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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Apr 04. 2023

성실한 무급사원의 야망

사무실생활

 성실한 무급 사원의 야망 

- 사무실 생활


 나는 늘 1시간 전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일이 많아서도 내가 성실한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지옥철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피크 타임의 2호선은 사람들이 빽빽해서 도담이가 편히 엎드려 있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왜 회사는 9시라고 출근 시간을 못박아 두는 거야. 탄력 근무면 좋겠다... 매일 1시간씩 강제 추가 근무네.’

 일어날 때마다 투덜거리곤 했지만 어느새 사무실 불 켜기 담당자 노릇을 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다 먼저 누군가 와 있을 때면 일등 스탬프를 찍지 못한 어린애 마냥 실망했다. 텅 빈 사무실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누리는 여유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즐기며 읽는 좋은 글귀 한 줄은 나를 직장인이 아닌 음유시인으로 만들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도담이는 달랐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물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쭐래쭐래 계단 앞으로 가서 업무 준비를 시작했다. 하네스도 안내견 코트도 벗어던진 맨몸으로 하염없이 계단 밑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시키지도 않는 경비일을 하는 것이다.

 “도담이 안녕~”

 “도담이다~”

 8시 30분이 조금 넘으면 하나, 둘 사람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그는 계단 앞에 앉아 누가 올라오는지 지켜보며 같은 층 직원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출근 체크다.

 “도담, 이리 와.”

 내 목소리에 그가 잰걸음으로 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단이탈한 헌병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계단에서 기다릴 때 간식을 준 적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가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 딴딴딴따다딴~

 업무 시작 종이 울리자 그는 허둥지둥 데스크 밑 쿠션으로 돌아왔다. 팀원들이 그를 향해 귀엽다며 웃어댔다.

 “근데 그거 알아요?”

 “네 어떤 거요?”

 뒤에 있던 팀원이 말했다.

 “도담이 우리 층 사람들 다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

 “아 진짜요?”

 “어떻게 알고 들어오는 거지? 신기해요. 진짜.”

 종소리 듣고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우리 층 사람들이 모두 착석할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종이 울리기 전에 자리에 돌아올 때가 있어서 이유가 궁금했는데. 수수께끼가 풀렸다.

 “도담이가 제일 성실해. 시키지 않은 일도 하잖아. 다들 도담이처럼 일해.”

 부장님이 말했다. 사실이었다. 도담이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실했다. 그는 내가 다른 팀에 가서 일을 할 때도 나를 따라다녔고, 팀 회의를 할 때도 회의실에 제일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빨리, 빨리! 곧 회의 시작이야.’

 “아니, 넌 내 안내견이지. 여기 사원이 아니잖아.”

 그가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느릿느릿 회의실로 향하는 나를 재촉했다. 사무실에서 그는 늘 자유였다. 보통의 시각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익숙한 공간에서는 굳이 그의 도움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도담이는 리드줄도 하지 않은 채 수시로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그는 영리하기까지 해서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람에겐 다가가지 않았으며 어디로 가면 귀여움 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같은 층에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은 도담이가 매여 있길 원하지 않았고 자신의 팀에도 놀러와 주길 바랐다. 도담이도 그 마음을 아는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2시쯤이 되면 그는 조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러 이 팀, 저 팀 들쑤시고 다니기 바빴다.

 “도담이 때문에 회사 다닌다 진짜. 귀여워 죽겠어.”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뭐 먹었는감?’


 점심시간이면 팬미팅이 열렸다. 도담이는 팬관리도 철저해서 찾아오는 팬 한 명, 한 명 냄새를 맡으며 코수회를 하고 꼬리를 흔들어주었다. 그는 점심 산책 후 몇 분 되지 않는 자투리 시간까지도 항상 알차게 업무에 활용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의자에 앉기 힘들 정도로 자리가 늘 붐볐는데 다른 층에 있는 사람들까지 그를 보러 왔기 때문이었다. 손 주기, 엉덩이 씰룩 대기 등 온갖 애교를 선보이며 점심시간에도 지친 직원들에게 미소를 주니 도담이는 나날이 회사의 필수인재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난 묘하게 그를 질투하고 있었다.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라 뭐랄까, 나는 그냥 도담이 리드줄 들어주는 사람 갔달까. 어쩌면 도담이가 사원이고 나는 그를 출근시켜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엇, 도담이 오늘 출근 안 했네요.”

 휴가를 내는 날이면 도담이를 보러 왔던 사람들이 그렇게 묻는다고 팀원들이 말했다.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휴가일 때는 ‘휴가 중’이라고 붙여놓는 게 어떻냐고 할 정도였다.

 “근데 다들 도담이 휴가냐고 물어봐. 샘이 휴가인데.”

 심지어 내 이름은 모르지만 도담이 이름은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도담이 누나’인 모양이었다. 내가 아닌 도담이가 더 직원 같았다. 하지만 그럴 만했다. 도담이는 붙임성도 좋고 나보다 눈치도 빨랐다.

 “에휴~”

 팀장님이 한숨을 쉬었다. 뭔가 잘 안 풀리는 게 있는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때 터벅터벅 발소리가 팀장님 쪽을 향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팀장님?’

 도담이가 팀장님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면 팀장님도 귀엽다며 조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도담이는 분명 사람일 거야.”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팀 분위기를 일찍 알아차렸으며 층 전체 분위기도 알았다. 그리고 사원들의 마음을 가장 순수한 방법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아얏, 이 녀석이 내 발을 밟네.”

 “아, 죄송합니다...”

 - 헥헥헥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분을 만났다. 도담이는 27kg의 몸무게를 한 발에 모아 지긋이 그분의 발 위에 투하했다.

 “잘했어! 역시 도담이가 최고야!”

 그분이 내리고 같이 타고 있던 사원들이 환호했다. 도담이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높이 쳐들며 가슴을 폈다.

 그는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하는 사원이었다. 다른 정직원들이 넘보지 못할 성실함을 뽐냈고 대인관계에도 월등했다. 하지만 현실은 무급사원. 나는 그를 볼 때면 안타깝기도 했다.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감시, 보초, 회의 참여, 직원 대변, 사원 심리 상담 등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것을 도맡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자처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엇...”

 그러던 어느 날, 한 다른 팀 직원이 부장님 자리에 갔다가 돌아 나오며 말했다.

 “부장님 오늘 안 계세요?” “오늘 반차 내셨어요.”

 “아...”

 결재를 받으러 왔다가 허탕을 친 직원이 떠났다.

 “샘, 지금 도담이 어딨게?”

 그때 뒤에 앉은 팀원이 개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발밑 쿠션에 손을 대었다. 텅 비어 있었다.

 “어? 어디 갔지? 아까까지만 해도 자고 있었는데.”

 “도담이가 열심히 일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니까. 야망이 있어.”

 “네?”

 “오늘은 도담 부장님한테 결재 받으세요.”

 도담이는 부장님이 퇴근하기 무섭게 그 자릴 꿰차고 있던 것이다. 부장님 데스크 밑에 엎드려 팀원들이 올 때마다 고개를 빼꼼 거렸다.

 “팀장님 없을 땐 팀장님 자리, 부장님 없을 땐 부장님 자리.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나도 없는 완장욕이 도담이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도담이는 무급 사원이라 승진을 할 수 없다.

 “도담아, 넌 누나가 부장이 되지 않는 이상 부장이 될 수 없어.”

 여러 차례 그에게 일러주어도 도담이는 늘 바빴다.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이리저리 일하러 갔다가 피곤해져서는 코를 골며 잠을 잤다. 꿈은 큰 게 좋다지만 현실을 알아야 될 텐데... 미안하게도 나는 도담이만큼 욕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의 꿈을 이루어주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간식값 인상 요청건에 승인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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