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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Apr 23. 2024

그리움을 덮다

현실, 지금, 여기

 도담이를 보내고 어느새 한 달이 되었다. 그가 쓰던 쿠션과 몇 가지 생필품을 챙겨 보낸 탓인지, 새 친구 덕분인지 집 안 가득 그가 풍기던 고소한 향기는 조용히 흐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퍼피워커 가족 품으로 돌아간 그가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겠거니 믿을 뿐 나는 더 이상 그를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내가 도담이 향기를, 감촉을, 모습을 기억 저 편에서 꺼내올 때면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새 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이 싹 터버리니 스멀스멀 도담이와의 추억이 김처럼 피어오를 때면 뚜껑을 덮는다.

 도담이와 새 친구 봄이는 N극과 S극처럼 극과 극이다. 성별, 크기, 성격 모두 정반대. 고쳐줄 나쁜 버릇마저도 완전히 다르다. 봄이와 도담이가 겹쳐 보이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나는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도담이 생각을 안 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잘 지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젖어들곤 한다. 몇 개월은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무렇지 않는 내 자신이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다. 특별히 그를 기억해낼 상황도 아닌데 문득 예고 없이 눈가가 뜨거워진다. 봄이는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봄이를 담이라 부르고, 언니라고 해야할 상황 속에 누나라고 내뱉고 마는  내 모습을 통해 그의 빈자리를 느낀다. 도담이가 내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7년이란 세월 속에 버릇이 되어버린 말습관이 나를 씁쓸하게 한다. 내가 또 도담이 이름을 부를 날이 올까. 시간이 좀더 지나고 만나려면 만날 수 있겠지만 누구를 위한 행위인지 알 수 없는 자리를 만들 생각은 없다.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 처음 우리가 만난 순간처럼 운명적으로 마주치겠지. 어쩌면 내심 그런 날이 오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아직도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올 때면 도담이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릴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만 , 턱에 마구 뽀뽀를 해줄 것만 같지만 화장실 앞 발패드 위에 몸을 말고 나를 기다리는 봄이를 발견하고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 봄이는 뽀뽀는 안 해주지하면서.

 반갑다고 다리에 얼굴을 비벼대는 봄이를 쓰다듬어주며 현실

에 익숙해져 간다. 그리움을 덮어두고 묵묵히 지금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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