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 망할 수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듯하다. 이 친구, 자기 아이도 그런 신념으로 기른다. 그래서 초중고 시절(그 친구 아들은 지금 고2다) 내내 자기 아들을 (내가 볼 땐) 괴롭혀 왔다.
그렇게 하지 말고, 용기를 좀 줘라. 놀게도 해 주고.
나는 친구에게 말하지만 내 친구, 들을 생각이 없다.
내 친구의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친구를 잘 알기에 친구의 거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예측한다. 이 친구 늘 성실했다. 대학에 합격한 그해 겨울, 남들 다 놀 때 이 친구는 주유소에서 꼬박 세 달을 일해 돈을 모았다. 그 추위를 이겨내고 졸음과 싸워 가며 세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한 것이다. 대학에 가서는 장교 임관을 준비하며 매해 4.0이 넘는 학점을 받았다. 졸업 후 장교 임관을 하고 나선 줄곧 높은 평점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이 친구가 더 이상 군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그러더니 정말 그만두었고, 40 가까운 나이에 교대를 들어갔다. 그러더니 몇 년 공부하고는 초등학교 선생이 됐다.
그러니, 나는 이 친구의 성실성과 삶을 존경한다. 적어도, 타인에게 의지하거나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미루지 않는 투사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물론 정치적 견해도 나와 다르긴 하나 가장 다른 부분이 교육에 관한 것인데 이 친구, 유독 교육에 관해서는 타협점이 없다. 자기 자식, 자기가 알아서 교육시키는 것이니 딱히 불만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다만 보기에 안타까움이 있다.
내 친구의 아들은 지금 고2인데 들은 바에 따르면 전교 1등을 빼놓지 않고 해 온 모양이다. 제 아빠(내 친구)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시켜 온 탓도 있겠으나 내 친구 아들내미도 성실한 편이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서울대를 보내야 할지, 교대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친구는 말한다.
어딜 가든 본인이 해야지, 네가 아무리 아빠여도 네 아들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야 없지 않니.
나는 말한다.
그거야 그런데, 너도 알지만 인생이 쉽냐. 한 번 실패하면 돌이키기 쉽냐 이거지.
친구는 말한다.
늘 같은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지다 끝난다. 나는 더 이상 내 친구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사람 생각,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내 친구에게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생의 게임이 그것 하나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좌절감, 패배감은 쉽게 전염된다. 내 친구의 그러한 감정은 그대로 친구 아들에게 전염되었다. 내 친구 아들내미, 충분히 칭찬받을 정도로 잘하고 있는데도 표정이 밝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 보일 뿐이다. 적당한 양의 불안은 인간을 성장시키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인간은 적어도 십만 년 이상 수렵채집인으로 살았고 1만년 정도 농업인, 목축인으로 살았다. 우리 사회가 대학에 가서 취업을 해야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00년도 안 된 이야기다. 인간은 자신이 이룩한 것을 신앙처럼 절대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 어른들, 부모들이 딱 그러하다.
이 세계엔 여러 게임들이 존재하고 인간은 각자 자신이 하기에 적합한 게임에 참여해 승부를 봐야 한다. 게임엔 승리와 패배가 있는데 이것 또한 이분법적으로 갈라 이야기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사실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인 승리란 성장뿐이다. 승리의 본성은 성장이다.
대학에 가기 위한 서열 싸움은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 이 기본적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은 엄연히 냉정하게 받아들이되 지나치게 우상화해서는 곤란하다.
부모의 책임이란, 내 생각에, 궁극적으로 내 아이에게 유리한 게임이 무엇인지 같이 찾아주는 것에 있다. 학교 성적, 대입 성적은 수백만 가지 게임 중 하나의 게임일 뿐이다. 그게 의미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내 아이는 이 게임에 성실하게 임할 책임이 있다. 다만 그 게임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호들갑떠는 것은 환상과 허구가 진리인양 떠들고 다니는 거짓 선지자와 다르지 않다.
그게 전부가 아니란다. 네 인생에는 다양하고 무수한 종류의 게임이 놓여 있단다.
부모란, 그렇게 나지막히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목수도, 교사도, 기자도, 배관공도, 사무직원도, 벽돌공도 모두 훌륭한 게임이 될 수 있다. 내 아이의 자질과 소질, 능력과 역량이 어느 게임에 적합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계발되고 발견되고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 망쳐! 적어도 대학은 좋은 델 가야 뭐라도 해서 먹고 살 수 있어.
오늘도 이렇게 말하는 부모들을 본다. 이거, 거짓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요, 환상이다. 기껏해야 100년도 안 된 신앙에 왜 내 아이의 인생을 걸게 강요할까? 이 거짓 집단신앙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셀 수가 없다.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옳은 것을 전달해 주는 것, 이것은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가장 큰 책임이자 의무다. 남이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나는 그 거짓 집단신앙을 진실인양 내 아이에게 말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신앙의 대열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나부터 이건 아니야, 라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이길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게임이 반드시 있단다. 넌 그걸 찾아야 해. 내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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