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리포터 덕질을 시작한 중1 딸

by 김정은

어떻게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지?


정말 기가막히게 재밌고 환상적이야!


아빠 나도 노력만 한다면 해리포터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이번주에 딸래미가 내게 한 질문이다.


그럼,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활리도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처음부터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는 없어. 다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결과지.


나,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내 딸, 주 4회 저녁마다 수학과 영어 학원 수업을 듣는 중1 학생이다. 내 큰 딸래미 가장 큰 취미는 음악듣기다. 내가 아는 한 뉴진스 광팬이다. 좋아하는 걸그룹이 몇 더 있는데 얼마 전엔 이런 고민을 내게 털어놓았다.


큰딸 : 아빠,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이 몇 더 있는데 이게 덕질이란 게 시작해 보니까 장난이 아니거든. 시간도 들고 돈도 들어. 포카(포토사진을 일컫는 말인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사야지 앨범 사야지... .(사실 그렇다, 나, 딸래미 뉴진스 굿즈 사 주느라 꽤 돈 많이 들어서 잘 안다).


나 : 그래, 그건 아빠가 좀 잘 알지.


큰딸 : 그래서 고민이야. 뉴진스 말고 또 좋아지기 시작한 그룹이 있는데 덕질이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잖아. 시작을 해야 할지 아니면 아예 시작을 말아야 할지 그게 고민이거든.


나 : 그렇구나. 그야 뭐 너 좋아하는 대로 가야겠지.(나 속으로는, 아가, 지금 그 나이에 무슨 덕질 시작이니. 뉴진스 하나만으로도 아빠 지갑은 힘이 드는구나. 제발 다른 덕질 시작한다는 말은 말아다오, 라고 울부짖었다.)


큰딸 : 근데 그게 말이 쉽지 결정이 잘 안 된단 말이야. 지금 공부할 것도 많고 시간이 갈수록 없는데 내가 덕질을 또 시작하기는 좀 버거워서.


이때다, 싶었다. 나는 말한다.


나 :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네. 네가 결정할 수 있기만 하다면 뭐, 뉴진스 정도로 만족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누굴 또 좋아하기 시작하면 너 시간 감당할 수 있겠어? 아빠는 그게 걱정이 되긴 해.


큰딸 : 그렇지?


나 : 응.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으나 차마 그렇게는 못 한다.)


그렇게 해서 큰딸래미, 뉴진스 덕질만으로 만족하기로 결정을 내렸단다. 그런 딸애가 요즘 해리포터 이야기에 푹 빠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시청 중이다. 서점에 가면 해리포터 소설집을 산다. 거기에다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생겼단다.


큰딸 : 아빠, 나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 보고 싶어.


어느 날, 학원 수업을 마친 딸래미를 태우고 오는데 딸애가 말한다. 그게 어디에 있는 거니? 아마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에 있을 걸? 딸래미가 말한다. 그래? 그럼 일본에 있는 걸 먼저 가 보면 되겠네. 나는 딸래미에게 말했다. 내 대답을 들은 딸래미,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걸그룹, 보이그룹 좋아하는 거야, 다 그 나이 때 빠져들 만한 취미가 아닌가? 물론 나는 올드팝을 즐겨 들으며 컸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레이찰스나 사이먼앤가펑클, 비틀즈, 퀸 같은 걸 듣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나는 CD플레이어로 그런 음악을 들었다. 별난 애들 중 하나였으리라.


하지만 내 딸들, 걸그룹 노래를 즐겨듣는다. 뉴진스... 그리고.... 나머지는 잘 생각이 안 난다. 둘째는 내 차에 타면 BTS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듣는다. 이상한 일, 전혀 아니다.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딸 모두 해리포터 소설, 영화를 좋아한다. 두 녀석이 저녁만 되면 (혹은 오전 나절에도) 해리포터 시리즈를 반복해서 본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두 딸래미를 보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 큰딸래미 최애 캐릭터는 헤르미온느다.


스크린샷 2023-11-18 오후 3.16.59.png


큰딸 : 아빠, 나도 마법 학교 같은 거 있으면 다니고 싶어.


나 : 그럼 예일대를 가. 호그와트하고 아주 비슷해. 특히 예일대 식당은 아주 근사해.


큰딸 : 헤르미온느가 내 이상적 자아의 모습이야. 정말 예뻐.


나 : 너도 헤르미온느 만큼이나 아름다워.


큰딸 : 난 못생기지 않았을 뿐이지. 아주 평범해.


나 : 그렇니? 아빠가 볼 땐 헤르미온느 만큼 예쁜데.


흔히 아이들이 만화나 영화를 보면 걱정하는 부모들, 의외로 많이 봤다.


DALL·E 2023-11-18 15.36.13 - A scene of a young girl, around 10 years old, sitting on the floor in her living room, engrossed in watching a movie on TV. The girl has shoulder-leng.png


그런데 그런 걱정, 아주 쓸데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자, 풍성한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다. 나, 어렸을 때 영화광이었다. 20대 중반에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데엔 아마 그러한 과정이 쌓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나, 지금 이야기로 벌어먹고 산다. 뉴스도 결국 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아닌가? 거기에 나는 장편 6-7편을 썼고 단편도 10편 이상 썼다. 결국, 나라는 사람을 먹여살린 것도 앞으로 먹여살릴지 모르는 것도 이야기다.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사실은 모두 이야기다. 이야기의 가치란 사실 한 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라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이야기로 해석한다. 긴 이야기가 있고 자신을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류가 가장 많이 읽은 책, 성경도 결국 이야기다. 그러니, 이야기란 모든 이에게 있어 삶 그 자체이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형식인 것이다.


DALL·E 2023-11-18 15.36.07 - A cozy scene depicting a young boy, around 7 years old, lying on his grandmother's lap, listening to her tell a story. The grandmother, an elderly wom.png

내가 어린 시절엔 할머니와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야기가 내 감정과 이성의 밑바탕이다. 내가 가진 가치의 서열 체계, 철학, 도덕과 윤리 모두 이야기란 기초 위에 세운 것들이다. 이야기가 없다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틀, 관점도 희미해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역시 이야기다.


TV를 없애는 부모, 도대체 무엇으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TV를 버리지 말아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입으로 전달해 줄 자신이 없다면, TV만한 매체가 없다. 아이들은 TV를 통해 영화와 만화를 통해 이야기를 보고 듣고 상상하고 꿈꾼다.


요즘 아이들, 이야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책을 읽을 기회도 많지 않고 성장할수록 만화나 영화, 즉 이야기와 분리된다. 어린 시절, 성장기에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TV 가 집에 없다는 걸 자랑하는 부모들도 흔하다. 그거, 자랑 아니다. 이야기를 가장 편하게, 쉽게, 간단히 접할 수 있는 매체, 미디어, 수단, 단연 TV다. 활자로 된 이야기가 책인데 책만 능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이야기 미디어긴 하지만 어렵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특별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가장 좋긴 하나 문턱이 높다.


내 아이의 해리포터 덕질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우선 무엇보다 내년 여행지는 해리포터 스튜디오가 될 것이다. 이야기로, 내 아이들의 기억과 상상력, 철학 능력이 한층 풍부해지길 기대한다. 인생은 영어, 수학, 과학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삶의 가장 밑바닥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 타인의 이야기, 탁월하게 쓰여진 이야기,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 말이다.





*구독 부탁드립니다. 구독은 작가를 춤추게 하며 작가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독려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챗GPT소설, 3. 마치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다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