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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둘인데 이혼 도장을 찍었다

by 김정은

옛 동생을 만났다. 우린 20년 가까운 우정을 유지 중이다. 나는 입사해서 이 친구를 만났고, 그땐 내가 30대 초반, 이 동생은 20대 중반이었다. 이 친구는 지금 소방 안전 관리직에 종사 중이고 네 살, 다섯 살 딸이 둘이다.


우린 근 10년 만에 내 집 앞 중식당에서 만났다. 가끔씩은 전화 통화를 한 사이라, 그리고 옛 시절 같이 일할 때 워낙 가까웠던 터라 10년 만에 만나도 이물감이 없었다.


이 친구, 오자마자 말한다.


상의드릴 것도 있고...


상의할 일?


네, 그간 별일이 좀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랬다. 십 년 이상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다. 하지만 벌이는 시원찮았고, 그래도 성실하게 살면서, 아이 둘을 키우려 노력했다. 부인은 독박육아에 지쳤고, 정신과 치료도 받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재정적으로 윤택하지 않다 보니, 이 집은 홀로 사시는 시어머니댁으로 들어가 더부살이를 했다.


문제는, 이 친구의 처가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다니는 교회에서도 그런 말을 하고 다녔단다. 타인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안 시어머니는 크게 실망한 모양이었다.


이 친구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처의 관계도 썩 좋지 않고(부부 간 성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정적으로도 처의 씀씀이가 헤픈 편인 데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까지 나빠지니 고민이 깊었던 듯하다. 더구나 이 친구의 처는 싸움이 있을 때마다 '이혼하자'를 입에 올렸다고 한다. 친구는 그래도, 아이를 생각해서 내가 참자, 하는 식으로 버텼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었단다. 그래서 이혼 도장을 찍은 것이다.


저더러 섹스 중독이냐고까지 말하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인데, 그 말이 맞나요?


음.... .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으나, 내가 들은 바로 이 친구, 고민이 정말 깊었을 듯 싶었다. 나는 내 생각을 명료하게 건넸고, 동생은 나의 조언에 크게 고마워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제 좀 알겠어요! 정리가 되네요.


친구는 말했다.


무엇보다 아이들 걱정이 제일 커요.


그래, 하지만 아이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그 점을 알아야 해. 같이 살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더 안 좋을 수 있어. 가장 좋은 것은 같이 살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주는 거야. 하지만 그게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건 오롯이 너의 책임만은 아니야. 사람은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나게 되고 그때마다 선택을 해야 하는데, 지금 네가 그런 순간인 것 같아. 아이들에 관해서는, 같이 있든 따로 있든 본질적으로는 네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진심으로 표현하고, 스킨십 하는 게 중요해. 그게 본질이야. 그 본질이 지켜진다면, 상처는 있겠으나, 아이들은 언젠가 자기 힘으로 상처를 극복할 거야. 인간의 상처란 아물기 마련이고, 때가 되면 스스로 극복할 힘이 생기니까.


나는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면 세상 부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이혼 도장을 찍은 부부와 이혼 도장을 찍지 못한 부부. 물론 개중에 아주 가끔은 금슬 좋은 부부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극소수다. 사람은 서로 다르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타인과 함께 가는 것이다. 부부는 이 전쟁을 함께 치러 나가야 하는 전우다. 그러니, 이 관계 자체가 고통이고, 시련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동생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잘 살기를 바랐고,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랐다. 워낙 좋은 친구고, 성실하고, 정직한 친구여서, 나는 그를 많이 아꼈다. 그러나 인간사 누구도 알 수 없고, 미래는 나 자신이 개척하는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이 동생이,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든 현명한 선택을 내리고 지혜롭게 풀어가길 바란다. 그때그때 도움을 줄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란 본질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듣는 데서 출발하고 자기 목소리란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 만들어지니까.







김정은 작가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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