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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작자일까 데이터일까

AI 시대, 창작자의 땀과 시간을 존중하는 법

by 윤채

"이러다 21세기 고흐가 되는 건 아닐까."



처음 AI로 그림 작품을 만들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다. 몇 마디 단어를 입력했을 뿐인데 화면 위로 상상조차 못 했던 그림이 나타났다. 섬세한 풍경과 생생한 인물이 어우러진 완성도가 높은 이미지였다. 내 손으로는 열 시간을 들여도 그릴 수 없는 작품 단 몇 초 만에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붓을 들 필요도 없고 어깨가 뻐근해질 정도로 그림에 매달릴 필요도가 없었다. 그저 몇 번의 키보드 입력만으로 그렇게 작품이 탄생했다.



AI는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가볍게 넘어서며 창작이라는 문턱을 낮춰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처음엔 경이로움과 설렘이 앞섰다. 이제는 손재주가 없어도 음악 이론을 몰라도 영상을 잘 만들지 못해도 '나도 이젠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더욱이 전시회를 열고 수익을 내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나 또한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넓히고 싶어졌다. 내가 AI 강사와 AI ART 프로페셔널 자격증을 딴 것도 이러한 흐름에 빠르게 올라타고 싶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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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낯선 불편함과 질문이 자라났다. 이토록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정말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AI가 학습한 수많은 데이터들과 그 속에 담긴 원작자들의 창작물은 과연 누구의 허락을 받고 사용된 것일까? 기술이 진보할수록 창작의 본질과 저작권의 윤리적 기준에 대한 의문이 더욱 선명해졌다.



AI는 분명 강력한 창작 도구이자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기술이다. 그림, 글쓰기,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이전에는 창작을 꿈꾸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나 역시 AI를 활용하여 색다른 글쓰기 방식과 그림 창작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AI는 독창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거나 경험하지 않는다.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분석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일 뿐이다.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앤더슨은 자신의 수천 장의 그림이 AI 학습에 무단으로 사용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수년간 반복하며 익힌 "손의 기억"이 데이터화되어버린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Getty Images와 Stability AI 사이의 저작권 소송 역시 이 문제가 개인을 넘어 기업 간 분쟁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도 AI는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의 고유한 감성과 시간, 경험이 녹아든 창작물을 학습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는 누구의 창작물을 바탕으로 배우고 있는가? 그 과정에서 원작자의 권리는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가? 인간 창작자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위해 며칠 밤을 지새우고, 수없이 고치고 지우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자신의 내면과 경험을 문장에 녹이고, 감정을 한 땀 한 땀 엮는다. 글을 쓰는 나 또한 캐릭터의 숨결을 불어넣고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인다. 이러한 땀과 시간, 손끝의 기억, 내면의 흔적은 단순히 기술로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이며, 바로 그 점에서 창작의 본질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 창작의 가치를 현재의 법적 틀 안에서 온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보호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인간의 감정을 반영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데이터 조합의 결과물인가? 또한, 이러한 결과물에 대해 AI 개발자, 사용자 중 누구를 창작자로 볼 것인가? AI에게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미흡하며, 법적 공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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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진보할 것이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가들이 기계를 부쉈다고 해서 산업혁명의 물결이 멈추지 않았듯, 오늘날 AI의 발전 역시 되돌릴 수 없다. 오히려 그 속도와 영향력은 과거의 산업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광범위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이나 회피가 아니라, 더욱 민감하고 성숙한 법적·윤리적 논의를 통해 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기술이 진보한다고 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창작자의 권리와 가치는 결코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논의를 외면한 채 방관한다면 창작자의 권리는 점차 희미해지고, 창작 생태계는 지속 가능성을 잃을 것이다. 창작자가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감정을 지켜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과 문화는 건강하게 숨 쉬며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 시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만의 것'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가 인간의 감정과 기억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예술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자 창작과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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