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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휴가

조용한 여백이 필요할 시간

by 윤채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은 늘 조금 번거롭고, 낯선 공간은 종종 나를 낯설게 만들어 피곤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든 멀리 훌쩍 떠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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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구석에 고이 꽂혀 있던 여행 책자들을 꺼내어 조심스레 넘겨본다. 《리얼 오사카》, 《리얼 도쿄》, 《리얼 이탈리아》, 《리얼 스페인》.



그 안에는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낯선 도시의 따사로운 햇살, 이국적인 시장의 소란한 소리, 알 수 없는 언어로 채워진 밤의 공기. 책 속 사진 한 장만으로도 잠시 그곳에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조용한 골목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상상.



특별한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단지 ‘내가 아닌 나’로 살아볼 수 있는 낯선 도시 어딘가에서라면.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금세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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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곳으로 당장 떠날 수 있는 없지만, 그렇다고 낙심하진 않는다. 나는 집순이고, 상상 하나만으로도 먼 곳을 다녀올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진짜 여행보다 더 깊고 다정한 여행이 있다면, 어쩌면 그건 상상 속에서 떠나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책 한 권, 사진 한 장, 조용한 음악 한 곡만으로도 마음은 낯선 도시를 누비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풍경을 스치곤 한다.



언젠가는 정말 마음이 먼저 닿았던 그곳으로 내 발걸음도 도착하리라.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아직은 닿을 수 없지만, 언젠가 꼭 닿게 될 그곳을 떠올리며. 마음이 먼저 걷다 보면, 그 마음이 길을 만드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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