.”

 남자와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도 행여 이 남자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지 않을까, 나에게 염산을 뿌리지 않을까 두렵기만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나는 그의 인상착의 하나 설명할 수 없었다. 무서운데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야 안전한지, 내가 뛴다고 해서 과연 저 남자를 따돌릴 수 있을지 그 어떤 확신도 없었다. 오히려 도망치다가 더 큰 사고도 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눈이 안 보이니까.

 “오래 기다리셨어요~~”

 저쪽 멀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 쪽으로 재빠르게 걸었다.

 “선생님, 저 남자가 따라와요.”

 “네? 알겠어요.”

 나의 속삭임에 선생님이 내 팔을 꼬옥 쥐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내 팔을 걸었다.

 “도와주신 거 같은데 여기까지면 돼요. 나머진 제가 모시고 갈게요~”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남자가 가는지 지켜보았다.

 “갔어요?”

 나는 작게 속삭였다.

 “간 거 같아요.”

 남자가 떠난 걸 확인한 우리는 종종걸음으로 센터로 향했다.

 “놀랐죠? 이거 따뜻한 차라도 마셔요...”

 “남자가.. 역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절 보고 따라온 거 같아요...” 뒤늦게 등 뒤로 한기가 스쳤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탓에 수업을 들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두려움도 문제지만 앞으로 이런 날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몸이 떨렸다.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쉬었다가 가요.”

 “집에 갈 때도 그 남자 있으면 어쩌죠? 앞으로 올 때마다 마주치면 어떻게 해요?”

 “에이 설마...”

 선생님이 데스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그래 설마. 시간대를 좀 어긋나게 해서 다니면 괜찮을 거야...’

 좀처럼 심장이 차분해지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연신 심호흡을 내뱉었다. 센터에 도착하고 20분쯤 지나서야 나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 수 있었다.

 “근데... 혹시 저 남자 아니지?”

 차를 들이키는 순간 사무실에 있던 다른 선생님이 창가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헉!! 따라왔네! 쟤 맞아!”

 손이 떨려 컵을 놓칠 뻔했다. ‘결혼할래?’라는 남자의 낮은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 안 되겠는데? 지금 사무실에 누구누구 있어? 저희 잠깐 내려갔다 올 테니까 쉬고 있어요.”

 선생님들 여럿이 계단을 내려갔다. 시곗바늘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매웠다. 냉장고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혼자 다닐 수 있을까. 사람을, 타인을 믿을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 여자들한테 국적 노리고 접근하는 외국인 남자들 많아. 나도 그런 적 있어.”

 “가만히 서 있으면 엉덩이는 기본이고 가슴 만지고 도망가는 변태도 있어. 그니까 항상 조심해야 돼.”

 다른 시각장애인 언니들이 한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에 내가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사람한테 길 안내를 좀 받았는데 그 남자가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믿고 따라와요? 눈도 안 보이면서.”

 그동안 언니들이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세상을 누빌 용기를 잃지 않은 그녀들이 존경스러웠다.

 “이제 진짜 갔어. 이따 지하철 타는 것까지 내가 봐줄게요.”

 선생님들이 돌아오고 나는 그녀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를 또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후 3주나 결석했고, 그 뒤로는 예측 불가능할 만큼 불규칙한 시간대로 센터를 오갔다.


 “아가씨, 어디 가? 내가 데려다줄게.”

 혀 꼬부라진 어눌한 말투, 술 냄새. 나는 이래서 밤이 싫다. 내가 밤에 나가지 않는 이유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젊은 아가씨가 눈이 안 보여? 내가 도와줄 테니까 말해 봐. 어디 가는데.”

 술 취한 남자가 내 허리를 잡고 어깨를 감쌌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또 이상한 사람 눈에 띄어버렸다. 도와주는 건 좋다지만 왜들 이렇게 쉽게 몸에 손을 대는지 모르겠다. 술을 먹든, 안 먹든 그저 바로 몸을 만지는 사람들. 정말 싫다.

 “괜찮습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거칠게 화를 낼 수도 없다. 나중에 또 마주쳐서 무슨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저쪽은 나를 발견해도 나는 알아볼 수 없으니까.

 나는 손등으로 그의 손을 가볍게 밀어내고 도담이한테 외쳤다.

 “가자, 가자! 얼른!!”

 문 앞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도담이가 어리둥절해 했다.

 ‘빨리! 더 빨리!’

 하네스를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엔 느릿느릿 걷던 도담이가 내 눈치를 보며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가자, 가자!”

 나는 그에게 외치며 뛰었다. 도담이가 내 발걸음에 맞춰 달렸다.

 “어이, 아가씨 도와준다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멀어져 갔다. 도담이를 만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도담이가 있어 이제는 이렇게 뛰기라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결국 나는 오늘도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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