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고통이다.
쇼펜하우어의 이 진단은 많은 철학자, 작가들을 매료시켰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 다룰 주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원래 고통인 삶을 우리 스스로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 즉 지옥을 더 지옥답게 만들고 있다는 것,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생애 주기별 지옥을 경험해야 하는 나라, 우리 나라다. 대학에 들어가서, 취업을 해서, 결혼해서 잠깐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해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삶이 지옥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개의 감정은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
퇴직하니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안고 있던 문제가 퇴직하고 나서 도드라진 것뿐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영문도 모른 채 경쟁에 내몰리고, 그 경쟁은 사실상 끝이 없이 이어진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데 취업해서 살았는데 퇴직하고 나면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 은퇴자들의 돈벌이 경쟁이다. 노인빈곤율이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에서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생은 지옥이다.
왜 그런 거죠?
좋은 질문이다. 여기에 답을 드린다. 눈이 있되 보려 하지 않고 귀가 있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졌음에도 바로 코 앞까지밖에 생각하지 않는 기묘한 동물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자의식, 만족 지연이란 오직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에 속한다. 그런데도 빤히 보이는 것들을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의 퇴직, 그래서 유난히 우울하다.
인생을 잘 살아왔는데, 퇴직하니 문제가 생겼어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내가 보기에, 그런 것 아니다. 사실은 시작부터 꼬인 것이다. 당신은 삶을 살아간은 데 있어 단 한 번도 제대로 승부수를 던져 보지 못한 것이다. 그 문제가 퇴직 후에 나타났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세대를 타고 계속 이어진다. 내가 그렇게 살았고, 내 아이도 그렇게 살도록 만든다. 나는 이것을 지옥 매뉴얼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것, 지옥 매뉴얼
지옥 매뉴얼
: 죽을 때까지 경쟁하라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인데 왜 사람들은 그 고통에다 고통 하나를 더 얹으려 할까? 안 그래도 고난과 역경이 불어닥칠 텐데 왜 스스로 고통과 고난을 만들어서 짊어질까?
대학이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다 알 만한 시대인데 대학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우리 아이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유다. AI, 우주공학, 첨단과학의 시대가 도래해 거의 모든 직업이 컴퓨터와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란 게 빤히 예측되는데도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일단 이거라도 하고 보자, 는 심리일 것이다. '그거라도 하고 봐야지'를 '그거 말고 다른 대안은 뭘까'로 바꾸는 결단, 그 결단은 만인에게 어려운 일인 듯하다. 이미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목도하면서도 그게 반드시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명확한데도 사람들은 동아줄 붙잡는 심정으로 그 경쟁에 치열하게 참여한다.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을 낭비해 가면서. 나아가 아이들의 유년기를 희생해 가면서. 아이들의 유년기를 지옥으로 만들어 가면서. 전통과 관습, 믿음의 힘이다.
이 모든 것, 사실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결과다. 깊이 생각하고, 문제의 원인과 결과, 본질에 대해 답을 구할 때까지 질문해 본다면 그리 어려운 쟁점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생이 달린 일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100년의 삶, 노년까지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은 원래 고통이다. 그런데도 애써 스스로를 극한의 고통으로 밀어넣으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답을 구할 땐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그 정보가 주는 메시지를 정리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 이 일을 하지 않는다. 게으르고 무심하고 그래서 결국은 무지하게 된다. 한 인간이 경쟁력을 갖고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측불허의 난관이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천국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문제는 이것이리라. 그렇다면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나에게 성공적인 인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2.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3. 지금 세계의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4. 나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5. 미래는 어떤 양상이고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퇴직이란 문제는 사실 본질적으로 시작의 문제다. 사람들은 이 문제가 잘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내게 닥쳐 온 일쯤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시작부터 꼬인 것이다. 퇴직이란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고민할 게 아니라 삶 전체를 두고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정답이 보인다. 나 자신이 그렇지 못했다면 내 아이라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삶 전체를 꿰뚫어 보려 하지 않는다. 당장 코 앞에 놓인 문제만을 해결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대학 경쟁을 시키고, 그 다음엔 취업 경쟁, 그 다음엔 은퇴자 경쟁에 참전하게 된다. 생애 주기별 지옥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인생의 참된 승부수, 인생의 목표가 필요하다
인생을 100년 단위로, 삶 전체를 통으로 놓고 해법을 고민한다면 결국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삶이란 것 자체가 내일조차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이다. 모험, 그게 삶의 본질이다. 인류가 수렵채집인어었던 시절부터 농업인, 목축업자이던 때, 그리고 산업화 시대 인류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안정을 불허한다. 자연과 질병, 사고 등은 인간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러니 안정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받아들이되 모험을 할 각오도 가지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다.
모험이 디폴트 값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답을 구할 땐 오직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들이 다 그리로 간다고 해서 정답이 아니다. 이는 군중심리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지옥이다. 결국은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공부도 체험도 경험도 여행도 모두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일 뿐이다. 그리고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어떻게 승부수를 던질까?
1. 자유와 자율성.
2. 유능감
3. 관계
심리학에서는 성공적인 삶의 심리적 조건으로 위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은 삶을 천국으로 만드는 세 가지 요소다. 아이든 어른이든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삶은 지옥이 된다. 그러니, 이 3가지를 충족시키는 교육, 이 3가지를 충족시키는 삶이 되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위 3가지를 지켜 가면서 자신에게 적합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즉, 장기 목표다. 10년 단위, 20년 단위가 아니라 평생 단위의 목표가 필요하다. 10년 단위, 20년 단위의 목표란 것도 평생 단위 목표가 정해졌을 때 의미가 있다. 공부라는 것도 그 목표를 이뤄가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공학이든, 문학이든, 의학이든, 법학이든 자신이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그 공부가 의미가 생긴다. 이러한 생의 목표엔 퇴직이 없다. 훌륭한 법률가는 변호사를 그만둔 뒤에라도 할 일이 많다. 훌륭한 교사는 퇴직 후에도 불러주는 곳이 많을 것이다. 왜? 그는 장기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같은 직종에서 일한다고 해도 장기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풍부한 식견과 통찰력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퇴직이 아니라 삶이다.
삶 전체를 통으로 놓고 승부수를 던져라.
늘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승부수를 던져라. 인생의 장기 목표를 세워라. 그러려면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행복한 일이 무엇인가? 이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의 조언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이란 것도 이러한 전제 위에서 적당히 이뤄져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 고민을 해야 한다. 취업도 이러한 기준에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퇴직을 한다 해도 당황스럽지 않을 것이다. 늘 해 오던 일, 장기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바탕 위에서 계속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쌓인 세월이 당신을 강하고 지혜있는 인간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가장 행복한 만년을 보내는 이들의 공통점은 돈이나 명예에 있지 않다. 물론 그것은 안정감과 유능감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삶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성공적인 삶의 필요충분조건은 오직 내 삶의 장기 목표, 내 생의 이유에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교육도, 공부도, 체험도 여기에 수렴되는 것이다. 그래야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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