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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Feb 16. 2024

병신이 정의하는 병신

진정한 병신의 의미

 수업 시간. 점자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던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은 언제 장애인 판정 받으셨나요?”

 “2013년이요.”

 “그때 그럼 선생님 나이가...”

 “24살이었죠. 아, 이제 만으로 세니까 23살.”

 “헉! 그럼 대학교 졸업반인데... 겨우 10년밖에 안 되시고 바로 재활해서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네, 뭐 그렇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전 10년 전쯤 처음 장애인 등록하고도 한참 걸렸어요.”

 “하하하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 거죠. 수업 곧 끝날 시간인데 얼른 마저 읽어봐요.”

 “네엡.”

 사실 나는 그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장애인이 되고 바로 사회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계기가 하나 있다. 이번엔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병신이다. 병들 병, 몸 신(病身). 요즘 말로 장애인, 비속어로 애자.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첫 번째 뜻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나오는 그 병신. 조각 정도로밖에 남지 않은 2도 미만의 시야로 겨우 빛만 감지 하니 가히 부정할 수 없는 병신이다.

 학창 시절 애들이 걸핏하면 욕으로 사용하는 그 병신이 된다는 건 인생에 적지 않은 충격이다. 특히 요즘처럼 눈요기할 것이 많은 세상에서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건 더더욱. 그래서 한때 방황하기도 했다.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다. 친구들한테 말하기 힘들었고, 말한다 해도 그들의 표정을 상상하면 두려웠다. 그래서 보이는 동안은 최대한 감췄다. 보통 속도보다 느리고 걸핏하면 어딘가에 박고 교수님, 선배를 못 봐서 인사불성으로 낙인된다 해도 숨겼다.

 그러던 대학 시절 어느 날, 과제로 박물관에  가야되는 일이 벌어졌다. 눈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려서 어두컴컴한 박물관 내부를 돌 자신이 없었다. 가봤자 작품들이 보일 리도 없었다. 그렇다고 필수 과목 과제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망설이다 도록을 보고 리포트를 쓰면 되겠다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 살금살금 인포메이션 코너에서 도록을 산 뒤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려 박물관 계단을 찾는 순간 나는 굳었다.

 계단 핸드레일 쪽에 광고성 현수막이 걸려 그쪽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좀 전에 올라왔던 계단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망했다...’

 눈앞에 회색 덩어리가 길게 뭉쳐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더니 몸이 뜨거워졌다. 올라가는 계단은 윗면과 옆면, 두 면이 보여 어려움이 없지만 내려갈 땐 층계들 윗면만 보여서 그 경계를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넘어지고 구른 적이 몇 번이던가. 자존심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사람이 지나갈 때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핸드폰 하는 척했다. 그냥 나는 잠시 서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 여겨지게끔. 그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내 손을 보지 못하길 빌면서.

 사람들이 한바탕 빠지고 다시 회색 절벽 위에 혼자가 되었다. 조심조심 층계를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디뎌도 내디뎌도 계속되는 계단. 바닥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 진짜 싫다... 징글징글하다. 이 생활 정말 징글징글해.’

 속으로 곱씹으면서도 겉모습은 도도한 척, 여유 있는 척. 우아하게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 척. 괜히 주변 한번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그때 한 외국인 남성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도와줄까요?”

 “괜찮아요.”

 “위험해 보이는데 같이 내려가시죠.”

 그렇게 말한 외국인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를 속삭이며 한 걸음씩 내려갔다. 나는 왕자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성 계단을 내려오는 공주처럼 그의 손에 내 손을 얹은 채 한 걸음씩 아래로 발을 옮겼다.

 “끝! 잘했어요. 조심해서 가요!”

 창피해서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온갖 도도한 척, 괜찮은 척, 문제없는 척하면서 사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혼자 아무도 모를 거라 믿었던 것이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내 믿음은 착각이 아닌 망상이었다. 전부. 순식간에 길 한복판에서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입술 사이로 작게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병신 같아.”

 인생의 첫 욕이 나 자신을 향할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병신 주제에 병신 같은 짓을 했다고. 우리가 흔히 욕으로 쓰는 멍청하고 덜떨어지고 모자란 짓하는 그 병신까지 되어버렸다고. 그저 수치스러웠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한심하고 멍청하고 병신 같아 보였다.  

 ‘병신으로만 살래, 아님 거기에 병신 같은 병신으로 살래?’

 내 안의 내가 물었다.

 ‘적어도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 장애랑 공생하면 주변에서 도와주고 멋지다, 대단하다는 격려를 받을 텐데. 너는 어떻게 살래? 그냥 지금처럼 병신 같은 병신으로 살래? 보통 사람인데 덜떨어지고 부주의하고 무례한 사람으로 살래?’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내 안의 나에게 대답했다.

 ‘지금부터 내 장애로 인한 자존심은 다 버린다.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요즘은 장애인을 보고 누구도 병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장애인이란 말이 잘 정착되었고 장애인에게 병신이라고 하는 게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걸 모두 안다. 하지만 ‘병신’이란 말은 분명 남아있다. 두 번째 사전 뜻,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래서 난 이제 병신이 아닌 평범한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병신같은 저를 발견해서 병신 같은 병신 안 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명색이 선생님인데 학생에게 병신, 병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는 지켜야지. 그래서 그 말은 삼켰다. 선생과 제자 관계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말했을 텐데 참 아쉽다.

 나는 지금도 매일 스스로를 경계한다. 진짜 병신이 되지 않도록. 누구에게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가. 심지 굵게 나를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가.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

 이 마음가짐 하나로 나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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