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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사람들은 마치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다시피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은행과 투자사 등 몇 군데에 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 여의도의 한 증권사에 입사했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매매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대개는 정보 수집이 관건이었다. 글로벌 시장 동향, 기업 정보, 경제지표, 고객별 포트폴리오 등은 모두 수집과 분석에 필요한 것들이고 이를 토대로 투자 전략이란 걸 수립해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면 된다.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고 파는 행위를 반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 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익이 생기는가, 손실이 생기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 일은 고객의 입장이 아니라 회사의 입장에서 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한동안은 과거에서 한참 떨어진 채로 일에 전념했다. 업무는 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양이었고 다른 일이란 것은 생각할래야 생각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출근하면 그때부터 하루 종일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어댔고 통화가 없을 땐 끊임없이 컴퓨터 화면과 싸워가며 시황을 분석하고 매도 그리고 매수, 사고파는 단순한 행위에 빠져들었다. 내가 속한 부서의 팀장은 김영호 씨였는데 그는 언제나 활기에 차서 팀원들 모두에게 매도와 매수를 체결할 것을 주문했다. 셔츠에 땀이 스며들 정도로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고 우리들은 마치 사료를 먹으려 일렬로 선 채 좁을 통로를 통해 끌려나가는 가축처럼, 사무실을 빠져나가야 했다. 동료들 몇 명과 백반집에 가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뒤 다시 가축이 되어 사무실로 끌려 들어와 오후 일을 시작했다. 일은 대개 저녁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해가 지면, 집에 와서도 불을 켜고 일을 했다. 맥주 한 캔을 책상에 올려둔 채 홀짝홀짝 마시면서 노트북 화면을 보고, 내일 시황을 분석하고 밤 늦은 시간까지 고객들과 통화를 이어갔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짐을 모두 챙겨서 서울에 완전히 터를 잡았다. 서울 지리와 교통엔 익숙해진 터라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고등학교까지 다닌 대구는 어느새 기억으로부터 멀어졌고 나는 가족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갈 일이 없었다.
여의도는 내게 새로운 둥지였다. 증권사와 은행, 백화점 등이 밀집해 있고 거리의 분위기는 늘 활기찼다. 사람들은 대체로 옷차림이 깨끗하고 행동이 경쾌했다. 퇴근할 때면 비좁은 전철의 창가 너머로 한강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고 국회나 방송국, 공원 녹지도 지근거리에 있어 산책하기에 좋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좋았고 여기저기 나무가 많아 가을이 되면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일의 측면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특별히 관리해야 할 고객 명단이 늘어났고 주말이면 그들과 짝을 이뤄 골프를 치러 가거나 작은 소모임에 참석해 새로운 이를 사귀었다. 증권사의 업무란 결국 사람 사귀는 일이 중심축에 있어 나는 그러한 활동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업무의 연장이었고, 골프클럽이나 고급 바 등에서 늘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야 했다.
나는 충정로에 있는 작은 연립주택을 전세로 계약했고 그곳에서 죽 살았다. 출퇴근은 지하철을 이용하면 되었고 내 차 따위는 필요없었다.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가면 그만이었고 내 소유의 차가 없어도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간신히 시간이 나면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를 몇 번씩 돌려 보았고 행크 윌리엄스나 마일스 데이비스를 들었다.
직장에서는 그럭저럭 실력을 인정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크게 근태 위반, 업무 결격 사유란 걸 만들지는 않은 정도였다. 팀장이나 본부장이 요구하는 것에 거부하는 일이라곤 없이 순응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온순한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나 말고도 거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이 열심히 했고 우린 마치 한배를 탄 선원들처럼 함께 항해를 하면서도 또 각자의 노를 저어가야 하는 기묘한 운명의 동지들처럼 여겨졌다. 사내에 특별한 친구는 없었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이런저런 사내 고충을 나누는 정도의 얕은 관계가 전부였다 - 나는 그 이상으로 인간관계의 진도를 나가고 싶지 않았다. 더러 퇴근 후 모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엔 그들도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다.
직장을 잡은 뒤 한동안은 여자를 사귀지 않았다. 나와 가깝게 지내고자 하는 여자들이 없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들을 정중히 밀어냈다. 꽃을 책상 위에 두든가 메일을 보내든가, 저녁을 같이 먹을 생각이 없냐고 은근히 데이트 신청을 하는 이들, 심지어 몇 달 동안 집 앞까지 찾아온 여자도 있었다.
저는 그럴 형편이 못 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몇 년 간 이어지던 그 모든 구애를 모른척했다. 우선은 여자와 시간을 보낼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그럴 여력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입구가 없는 작은 상자 같은 것 안에 꽉 갇혀 있는 신세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더 이상은 여자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런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낯선 여자에게 나를 드러내고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동균이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 이제부터 만남을 시작해 볼까요? 그렇게 하면 되는 건가? 나는 이제 여자와 만남을 시작하는 방법도 잊은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여전히 대학 시절 김지연이 나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영혼은 긴 밧줄에 매달린 채로 여전히 나를 - 하고 있는 것인지도.
1년에 한번은 대학동문회에서 정기적으로 문자나 메일이 왔다. 한양대학교 동문 모임을 합니다. 졸업생 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받자마자 지워 버리고 메일은 읽지도 않고 삭세했다. 생존자 10명 중 한두 명이 모임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나머지는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들 중에는 나도 포함되었으리라.
서른다섯 살쯤 딱 한 번 여자와 동거를 했다. 그녀는 스물일곱 살로, 삼성 홍보 부서에 입사한 지 막 1년쯤 된 시점에 비서실로 자리를 옮긴 터였다. 우린 우연히 술자리에 합석해 가까워졌고 몇 번 식사를 한 뒤 잠자리를 가졌다. 비가 많이 내리던 밤이었고, 우리 둘 모두 많이 취한 채로 근처 호텔로 향한 것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옷을 벗었고 나는 그녀의 몸을 제대로 어루만질 시간도 없이 사정해 버렸다.
그녀는 풍성한 머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할 줄 알았고 대담했으며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 메이크업도 그저 방바닥에 앉아 작은 거울을 하나 놓고 슥슥 그리는데 풍성한 색조를 활용해 자신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냈다. 일할 땐 블라우스나 선이 날카로운 슬랙스 혹은 롱스커트를 즐겨 입었고 날씨가 추워지면 파스텔색의 가디건이나 멋스러운 재킷을 걸쳐 입었다. 집에 있거나 나와 데이트를 할 땐 오버사이즈 아우터나 그래픽 티셔츠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청바지나 레깅스, 후드티 같은 캐주얼 차림도 좋아했다. 크고 화려한 주얼리를 좋아했고 핸드백이나 부츠를 사는 데 돈을 썼다. 흔한 유행을 따른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연출해 낼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 같이 살아 볼까?
육체관계를 가진 바로 다음 날 그녀는 전화로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나쁘지 않지, 하고 대답했다. 그녀가 더플백에 짐을 싸서 충정로에 있는 내 빌라로 들어왔고 동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여자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낯선 체험이 그런대로 흥미로웠다. 특별히 생활 습관이나 방식에 큰 차이가 없었고 어느 정도 각자의 영역, 경계를 존중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대체로 그녀가 요리를 맡았고 나는 청소를 했는데 이러한 역할 분담에 갈등은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 조금 일찍 와서 저녁을 준비했고 우린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영화를 보며 수다를 떨었다. 거의 매일 섹스를 했고 그건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워낙 술을 좋아하는 탓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고 현관문 앞에 쓰러져 잠들어 있거나 이름 모를 낯선 남자 등에 업혀 문앞까지 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다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 뒤 집을 나섰는데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슬슬 못마땅하고 고약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그녀에게 정중하고 예의바른 동거인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처음에 그녀는 얌전하고 온순한 태도를 보였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나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을지도 몰라, 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연락이 뜸해지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그녀와 멀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이제 이 생활을 정리하는 게 좋겠어.
나는 점심을 먹은 뒤 조금 일찍 회사로 돌아와 빈 사무실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좋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날 집에 들어가 보니 그녀의 짐은 모두 정리되어 없었다. 그녀가 일찍 들어와 가지고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타인과의 동거란 그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구든 함께 머물다가 예약된 여정의 기간을 마치면 헤어져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거기엔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도 남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6개월 남짓 짧은 여정이 끝나고 그녀는 떠나버렸다. 나는 그녀가 간청하며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새롭고 흥미로웠던 관계, 친밀하고 다정한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런 후회도 없다는 듯, 뒤돌아보지 않고 손도 흔들지 않고 떠나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머쓱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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