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솜사탕 Jun 09. 2023

그렇게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나를 위하는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아직 납품 마감까지 널널한 편이었지만 책의 흐름을 전부 외워가며 작업해야 하므로 팀장님이 내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 그녀가 나를 불렀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많이 바빠?”

 “아, 아니요. 무슨 일이세요?”

 “잠깐 면담 좀 합시다.”

 ‘면담? 갑자기? 왜?’

 정사원이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개별 면담을 한 적이 없었다. 수시로 팀 이동이 일어나는 회사였기에 회의실에 도착하기 전 이미 나는 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결론까지 도달해 있었다.

 “인식개선일 해보는 거 어때요? 이번 행사 때만. 유치원생 대상으로 안내견 교육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이 들어왔거든.”

 “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생전 내본 적 없는 우렁찬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내 주 업무는 점자책을 수정하는 교정일로 교육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보다도 애초에 말할 일도 거의 없는 그런 업무였다. 초등학생 시절, 발표시간에 손 한 번 들지 않았고, 대학생 때도  pt 수업은 요리조리 죄다 피했는데 일로 맞닥뜨릴 줄이야... 교정사 일을 택한 것도 마음만 먹으면 퇴근까지 말 한마디 안 할 수 있을 만큼 대인관계가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팀 이동이나 파견근무보다야 낫지만 얼마 전 부장님으로부터 ‘oo씨는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아싸 중 아싸인 내게 회사 측에서 교육을 맡긴다는 게 이상하기만 했다.

 “제일 안내견에 대해서 잘 아니까.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음.. 해볼게요.”

 “정말? 알겠어~ 그럼 그렇게 보고 올릴게.”

 그런데 무슨 용기였는지 객기도 취기도 아닌 맨정신으로 나는 그 업무에 도전하겠노라 선언했다.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남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다니,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덕대고 머리가 하얘졌다. 하지만 도담이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앞으로 그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해보겠다고 말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하던 일을 이어갔지만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교육 경험이라고는 장애인이 되기 전, 지인에게 전공인 일본어를 조금 가르쳐봤던 경험밖에 없었고 그 기간도 짧았던 터라 거의 전무했다. 더구나 이번 대상은 유치원생이었다. 꼬마와 대화해 본 적도 없었다. 무슨 말을 사용하고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 그냥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할까? 진짜 자신 없는데...’

 내 안의 꼬맹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아냐,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눈도 안 보이니 사람들 시선도 안 볼 수 있잖아. 뵈는 것이 없으면 자고로 용기가 샘솟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때를 기억해.’

 조금 어른 비슷한 것이 된 또 다른 내가 말하며 ‘그날’의 기억을 되살렸다.

 안내견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는 이유로 한여름날 에어컨도 없는 직원 휴게실에서 밥을 먹게 한 베트남 음식점 매니저. 개라는 이유로 문 손잡이에 매달린 채 내달리게 한 택시 기사의 승차 거부. 단체 식사 자리에서 안내견도 개라고 밖에 묶어두고 들어오라며 비 오는 날 비를 맞게 한 고깃집 사장. 다른 고객들이 불편해할 거라고 순서가 올 때까지 밖에서 서 있으라는 은행 점장과 어쩔 수 없이 1시간 가까이 서서 기다리며 내 뒷번호 사람들은 다 들어가 자리에 앉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 했던 나. 그동안 겪은 온갖 차별의 현장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맞아. 내가 그때 얼마나 도담이한테 미안했는데. 사람을 돕기 위해 태어나서 공부까지 했는데 이 사회가 거부한다는 게 얼마나 미안했는데...’

 심지어 비행기 탑승시 안내견을 케이지에 넣어 따로 부쳐야 한다고 한 인식개선 강사도 있다고 하니 일반사람들이 무지한 건 당연한 건가.밑에 누워있는 그의 옆구리를 만져주었다. 반려견도 특수견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안내견. 다양한 매체에서는 훌륭하다, 멋지다 소리를 하지만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입마개를 하라는 건 기본이고, 식당이나 약국 같은 곳에서까지 여러 번 차별을 겪었다. 시각장애인이 소방사나 경찰처럼 권위가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구조견이나 경찰견과 같은 특수목적견임에도 거부와 차별을 당해야 하는 안내견의 현실이 억울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쫓겨나는 현장에서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나와 거부자 눈치를 번갈아 살피는 도담이에게 늘 미안했다. 그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은 무력감.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하는 그들을 탓했다. 박정하다고, 못돼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걸음, 두 걸음 세상을 넓혀가면서 나는 깨달았다. 자신이 겪지 못한 세상, 관심 없는 분야에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새로이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까지 장애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지 못했고, 아니 관심조차 없었던 것처럼, 그들도 모르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분명 기본 인성 자체가 강약약강인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몰라서 선입견을 갖고,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한 차별을 통해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이유가 있고, 장애인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내가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게 도담이에게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이 몸과 내 인생 이야기를 가지고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되리라. 어느새 겁쟁이 꼬마는 사라지고 가슴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이번 교육은 최초로 시도되는 기획이었던지라 참고할 자료도 조언을 구할 선배도 없었다. 희망적인 점이라고는 3주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손에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어린이 교육 방송을 보면서 MC들이 어떤 말투를 사용하는지 관찰하고 적당한 목소리 톤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보았다. 그렇게 퇴근 후에는 어린이 방송을 보며 연습하고, 수차례 교육안을 수정했다.

 시간이 지나 행사 당일. 수업을 진행할 천막 아래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저 멀리 다른 부스에서 꼬마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톤의 목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웃는 것이 마치 삐약삐약 대는 것 같았다. 곧 저 병아리들이 내게 올 생각을 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봐야 해. 내가 이렇게 남들 앞에 설 줄 누가 알았겠어.’

 그때 도담이가 내 발등에 턱을 올렸다.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도담이는 우주를 만든 빅뱅만큼이나 내 세상을 넓혀주는 존재였다. 병아리 소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옆에 놓인 마이크를 쥐었다. 그리고 깊이 심호흡하고 내질렀다.

 “안녕하세요~ 친구들!!”

 그날 내가 어떻게 일곱 반이나 클리어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상당히 좋은 반응이었고, 나 역시 알 수 없는 희열에 취해 무대를 즐겼다는 것이다.

 “유치원생처럼 어린애들한테 해봤자 의미 없어. 그냥 큰 개 봤다, 귀엽다 하고 끝이지. 기억이나 하겠어?”

 언젠가 지인이 말한 적이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게 미숙해서 생각도 거기까지 미치지 못할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난 아이들을 믿는다.

 “안녕하세요~”

 강사로서의 첫 데뷔를 하고 2년쯤 지났을 무렵, 퇴근하던 중, 신호등에서 어느 소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평소처럼 웃으며 나도 인사했다.

 “저 선생님 알아요.”

 “그래요? 어떻게 알까?”

 - 뚜두두!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소년이 무언가 말했지만 신호등이 켜지는 바람에 듣지 못했다.

 “조심히 가세요.”

 “응? 응. 고마워요.”

 소년이 나를 앞질러 힘차게 뛰면서 외쳤다.

 “안내견을 만났을 때 만지면 안 돼요! 함부로 먹을 것을 줘도 안 돼요!”

 다리 힘이 풀리는 줄 알았다. 기뻤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나에게 수업을 받은 친구는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었고, 우리를 잊지 않았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아, 거기 턱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내가 문 열어드릴 거야!”

 “아냐, 내가 열어드릴 거야!”

 “그럼 난 짐 들어드려야지!”

 “야, 아까 수업 시간에 배웠잖아. 안내견 지나갈 땐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멀리서 보기만 해야지! 지나가시잖아. 좀 비켜 드려봐.”

 “선생님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또 오세요! 아셨죠? 도담이도 안녕~ 아, 안내견한테 말 걸면 안 되지. 죄송해요.”

 “고마워. 점심 맛있게 먹고, 친구랑도 재밌게 놀고.”

 그날 만난 소년이 원동력이 되어 지금도 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서울 곳곳의 초등학교를 돌며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을 한다. 너와 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닌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반려견도 특수견도 아니었던 안내견이 인정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만약 도담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자신이 가진 선입견에 사로잡혀 내 능력을 한계 짓고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갔을 거다. 그저 도담이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맘에서 싹튼 행동이 잘못된 편견과 장애인에 대한 정보를 바로잡아보겠다는 사명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되겠다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다란 꿈이 되어버렸다. 도담이를 만나 현실과 부딪치면서 오히려 인생을 배운 기분이다. 비장애인인 채로 살아갔더라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내 안의 보석을 발견했다. 직업에만 얽매였던 목표가 완전히 부서지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찾았다.

 고작 강연을 다니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는 건 유난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작은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아주 조금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아직은 연약한 아이들일지라도 언젠가 이 세상을 바꿔줄 씨앗이기에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켜줄 것임을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활동 반경을 넓혀 중학교에도 가고 있다. 언제나 처음은 무섭다. 새로운 환경과 일에 뛰어드는 데엔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걱정되지 않는다. 훌륭한 파트너 도담이가 있으니까. 나는 오늘도 마이크를 잡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리 귀엽더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