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글, 그리고 되찾고 싶은 권리
저작권은 단순히 창작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한 편의 글은 자식과도 같았다.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까지 천천히 고르고 다듬으며 피와 시간을 쏟아 만들어낸 문장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었다. 내겐 마치 살아 있는 생명과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내겐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만드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기억을 되짚고 감정을 끌어올리고 때로는 나 자신을 깎아내리며 작품을 지었다. 그렇게 탄생한 글에는 내가 지나온 계절과 시간, 한 시절의 눈물과 떨림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누군가는 그저 하나의 문장이라 여길지 몰라도 나는 알았다. 하나의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오래 망설였고 얼마나 깊이 흔들렸는지를.
웹소설 작가로 매일 다양한 글을 쓴다. 연재 플랫폼에 올리는 작품 외에도 창작 모임에 참여해 습작을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곤 한다. 서로의 문장에 애정을 담아 의견을 건네고 완성되지 않은 문장조차 조심스럽게 펼쳐놓을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창작자들 사이에 형성된 신뢰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같은 열망을 품은 이들과 문장을 나누는 경험은 언제나 든든한 위로이자 신선한 자극이니까. 글은 그렇게 나만의 은밀한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교감 속에서 더욱 생생한 숨결을 얻는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글 속에서 익숙한 문장을 발견했다. 문장의 구조, 감정을 끊는 리듬, 고유한 단어의 배치까지 묘하게 낯익었다. 처음엔 단순한 우연이라 여겼지만, 곧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쓴 글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피드백을 받았던 습작이 전혀 다른 제목과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몇몇 문장만 교묘히 바뀌었을 뿐, 그것은 명백히 내 이야기였다. 마치 이름과 옷만 바꾼 아이가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기분. 나는 내 문장을 알아보았고 동시에 낯선 이의 글 속에서 자식을 빼앗긴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심장이 차갑게 식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후의 일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 사람과 소모임은 아무런 해명 없이 사라졌고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그런 일 가끔 있어. 너무 마음 쓰지 마."
하지만 아무리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곤 해도, 그런 위로로 모든 상처를 덮기는 어려웠다. 나의 피와 땀, 나의 시간이 담긴 자식과도 같은 길이 허락 없이 도용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깊은 무력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창작자로서 내가 만든 이 소중한 존재, 나의 삶의 흔적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그리고 나 같은 아픔을 겪는 다른 창작자들이 없도록 세상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삶을 낳는 일이다. 상상 속 인물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기 위해 내면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잊은 줄 알았던 상처를 다시 끌어올려 단어로 바꾼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문장은 고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존재다.
글쓰기는 언제나 외롭고 고단한 작업이지만 그 고요한 고통 끝에 도달하는 문장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깊은 통로가 되어준다. 발표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그 글은 이미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다. 그 자체로 숨을 쉬고 살아 있는 존재다. 글은 단순한 텍스트 덩어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을 살아낸 증거이며, 창작자의 영혼과 삶이 깃든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글을 위해 탄생 과정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으로 인해 이미 완전한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출간되지 않았으니 괜찮다", "연습 작품이니 문제없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창작자의 작품은 단지 완성 여부나 출판 여부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깃든 시간과 감정, 고뇌와 열정만으로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법을 잘 알지는 못했다. 저작권법의 복잡한 조항이나 위반 시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글을 도둑맞았던 아픈 경험을 통해 단 하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저작권은 단순히 창작물을 지키기 위한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자식 같은 작품을 지키고, 작품을 탄생시킨 사람 자체를 지키는 일이다.
누군가의 문장을 허락 없이 가져가는 행위는 단지 몇 개의 단어, 몇 줄의 문장을 훔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존재의 일부를 허락 없이 가져가는 일이었고, 내 삶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끌어다 쓰는 행위였다. 나의 자식과도 같은 글이 낯선 이름표를 달고 돌아왔을 때 느꼈던 그 참담함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은 남의 자식을 내 자식이라 우기는 것과 다름없었으며 결국 한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침묵시키는 일이었다.
지금 우리는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나눌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간다. 창작 모임도 늘었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글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듯, 글을 나누기 쉬워진 만큼 도용 또한 이전보다 훨씬 은밀하고 쉬워졌다. 얕은 신뢰 속에서 한 사람의 소중한 세계가 너무도 쉽게 잘려나가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저작권을 이야기해야 한다.
단순히 법의 테두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허락 없이 잘려나가는 단어들, 즉 글 속에 담긴 창작자의 삶과 서사를 지키기 위해서다. 올바른 저작권 인식이 단지 '법'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을 위한 것임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창작품을 지킨다는 건 결국 그것을 만든 사람의 영혼과 서사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오십 년 후에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글은 나의 삶이고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의 작품을 내 삶처럼 지키기 위해 저작권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같은 아픔을 겪게 된다면 저작권이라는 단단한 울타리의 의미를 알려주며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바른 저작권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