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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솜사탕 Jul 17. 2024

진정한 실패

내 인생 첫 실패경험

 사람들은 곧잘 자신이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국가 공직 시험이나 수험이 있겠다. 사소하게는 면허증이나 기사 자격시험에서도 자신이 한 번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패했다고 한다. 좀 더 무거운 주제라면 사업이라든가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본 것도 있을 터다. 솔직히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당황스럽다. 내가 보기엔 전혀 실패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실패’란 인생에 딱 한 번만 주어지는 기회를 잡지 못하는 순간을 뜻하는데 위의 것은 도전자가 살아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계속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여러 번 자격증시험을 치고 떨어졌음에도 그 경험들을 과정이라고 보지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나도 인생의 실패 경험이라고 부르는 게 딱 하나 있다. 이 실패 경험을 말하려면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바로 예술중학교 입시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런 말 하기 뭐하다만 나는 미술로 꽤 인정받는 인재(?)였다. 같은 학년 친구들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 학부모까지 ‘미술= 하얀솜사탕’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교내뿐 아니라 전국적인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었다. 방학 때나 상상화 그림 그리기 대회가 되면 친구 어머니들이 OO랑 그림 그리고 놀라며 집에 초대할 정도였다. 어찌저찌 이런 상황인지라 주변에서 예술중학교 입학시험을 권유했고 나의 꿈과 찰떡을 이루면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 나이에 입시생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나는 시험에 떨어졌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유난을 떤 주제에 너도나도 아무나 다 가는 일반중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전혀 주목받지 못한 다른 친구가 예중에 덜컥 합격하고 내가 떨어진 점이었다. 학교는 술렁였고 나의 실패는 곧장 온 동네에 퍼졌다. 모두가 나의 예중 입학을 확신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결과에 반 친구들도 누구 하나 감히 나를 놀리지도, 위로하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도 데면데면해지면서 서먹해져 갔다. 그림 잘 그린다고, 그림 그려 달라고 말을 거는 아이들도 온데간데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와중에 합격한 그 친구의 인기는 급부상했다. 모두의 관심을 받고 선생님들이 그 아이에게 친절해졌다. 완전히 왕관을 빼앗긴 왕의 기분이었다. 그 당시 정말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한국을 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보통의 입시처럼 재수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재수도 할 작정이었다만 그런 기회는 애초에 없었다. 중학교 재수 들어보았는가? 검정고시가 아닌 이상 아마 들어본 적도 없을 거다. 어쨌든 그 믿을 수 없는 경험은 나에게 온갖 부정적 감정을 가르쳐주면서 큰 차가 나를 치어죽여 줬으면 좋겠다는 초등학생이 좀처럼 하기 쉽지 않은 마음마저 생기게 했다. 거만해지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하려는 하늘의 채찍이었는지도 모르겠다만 사춘기 소녀에게 있어 이런 실패 경험은 적지 않은 상처이자 인생에서 처음 마시는 고배였다.


 지금이야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쯤으로 가볍게 말하지만, 그 시절은 정말 심적으로 힘들었다. 다시 도전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다른 일들은 웬만해선 별것이 아니게 되었다. 대학이야 정 뜻이 있으면 몇 년이든 세월을 갖다 부을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뭐 전교 1등에 전국 규모로 노는 사람이 서울대에 떨어진다면 동네에서 상당한 이슈가 되기야 하겠다만 아예 다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니 그리 슬퍼할 것은 없다. 그냥 재수 없는 일쯤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물론 같은 시험, 분야 등에서 여러 차례 낙방하게 되면 자존감이 지하까지 뚫고 가 지구 내핵과 ‘안녕?’하고 인사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래도 GO! 라고 외칠 선택지는 있으니 완벽한 실패는 아니다.


 스포츠만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포기하면 거기서 시합 종료입니다.’ 끝이라고 내가 마음을 먹는 순간 실패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버스를 놓친 것마저도 실패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각은 하겠다만, 버스가 영영 안 오는 건 아니듯 대체로 우리에겐 ‘다음 기회’가 있다. 그러니 자기 삶과 생활 속에서 실패를 몇 번 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에게 벌어진 그 사건은 진정한 실패인가? 자신이 실패라고 확정 짓고 중간에 내려놓은 것은 아닌가? 그 실패 이후 나의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찬스가 전혀 올 수 없던 것이었는가? 설령 그렇다면 그것을 대체할 다른 대처법도 전혀 없었는가?


 이 조건들이 모두 부합하면 실패라고 볼 수 있지만 ‘가족을 위해서 포기했다’ 같이 환경과 상황에 이유가 있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지 실패라 볼 순 없다.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대상보다 더 소중한 가치관이 있기에 멈춘 것이지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이처럼 많은 좌절의 경험 끝에 새로운 길을 택하기로 결심한 사람에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하여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절망 속에서도 기어올라 어떻게든 목숨을 붙이고 있으니 그 자체로도 엄청난 성공이다. 또한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 보면 대한민국 땅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처럼 성공한 삶도 없다. ‘죽지 않고, 굶지 않고 등 따습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동물로서는 성공인 것이다.


 너무 팍팍하게 살지 말았으면 한다. 길가에 핀 꽃들만 봐도 피어나는 계절이 제각각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시기에 필 리 없다. 같은 조건의 환경에서 똑같이 잘 자랄 리도 없다. 오늘 잘 안 풀렸다면 내일 더 잘 되겠지 하는 마음, 그런 여유가 꽃을 피우게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이번 기회 말고는 더 이상 도전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면 너무 쉽게 실패라고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삶에서 실패의 빈도가 늘어나봤자 결국 손해는 본인이다. 혹시 지금까지 사소한 에피소드를 실패라 선 긋고 자기자신을 낙오자 취급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꽃망울은 언제 피어날지 관찰하며 오늘을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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