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솜사탕 May 13. 2024

누가 허락했는가

관악산 물놀이장 공사를 바라보며

 주말이면 나는 관악산 둘렛길을 걷는다. 지하철로 10분 안에 갈 수 있으니 만만하면서도 숲향기를 즐길 수 있어 내겐 딱인 산책로다. 특히 비가 온 다음 날 아침이면 피톤치드향이 온몸을 감싸 삼림욕장이 따로 없다.

 한바탕 비가 지나간 이번 일요일 아침도 나는 당연 그곳을 찾았다. 평소 도심에서 듣지 못하는 낯선 새들의 울음 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 시원하게 쏟아져내려오는 계곡물 소리. 그 수 많은 자연의 숨소리에 귀기울이며 걷고 걸었다. 날씨가 좋은 탓에 젊은 커플부터 아이 동반 가족, 나이 지긋한 등산객까지 사람들이 북적였다. 평온함. 그 풍경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평온함이다.

 - 두두두두! 두두두두!!

 그런데 낮은 경사를 타고 산책로 안쪽으로 깊어지자 거대한 소리가 났다.

 "이게 뭔 소리지? 산에서."

 상황을 살펴볼 수 없는 나 대신 테디베어가 저만치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이윽고 돌아와 말했다.

 "공사하나 본데? 아, 여기 계곡 쪽에 어린이 물놀이장 만든다고 써있네."

 "아.. 물놀이장..."

 "바닥을 깨고 다듬는 거 같아. 뭔가 설치하려나."

    "아... 난 사실 저런 공사 잘 모르겠어."

 나는 그에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잘 닦인 아스팔트를 걷고 있는 내가 할 말이 아닐 수 있다. 모순이란 걸 잘 안다. 그래도 난 정말 공사를 싫어한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이 공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땅에 살던 벌레들에게도, 산과 나무에 기대어 사는 동물들에게도 허락 받지 않은 오롯이 인간만을 위한 공사니까.

 옛 조상들은 돌과 나무를 다듬어 조립하여 건물을 올렸다. 지금처럼 아스팔트를 붓거나 본드를 바르지 않고서. 화학페인트를 사용하지도 않고 천연 염색을 했다. 그리고 지형을 깍고 다듬기보단 그 땅의 본연의 모습을 지켜 그곳에 맞게 설계해 건물을 올렸다. '자연과 하나되는 건축'. 나는 그런 한국 전통 가옥과 풍경을 좋아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거칠고 험준한 계곡가에서 그 중에 평편한 바위를 골라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위험하니까 조심조심 걷긴 했지만 자연 품에서 놀았다. 반듯한 벤치도 반짝반짝 예쁜 조명도 없지만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그 모습이 사라져가는 듯하다.

 안전과 아름다움 때문이겠다만 과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할까. 개발되어 사람들이 모여들고 쓰레기가 쌓이고 그렇게 방치되고. 그 광경을 수십 차례 보아온 나는 이런 공사현장을 볼 때면 안타깝기만 하다. 한라산 위에 나뒹구는 컵라면 쓰레기처럼 결국 또 그렇게 되겠지 하고.

 - 두두두, 두두두두!

 흙 밑 벌레들이 질겁하며 도망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의 새들이 겁에 질려 날아가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나는 미안하다 속삭인다. 너희한텐 물어보지도 허락받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해서 미안하다고 외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신이 정의하는 병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