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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썼는데, 내가 쓴게 아니라고요?

GPT 시대, 우리는 여전히 창작자인가?

by 윤채
GPT가 쓴 글은 정말 내 글이 맞을까?



글을 쓰는 일은 늘 당연한 일이었다. 때로는 위로였고 때로는 투쟁이었다. 문장은 내 안의 것을 바깥으로 꺼내는 도구이자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보다 더 빠르고 논리적인 문장을 단 몇 초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존재를 마주했다. GPT였다.



처음엔 마냥 신기했다. 마치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듯 몇 줄 써보면, 그럴듯한 문장이 눈앞에 쏟아졌다. 결과물을 읽으며 '이건 그냥 도구일 뿐이야'라고 자신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GPT를 활용하면 할수록 이상한 감정이 생겼다. 손은 분명 내가 움직였지만 문장의 어조나 구조는 내가 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쓴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 내 글이 맞을까?'



혼란을 안고 2024년 봄 AI 콘텐츠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단지 기술을 배우려 한 게 아니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나의 위치와 태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 직후에는 AI 아트 프로페셔널 자격증도 취득했다. AI를 글쓰기의 도구로 받아들인다면 그 도구를 정확히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1일 오후 07_20_10.png Copyright 2025. 꿈그린윤채. All rights reserved



이후 GPT를 활용해 글을 쓰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GPT는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놀랄 만큼 매끄러운 문장을 뽑아냈고, 문장을 고치고 다듬었다. 때로는 전혀 다른 문장으로 바꾸며 글을 완성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바라볼 때 내가 진짜 쓴 게 맞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손은 분명히 내가 움직였지만 문장의 뼈대와 방향은 GPT가 먼저 제안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 글은 누구의 것일까?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물'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 감정과 사상을 담은 결과물만이 저작권을 가질 수 있다. 기계는 법적 창작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GPT가 글을 만드는 방식은 무수한 데이터, 누군가가 쓴 말들의 조합을 학습한 결과다. 그 안에는 누군가의 일기, 시, 블로그, 수필, 강연 원고, 기사, 칼럼이 있었을 것이다. GPT가 만든 문장은 그들의 말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문장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고 조율하고 세상에 내보낸 건 나다. GPT가 쓴 문장들 사이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고르고 정돈하고 의미를 재구성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나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GPT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증기기관이 산업을 바꾸었고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가 글쓰기의 방식을 바꿨듯이 GPT 역시 창작의 형식을 바꾸고 있다. 누군가는 "그건 진짜 글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기술이 이미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기술을 멈추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그리고 그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ChatGPT Image 2025년 6월 1일 오후 07_21_26.png Copyright 2025. 꿈그린윤채. All rights reserved



이렇듯 GPT가 쓴 글도 나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세상에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이 그 선택의 마지막 판단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문장은 그 자체로 책임을 요구한다. 그 문장이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면, 그것은 GPT의 일이 아니라 나의 몫이다.



GPT는 책임지지 않는다. 감정도 맥락도 표현이 지닌 무게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창작자로서 어떤 문장을 쓸지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 글쓰기란 결국 태도이자 윤리라는 것을 나는 GPT와 함께 글을 쓰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저작권은 단지 법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그 글을 세상에 내보냈는지를 명확히 하는 구조이자 책임의 또다른 이름이다. GPT가 만든 문장을 내가 선택하고 구성해낸 글이라면 그 글은 나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묻는다.



'이 문장은 정말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엔 책임질 수 있는 내 손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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