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생각이 언어가 되고
- 언어가 다시 생각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동생이 있었다. 여우 같고, 본심을 숨기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남을 홀리는 것 같아서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미워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면 나만 추해 보일 것 같아서 내 속을 삼켰다. 그리고 그 동생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 우리 귀여운 동생 왔어. "
라고 말했다. 나를 발견 하면 돌고래 소리를 내며 반갑게 뛰어오는 동생이 꼴 보기 싫었지만 꾹 참고
" 오늘도 사랑스럽네. "
라고 말했다. 속으로 나는 말했다. ' 제발 좀 사랑스러워져라. ' 그 아이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그 아이가 참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괜찮은 아이였다. 어느덧 내가 한 말처럼 그 동생이 참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였다. 나는 비로소 그 아이가 얼마나 훌륭하고 괜찮은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제는 각자의 삶이 바빠 아주 가끔 우연히 마주친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는 그 동생이 반갑고, 사랑스럽다. 나는 어느덧 내가 한 말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내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반복적으로 한 내 말이 내 생각이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노력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사람이 괜찮아 보이지 않을 때 그 사람을 바라보며 말한다.
넌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그리고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괜찮은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내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다. 그리고 좁은 편견에 쌓여 미처 만나지 못했던 훌륭한 부분을 서서히 만나게 된다.
언어가 내 생각이 되고, 내 생각이 다시 언어가 된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그때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한다.
너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나이가 들수록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피하게 되고 , 입을 다물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빛이 나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자꾸만 하는 말을 듣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은 무엇이 나와 다른지 보게 되었다.
" 그건 아니지! " / " 에이, 그건 안돼! " / " 뭐라는 거야? "
날 막아 세우거나 , 칼날 져서 상처 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애매한 말도 없었고, 추궁하며 몰아세우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을 충분히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알았다.
이건 어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용어나 미사구어가 많지 않아도 그의 말은 세련되었고, 품위 있었다. 즉 그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정확히 말할 줄 알았다.
'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거구나. '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을 나의 언어로 잘 표현하고 말할 수 있도록 가꾸어 가는 게 나이를 먹는 거구나.
나는 알게 되었다.
생각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생각이 되고, 언어가 행동이 되고, 나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함부로 말하는 경솔한 행동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내 말이 곧 나로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 내 말을 은쟁반에 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말은 의뭉스럽지 않아야 하고, 의중을 알 수 없어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거나 답답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날카로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나타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할 때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는 말의 의도와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어떤 의도인지 알 수 없는 말은 상대의 입을 닫게 할 뿐 아니라 피곤하고 힘들게 만든다. 이미 말의 의도와 의미를 생각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다시 이 경험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는 이미 피곤하다. 결국 상대는 날 피하게 된다. 그래서 말은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고민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게 하지 말자.
대화를 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내 말은 바르게 전달 해야 한다.
또한 장황한 부연 설명과 사설은 상대를 지치게 한다.
예전에 [반지의 제왕] 영화를 영화관에서 처음 본 날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길고 긴 서사를 보면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 그래서 본론은 언제 나오는 거야? '
그렇게 영화관에서 나는 3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본론을 보지 못했다. 사실 반지의 제왕은 시리즈였고 나는 그 중 1탄을 본 거였다. 본론을 보기 위해 3시간 기다렸으나 나는 만나지 못했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허탈감을 나는 맛보았다. 어릴 적 만난 ' 호밀밭의 파수꾼" 책이 떠올랐다. 언제 사건이 일어날까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책은 끝이 났다. 그 책은 사실 사춘기를 겪는 한 사람의 생각을 길게 묘사한 책이었다. 나는 " 아아악! " 짜증스런 비명을 지르며 책을 던졌다.
' 그래 사춘기면 생각이 많겠지. 그래 그럴 수 있어. '
그렇게 애써 위로 했다. 사춘기가 지난 우리는 이제 내 생각을 정확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리고 대 역사 소설이 아닌 간략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나만의 언어를 정립해 나갈 때 이루어 낼 수 있다.
나의 언어는 내 생각을 만들고 나를 만든다.
나의 언어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언어로 나를 나타내고 있는가?
그 순간 입이 다물어졌다.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이유, 내가 섣불리 판단하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언어가 내가 되기 때문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결국 내 속에 있는 부분을 꺼내게 되는 거고, 나타내게 되어 있다.
내 생각은 내 언어가 되고, 내 언어는 내 생각이 되고, 내 생각은 내 행동이 되고, 나를 이루어 간다. 그래서 말을 다듬기 위해 노력하고, 다시 생각하고, 생각이 언어가 되고 있는지 다시 돌아 본다.
그렇게 나는 하루의 삶을 만들어가고 하루의 나이가 무르 익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