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축가 의뢰인

자발적 공사다망 2025년 가을호 <좋아서 하는 개고생> #4

by 도나윤

누군가의 소중한 결혼식의 일부가 되어 축하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의 열 번째 축가 의뢰인은 십 년째 직장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회사 동기이다.

아무리 가르쳐보고 어르고 달래도 끝내 '10번째'라는 단어를 학습하지 못한 AI


자발적 공사다망

2025년 가을호 < 좋아서 하는 개고생 >


#4. 열 번째 축가 의뢰인



전지적 가수 시점


나는 가수는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수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 위키백과에서는 가수를 '목소리를 이용해서 음악을 만들고 가창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모르겠고, 나는 내 맘대로 가수가 맞다. 그냥 노래를 좋아하는, 꾸준히 노래하는 사람. 결혼식에서, 무대에서, 길에서, 노래방에서, 차에서, 내 방에서, 샤워실에서, 어디에서든 노래하는 사람!



< 앞으로 한 달 안에 내게 닥칠 일들 >


■ D-0 [무대] 결혼식 축가

□ D-1 [회사] 연수 수료 포트

□ D-5 [학교] 대학원 졸업시험

□ D-20 [무대] 뮤지컬 공연

□ D-21 [회사] 해외출장

□ D-22 [학교] 대학원 중간고사



ㅣ역대 축가 의뢰인ㅣ

나를 믿고 일생에 한 번 뿐인 소중한 결혼식 축가를 의뢰해 준 이들의 대부분은 회사 동기들이었다. 축가는 총열 번쯤 불러 본 것 같은데 대개는 단체로 노래에 율동을 곁들여 무대를 장식했었다. 혼자 축가를 부르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솔로 축가는 이번이 세 번째이고 전부 회사 동기들의 결혼식이었다. 뭘 믿고 나에게 축가를 맡겼을까. 이유가 어찌되었든 참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의 인생의 한 페이지에 일부분이나마 색깔을 입혀줄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또한, 직업 가수가 아닌 한 개인이 설 수 있는 최대 관객 규모의 무대이니만큼, 무대라면 환장하는 무대충으로서 이보다 더 설레는 일은 없다. 밴드에서 공연을 올려도,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해도, 결혼식 하객 만큼의 관객을 동원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솔로 축가의 경우 보통은 축가 직전에 1~2회 정도 보컬 레슨을 받아주는 것이 예의이나, 이번에는 졸업시험 준비에 뮤지컬 공연에 각종 스케줄이 너무 빠듯하여 레슨은 차마 받지 못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ㅣCan't take my eyes off youㅣ

동기들 결혼식의 경우 하객이 겹치다 보니 매번 새로운 노래를 선곡하는 것부터 일이다. 신랑신부에게 축가 신청곡 리스트를 받긴 했지만, 고심 끝에 그 리스트에 없는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이번 축가 곡으로 선정했다. 개인적으로 축가는 기세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아무리 명곡이라도 잔잔바리 발라드보다는 신나고 경쾌한 곡이 부르는 입장에서도 훨씬 즐겁고 못 불러도 부담이 없다...


이제 웬만한 축가 베스트 곡들은 다 불러 제낀 터라, 남자 키 노래에 손을 대고 말았는데 이 참에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번 축가의 하이라이트는 신랑의 깜짝 축가쇼! 2절 코러스부터는 신랑에게 축가를 넘기기로 했다. 나는 진작에 예비 신랑의 마음 깊숙이 들어있는 '노래하고 싶은 욕구'를 읽어버리고 말았다. 직접 축가를 부르고 싶은데 혼자 부르려니 자신은 없는 그 마음 상태. 나는 그가 축가를 부르게끔 열심히 꼬드겼다. 결혼 두 번 세 번 할거야? 지금 아니면 언제 불러 볼 건데!! 그렇게 우리는 점심시간 회사 빈 회의실에서 몰래 접선하여 두어차례 노래 연습을 함께 했다. 대학원 졸업시험보다야, 이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지!




ㅣ나의 쓸모ㅣ

축가는 개인적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주변의 반응이 좋았다. 스스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노래였지만, 오랜 기간 나의 축가 성장기를 지켜보고 있는 동기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여 스스로도 만족한 셈 치기로 했다. 그 중 '라이브 카페에 온 것 같았다'는 말 한 마디가 감동적으로 느껴졌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1 시절 어느 오후 하굣길의 마을버스 안으로 후루룩 빨려 들어갔다. 당시 통기타를 치던 우리 반의 한 남사친과 같이 마을버스를 타고 하교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그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나중에 커서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 부르고 싶어!' 뭔가 뭉클해졌다. 비록 라이브 카페는 아니었지만, 내가 어느덧 그렇게 원했던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다음 날 출근을 하니 '축가 부르셨다면서요?' 하면서 메신저들이 날아왔다. 진짜 말아먹었으면 이런 연락도 오지 않았으리라, 정신승리를 했다. 나는 축가 의뢰인이 흡족해 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뿌듯함을 느낀다. 신랑신부의 가족들이 감사 인사를 전해주실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 비로소 작게나마 세상에 나의 쓸모를 다 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영원히,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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