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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Jan 13. 2024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행동을 해 놓고, 어떤 말을 하고서, 안 했다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 있다. 나는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참 할 말을 잃게 된다. 어떻게 하는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안 했노라고 거짓을 말하는데.


그 영혼은 불쌍한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 만큼 가엾은 것은 드물다.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품이 든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거짓을 말하라고 끊임없이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작은 이익을 탐하려고, 책임을 지지 않고 싶어서, 인간은 거짓을 말한다. 나는 그런 가엾은 존재를 이해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실은 진실과 거짓이란 종이 한 장 차이다. 인간은 그 종이 한 장의 너비를 뛰어넘지 못해 가엾은 동물인 것이다.


거짓도, 진실도 온전히 자기 결정이다. 당장엔 이 둘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손쉽게 종이 한 창 차를 무시한다. 거기엔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낄 필요가 없노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그런 합리화조차 불필요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합리화하려 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심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은 몸부림인 것이다, 합리화란. 


진실을 말하기로 결정한다면, 진실만을 말하기로 결심한다면 합리화는 불필요해진다. 거짓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 삶 자체가 완전히 다른 진로로 나아가게 된다. 위선을 멀리하게 되고 정의에 가까워진다. 그런 삶은 품위가 있다.


선한 의도와 의지를 가진 자는 철저하게 뿌리부터 악한 자들 앞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악으로 발끝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무장한 이들은 그 악을 완성하려 온갖 수단을 사용한다. 선한 자에게는 그러한 수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거의 모든 경우에 선을 누르고 이기는 것이다. 왜 선한 자들이 늘 패배하냐고? 그것은 선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선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에 패배를 무릅쓴다. 선 속에 이미 패배가 들어 있는 것이다. 악한 자들은 승리에 기뻐하면서 그래 내가 옳았어, 라고 스스로를 최면 상태에 빠뜨릴지 몰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승리가 아니다. 자신을 기만하면서 얻는 승리는 없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기만하는 무리들 가운데 그 패배를 받아들인 것은 소크라테스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누구도 짓밟을 수 없는 양심을 지킨 것이다. 구차하게 승리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그럼으로써 자기 양심을 살렸고, 구원받은 것이다. 그는 죽음으로써 선이 어떠한 영광을 가졌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승리로 기억하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모리배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승리한 것인가?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것을 통해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아쉽다. 내가 오늘 승리하는 것에 취해 있을 뿐 양심을 살리는 일, 진실을 말하는 것, 거짓을 멀리하고 세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에는 소홀하다. 왜 우리 아이들을 이러한 시류에 편승시키는가? 거짓은 자신 하나로 족하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거짓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교육의 뚜렷하고 명징한 방향을 말해주리라. 


한 문제를 맞히고 틀리는 것은 인생이란 큰 항해에 비춰보면 아무 가치가 없다. 거기엔 어떤 의미도 소망도 없다. 그러나 왜 배우는가? 이 문제에 대해 인식시키는 데에는 무한하고 뚜렷한 가치가 담겨 있다. 어떤 사상을, 어떤 분야를, 과학을 수학을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했을 때, 그 인간은 자신이 알게 된 것을 통해 인류를 행복하게, 더 교양을 갖춘 상태로 이끌 수 있다. 그러니, 학습이란 본래 이타적인 데 목적이 있다. 이것을 가르치지 않고서 교육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진실을 추구하고 거짓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품위가 있다. 그 길은 가치가 있다. 삶이 오직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은 그 삶을 가장 가치있게 보내야 한다는 의무를 정당화한다. 최선을 다하고 선과 덕을 더 널리널리 행해야 한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기 인생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까지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무주의란 그 정반대다. 오늘날 온갖 거짓과 야만, 악이 횡행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려는 용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진실을 잃어버리는 순간 내 삶에 악을 초대하는 것이다. 악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 안에 지옥을 건설하는 행위다. 나아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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