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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Oct 21. 2023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면

특별한 날 만들기

 매일 똑같다. 일어나서 일하고 먹고 자고. 주말의 경계가 무너진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 더 심해졌다. 달력 속 빨간날은 더 이상 내게 특별함을 주지 않는다. 그냥 거래처와 연락이 안 되는 날 정도일 뿐이다. 여행을 가기도 어렵다. 여건도 여건이지만 주말까지 뭔가 일이 다 잡혀있으니 어디론가 도피할 구멍은 없다.

 앞으로 1년, 10년 30년 뒤에도 아마 똑같은 생활을 하겠지?

 이런 생각이 스치면 우울해진다. 특별함이 없는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커피 마시는 날'을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베이글을 먹는 시간을 갖는 것.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약마냥 챙겨 마시던 커피를, 1주일에 한 번만 마셔보기로 했다. 건강 이슈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일상에서 즐거움이나 새로움이 없다면 직접 만들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가장 흔하고 루틴이었던 것을 특별하게 만들어 보기. 이미 루틴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 그 행위에 애정이 있다는 뜻이니 효과는 두 배다.

 '다음 주 토요일이 빨리 오면 좋겠다.'

 토요일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느 새 나는 다음 주를 기대하고 있다. 모든 게 충족된 것보다 원하는 것을 참았다가 손에 넣었을 때 더욱 달콤하다.

 그러고 보니 케이크도 옛날이 더 맛있었다. 퀄리티적으론 요즘 케이크가 압도적으로 예쁘고 맛있지만 기분은 아니다. 생일에만 먹던 특별한 케이크가 지금은 어디서나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흔해빠진 것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돈을 벌어 쓰니 내가 먹고 싶을 때면 휙휙 간단히 살 수 있게 되면서 케이크를 먹는 그 설렘은 0에 가까워졌다.  

 어렸을 때 나는 어른이 부러웠다. 떼돈을 벌지 않더라도 당장 먹고 싶은 떡볶이 한 접시,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을 고민도 없이 눈치 안 보고 사먹을 수 있으니까. 매일 호텔 레스토랑에 오마카세를 가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고 싶은 걸 한 두 개쯤 사먹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좋지 않다는 걸 요즘 들어 부쩍 강하게 느낀다. 교육과 복지일을 하다보니 일에 보람이야 있다만 결국 나도 숫자만 쫓아다니는 사람인 것이다. 옛날처럼 현금으로 받지도 않아서 시스템 상에서만 동동 떠다니는 숫자가 내 통장에 잘 착륙했는지 그것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프리랜서라 입금이 찍히는 날이 매번 다르니 그걸 체크하는 데만 꽤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일하고 숫자 확인하고, 일하고 또 숫자 확인하고. 매달, 매년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보상이랍시고 원하는 게 있으면 지르고, 먹고. 그렇게 나 스스로 인생의 특별함을 지워버리는 거다.

 과연 이런 즉각적인 보상이 정말 나를 위하는 것일지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안다. 일상이 재미없어진다. 그러니까 나는 '커피 마시는 날'을 기다린다. 그렇게 오늘도 내가 늘 하던 일상을 소중하게 만들어 본다. 오늘은 토요일, 커피향이 우리집을 가득 채웠다. 특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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