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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May 30. 2023

아무리 귀엽더라도

안내견 입양 후 겪은 첫 번째 이슈

 도담이 행동에 이변을 느낀  어느 늦여름이었다. 평소에도 귓가를 뒷발로 긁거나 푸드덕대긴 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리만치 도담이가 긁어댔다. , 옆구리 심지어 정수리까지 밤낮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벅벅 대니 여간 신경 쓰이는  아니었다. 나와 함께한 6개월 동안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그지만, 어린 시절  차례나 피부병을 앓아 털까지 싹싹 밀은 전적이 있다고 들었던지라 나는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혹시 진드기일까요?”

 날도 좋으니 주말마다 풀밭에서 뛰어논 것이 문제였나 걱정이 되었다. 성실하게 기생충 예방약을 발라주었고, 절대 정돈되지 않은 잔디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조심했지만 기생충이란 녀석은 아주 질기고 독하기 때문에 언제든 그를 습격할 수 있을 터였다.

 “음.. 진드기는 안 보이는데요.”

의사 선생님은 스캐너처럼 도담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대답했다.

 “그럼 어디 안 좋은 곳이 있나요?”

 “지금 외부기생충은 아닌데 피부가 빨개요. 알레르기 반응 같은데. 최근에 새로 사용한 간식 있으세요?”

 “아... 칠면조 비스킷이 있긴 한데...”

 “그걸 한번 끊어보시죠? 딱 2주만 사료만 줘 보세요.”

 사료를 사면서 받은 반려견용 비스킷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괜히 먹였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주는 대로 좋다고 넙죽넙죽 받아먹으니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은 나인데 신중하지 못했던 거 같아 자책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모든 간식 전면 금지령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담이는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며 먼젓번 그것을 달라고 군침을 꿀꺽댔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왔을 때 선생님이 주신 개껌이 어지간히 인상적인 모양이었다.

 “안 돼. 오늘은 아무것도 못 줘.”

 도담이를 예뻐하시는 의사 선생님 목소리엔 아쉬움과 완고함이 묻어있었다. 피부가 뒤집어지기 직전인 그에게 선생님이 간식을 줄 리 만무했고 우리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간식 다 금지야. 도담이 피부 상태가 지금 별로 안 좋대.”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평소 간식을 주는 건 언니뿐이지만 일단 공표할 필요성이 있었다. 까딱 잘못하면 통원 치료에 약욕까지 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담이를 위해서 그 정돈 기꺼이 감내할 수 있지만 영문도 모른 채 학을 떼며 싫어하는 목욕을 매주, 어쩌면 매일 당할 도담이를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껌도?”

 “응. 일단 몽땅 다. 사료만 먹이래.”

 “거의 주지도 않는데 그거 때문에 그럴까?”

 “간식이 가장 유력하니까. 해봐야지.”

 나는 언제나처럼 애견용 샴푸로 깨끗하게 빤 타월로 그를 닦이며 말했다. 그는 가만히 마사지를 받다가 다시 몸을 긁어댔다.

 “가려워?”

 그가 연신 긁어대는 곳을 같이 긁어주었다. 자신의 조그마한 발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컥컥대며 버둥대기도 잠시, 같이 긁어주니 한결 진정되는 듯했다. 나는 마른 수건으로 그의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주었고 그를 위한 밥을 차렸다. 맛있는 참치 향이 나는 오메가3 영양제도 오늘은 패스. 그를 만난 이후로 계속 먹여온 영양제이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전부 끊어보기로 했다. 참치 향이 빠진 사료에 다소 실망한 듯했지만 도담이는 여느 때처럼 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그러나 내가 밥을 먹을 때도, 컴퓨터를 할 때도 그는 틈만 나면 긁어댔고 그의 발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졸음에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들려왔다.

 ‘더 좋은 거 있잖아. 그걸 달라구.’

 “미안. 아직 안 돼.”

 보행 중에 사용하는 칭찬 간식도 사료. 건널목을 찾거나 계단을 찾을 때도 계속 사료만 나오니 도담이는 조금 실망했는지 평소보다 느리게 꼬리를 흔들었다. 자주 틀리는 걸 한 번에 잘하거나 걷는 게 지루해 보일 때 ‘잭팟’용 특별식을 주지만 며칠째 잭팟은 터지지 않았다. 도담이는 그렇게 쑥과 마늘만 먹는 곰과 호랑이처럼 사료만 먹으며 2주가 꽉 차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2주 후. 여전히 벅벅 긁어대는 그의 발짓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다시 병원에 갔다.

 “좀 어떤가요?”

 “아직도 많이 긁어요. 간식도 다 끊었는데...”

 “계속 조금 빨간데... 혹시 뭔가 먹고 있는 거 아니에요? 다른 곳에서라도.”

 “음.. 일단 저는 사료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있어요. 다른 곳이면 잘 모르겠는데... 아...!”

 그때 아르바이트처에서 유독 강아지를 예뻐하는 분이 생각났다. 그분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안내견에게 간식을 주었다는 말을 하곤 했다.

 “지난번이랑 비슷한 상태인데 뭔지 몰라도 더 먹이면 더 심해질 수 있으니까 가능한 빨리 원인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럼 계속 사료만 줘야겠네요.”

 “네. 당분간은...”

 “도담이 어떡하니. 더 참아야 된대.”

 ‘의사 샘, 이번에는 줄 거죠?’

 도담이는 우리 대화는 전혀 듣지도 않고 이번에도 하염없이 선생님을 응시하기만 했다. 물론 결과는 무소득. 그는 또다시 2주 사료령을 선고받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 나는 조심스럽게 그분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도담이 많이 긁지 않아요?”

 “글쎄, 평상시랑 비슷하지 않아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는 사이이니 잘 알 리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자칫 말을 잘못해서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했고,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없어 물 흐르듯 대화를 통해 그녀가 원인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 보이면 다행인데, 사실 요즘 집에서도 계속 긁어대서 도담이 병원 다녀왔거든요.”

 “어디 아프대요?”

 “아직 아픈 건 아니고, 피부가 안 좋대요. 알레르기 반응 같다고 하는데 저는 사료 말곤 먹이는 게 없어서요. 이상하죠?”

 “아....”

 내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분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 때문일지도 몰라요. 사실 제가 샘 안 계실 때 강아지용 육포를 하나 줬거든요... 근데 진짜 조그맣게 잘라줬는데...”

 “아 진짜요? 얘 형제견도 그렇고 유전적으로 피부가 안 좋아서 먹을 거 엄청 신경 써서 줘야 하거든요.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다른 안내견에게 주는데 도담이라고 안 줄까 싶었던 내 추측이 적중했다. 그분은 멋쩍은지 ‘진짜 조금 줬는데...’를 몇 번인가 중얼거리고 아무것도 안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에 나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도담이에게 사료만 주었고 신기하게 그가 긁어대는 빈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 이제 좀 피부색이 돌아왔네요. 원인이 뭐였어요? 찾으셨어요?”

 “네. 아는 분이 저 몰래 양고기 육포를 주셨대요.”

 “아.. 강아지들이 고기 좋아한다고 강아지용 육포가 많은데 의외로 단백질 알레르기 있는 애들이 많아서 신중하게 줘야 해요. 도담이는 단백질 쪽에 좀 민감한가 보네요.”

 “알레르기 심하면 어떻게 돼요?”

 “도담이 정도는 양호한 편인데, 진짜 심한 알레르기는 사람처럼 기도 막혀서 숨 못 쉬고 설사하고 그래요. 강아지도 사람이랑 똑같은 생명이라 애들마다 알레르기도 다 다르고... 사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간식 안 쓰는 게 좋아요.”

 “아.. 그래도 큰 알레르기는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만약 기도가 막힐 정도로 심한 증상이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27kg이나 되는 녀석을 업고 뛰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119를 불러 안내견을 봐주는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이나 용인 안내견학교까지 달렸을 터였다. 도담이를 잃을지도 몰랐다. 여차저차 도담이가 안정을 찾는다고 해도 그가 입원하는 동안 출퇴근이든, 미용실을 가는 것이든 그와 함께 모든 사회생활을 하는 나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을 게 뻔했다. 결과적으로 큰 탈 없이 첫 번째 건강 이슈가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좀처럼 간식을 바꾸지 못하는 신중병에 걸렸다. 단백질 관련 간식이라면 모두 ‘가수분해’와 ‘무알러지성’ 딱지가 붙은 검증된 것만을 찾았고 아주 소량씩 먹여 반응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바스락 소리를 내는 봉투 소리에도 쪼르르 달려오는 이 귀여운 생명체가 앞으로도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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