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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가 되면 누구나 남루해지나?

by 김정은

일요일, 오전 예배가 끝나면 우리 교회에서는 점심 식사를 같이 한다.


메뉴는 보통 잔치국수다. 내가 일주일 동안 먹는 모든 음식 중 최애 음식이다. 나는 잔치국수가 그리 맛있는지 평생 처음 알았다. 일요일 예배당에서 먹는 잔치국수는 최고의 맛이다. 도대체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멸치 육수에, 삶은 국수 면에, 몇 가지 고명이 전부인데도, 그 맛의 중독성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축복이리라.


나는 그 기쁨, 축복을 매주 일요일 점심에 누린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교인들 절반 이상이 70대다.


요즘 교회가 대부분 이렇다 한다. 젊은이들은 여러 이유로 교회를 찾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 교회, 노령화가 심각하다.


주일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노인들 천지다. 대부분 70살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나는 노인들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묘한 기운을 느낀다. 기묘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왠지 다운되고, 노인정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며, 기운이 쳐진다. 물론 이는 그저 주관적인 감정일 뿐이다. 나 역시 그리 젊은이라고 할 수 없으나, 우리 교회에서는 청년 중에 청년이다. 교인들의 평균 연령이 70살 정도 되다 보니, 마흔일곱인 내가 청년이 된다.


20대 때 나는 순수하고 정감있는 청년이었다.


누구에게나 말을 걸 준비가 되어 있고,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친구가 될 태도를 갖췄었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연민과 돕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쳤다. 제 주제도 모르고, 누구나 도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어느 순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거기엔 일정한 형식과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물에 빠진 누군가를 돕다가 자칫 나까지 같이 빠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도움은 섣불리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70대 할머니들로 가득한 식당 안에서 조용히 식사를 한다.


몇 주 전, 잔치국수를 다 먹고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는데, 웬 노인 하나가 내게 다가와서는 뭐라고 읊조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귀를 그녀의 입 가까이 가져다댔다.


이가 다 빠졌어요. 제대로 씹을 수가 없어.


그녀는 말했다.


아,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20대의 나였다면, 아마 그 할머니와 같이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나, 그러지 않는다. 나는 할머니를 그 자리에서 처음 봤고, 이 할머니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늘어놓는지 당황스러웠다. 조금은. 다만, 나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위로했다. 그녀는 입을 벌려 이가 빠져 드러난 잇몸을 보여주었다. 행색은 초라하고, 허리는 구부러졌다.


나이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형벌 같은 것이다.


물론 멋진 노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멋져도 노년은 그저 노년일 뿐이다. 몸은 굳고, 활력과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뿐이다. 죽음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늘 감사한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격언을 언제나 되새긴다.


나이든다는 것은 나 자신이 추하고 추레한 상태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쁜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몸은 늙고, 병에 취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조금이라도 노력해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 노년이어도, 어느 정도 기품을 유지하려면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젊음을 감사해야 한다.


젊음은 거저 온 것이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늙음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흐르고, 신은 인간에게 한계를 정해 놓았다. 우린 그 시간표 대로 살 뿐이다.


언젠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나 역시 타인의 눈에 추레하고 추한 한 명의 늙은이로 비춰지리라.


이는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철퇴를 내린다. 그때 조금만 덜 추하고 추레하고 싶어 나는 오늘도 역기를 들고, 러닝을 한다. 정신과 영혼을 살찌우려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독자들이여, 우린 아직 젊지 않은가? 이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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