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연 3주 전, 배우 3명이 탈주한 건에 대하여

자발적 공사다망 2025년 가을호 <좋아서 하는 개고생> #3

by 도나윤


공연을 달랑 3주 남겨 놓고

우리 페어 배우 3명이 탈주했다.

진행 상황을 보아하니 도무지 이 공연은 가망이 없다면서 말이다.


그들의 무책임함을 탓하지 않겠다.

공연 당일 가발도 못 벗은 채 곧장 밤 비행기 타고 20시간 장거리 비행 해외출장을 가게 생긴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이대로 같이 놓아 버릴까 3초 정도 고민했으니까...


AI가 만든 창의적인(?) 그림. 내가 주문한 건 이 그림은 아니었다만... 귀여우니 봐준다...



엘파바, 피예로, 모리블 총장님, 모두 잘 가~!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남아서 어떻게든 이 공연 만들어 낼 거야~! 나는 착한 마녀니까~!




자발적 공사다망

2025년 가을호 < 좋아서 하는 개고생 >


#3. 뮤지컬 공연 3주 전, 배우 3명이 탈주한 건에 대하여



전지적 배우 시점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건 토요일 밤이었다. 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채 평화로운 토요일의 벼락치기를 강행하고 있었다.


< 앞으로 한 달 안에 내게 닥칠 일들 >


□ D-1 [무대] 결혼식 축가

□ D-2 [회사] 연수 수료 포트

□ D-6 [학교] 대학원 졸업시험

□ D-21 [무대] 뮤지컬 공연

□ D-22 [회사] 해외출장

□ D-23 [학교] 대학원 중간고사



ㅣ폭풍전야ㅣ

아침 8시부터 책상에 앉아 6일 남은 대학원 졸업시험 벼락치기를 했고, 오후 2시에는 보컬 연습실로 이동하여 다음 날 부를 결혼식 축가 벼락치기를 했으며, 뮤지컬 연습실로 이동하는 길에 3주 남은 공연 대본 암기 벼락치기를 하고, 오후 4시에는 연습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공연 당일 소대에서 볼 동선표를 제작했다. 오후 6시반부터 밤 11시까지는 뮤지컬 단체 연습이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이 바쁜 와중에 그저 최선을 다해 뮤지컬 공연 벼락치기를 병행하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시험 D-6, 내가 지금 뮤지컬 연습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축가 D-1, 내가 지금 뮤지컬 연습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ㅣ순탄치 않은 공연ㅣ

이번 뮤지컬 공연은 유독 순탄치가 않다. 나 또한 공연 두 달 전 충원으로, 홀리듯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시험 2주 뒤이자 대학원 중간고사 1주 전으로 예정되어 있는 이번 뮤지컬 공연 팀에는 현실적으로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며칠을 고민했지만 나는 결국 충동적으로 어느 연습실에 자리를 잡고 오디션 영상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렇게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D-day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엎친 데 덮진 격으로 회사에서 갑자기 나의 해외출장 일정이 잡혀 버렸는데, 하필이면 그게 뮤지컬 공연 당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런 저런 사정들로 팀에서 출장 갈 사람은 나밖에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주말에 출발을 해야 한다는데, 그날이 하필 뮤지컬 공연 날이라니.


당장 한 달도 남지 않은 공연 일정, 진작에 거금 들여 대관한 대극장, 20~30명의 배우들과 스텝들 일정까지 생각하면 도저히 공연 날짜를 바꿀 수도, 그렇다고 주연 배역인 내가 갑자기 하차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내 몫은 하고 출장을 가야만 상황이었다.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 비행 일정을 겨우 끼워 맞추고, 배우들에게 연락을 돌려 이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사정을 설명하고 배역으로 뛰는 공연 순서를 어렵게 조정했으며, 앙상블로 뛰는 회차의 대타까지도 구해 두었다. 이제 출장 당일 오전 일찍 배역으로 첫공을 뛰고, 앙상블로 둘공의 절반 뛴 후 곧장 비행기를 타고 출국할 수 있게 세팅을 마쳐놨는데...




ㅣ대망의 탈주 선언ㅣ

그 날의 연습은 밤 11시를 훌쩍 넘겨 종료되었다. 우리 팀의 팀장이 갑자기 팀 회의를 소집하였다. 우리는 연습실 앞 어두운 골목에서 동그랗게 모여 섰다. 나는 벼락치기 대책회의를 하려는 줄 알았다. 그것은 회의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본인의 탈주 선언을 하였다. 팀장이 탈주하자 이를 따라 두 명의 배우가 함께 팀장을 따라 탈주하였다. 나는 그들의 무책임함을 탓하지 않겠다. 핑계가 무엇이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나 또한 수많은 공연을 올려보았지만, 지금 우리 팀의 연습 상태가 탈주를 고민할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가혹한 출장 일정 때문에 이 참에 같이 놔 버릴까 3초 고민했으니까.


사실 그녀는 전날 미리 탈주 가능성에 대해 나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했었다. 60%의 확률로 하차를 할 것 같다고. 나는 그녀를 붙잡거나 설득하지 않았다. 갈 사람은 가면 되고, 남을 사람은 남으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단체 연습 당일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에 참여했기에, 나는 그녀가 하차에 대한 생각을 접은 줄로 착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 본인도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른 팀원들은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였으나, 의외로 나는 타격감이 크지 않았다. 어련히 사정이 있었겠거니. 나는 그냥, 나를 믿고 간다.

무대 세팅까지 다 나왔는데 어딜 간단 말이냐...




ㅣ안 하고 후회하기 vs 하고 후회하기ㅣ

나는 끝까지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나는 남은 자들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이 공연을 만들어 낼 거다. 내 사전에 중도하차란 없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안 해서 후회하는 것'이니까. 안 하고 후회할 것이냐, 하고 후회할 것이냐. 전자는 세월이 흘러도 미치도록 고통스럽다. '그때 왜 안 했을까' 백날 후회해봤자 다시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후자는? 일단 그냥 저질러 놓으면 아무리 말아먹어도 최소한 평생 가져 갈 수 있는 추억은 남는다. 도대체 이걸 왜 하차해~? 어떻게 만난 인연들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재밌게 놀다 가야지~!


내 배역 뮤지컬 넘버 중에 이 상황에서 당장 부르고 싶은 가사가 있다.


지금 이 경우도!

내 인생 최~대 고난이지만!

걱정 마~! 나는 이~겨낼 거~야!

나만 믿~어!

그러면 니. 미. 래. 는!


그렇게 나는 침몰하는 배의 새로운 선장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위기의 팀의 멱살을 꽉 잡고, 공연 당일까지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후회 한 점 남지 않을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 내고 말 것이다.




오늘 밤은 약간의 충격을 받긴 했으니, 졸업시험 공부는 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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