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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이 왔다

꽃을 피우는 씨앗의 마음으로 5월을 향해 가다

by 윤채

작년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올해 초봄까지.



나에게 그 계절들은 꽤 길고, 서늘하고, 뾰족한 시간이었다.



마치 빛 한 줄 새어 들어오지 않는 마음의 방 안에 오래도록 혼자 앉아 있었던 기분.



누군가는 말하더라,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감당하지 못할 것만 같은 고통이 밀려온 날이 많았으니까.



특히 글 앞에서 많이 무너졌다.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더 힘들었고, 잘하고 싶었기에 더 아팠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했고, 어떤 날은 터무니 없는 상처를 견뎌야 했다.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말들. 나는 칭찬이 고픈 사람은 아니지만, 자식 같은 글이 모욕당하니 마음에 구멍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하지만 글은 내게 소중한 벗이자, 희망이었기에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그렇게 마음 안에 겨울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봄이 와 있었다.



찬 바람이 조금씩 물러나고, 거리엔 꽃이 피고, 나무에는 연둣빛 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상이 먼저 계절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창밖을 보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여기까지 버텨왔구나.



그래, 잘한 건 없지만 잘 버텼다. 버텼기에 이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겨울 내내 차디찬 땅속에서 움트고 있던 씨앗처럼, 나의 시간도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6일 오후 03_11_24.png



초여름에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있지만,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만큼 진심을 다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다가오는 5월은 더 정성껏 살아가고 싶다.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건 성장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겨울을 지나며 단단해진 뿌리 위에, 드디어 봄의 가지가 뻗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이 계절의 끝에서 나만의 꽃을 피울 것임을 믿는다.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이 왔다.



어쩌면 봄은, 무언가를 잘해서 오는 계절이 아니라 끝까지 버틴 이에게 주어지는 조용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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