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치라는 단어를 말하고, 매우 나쁜 것처럼 인식하는 것을 본다. 사치라고 하면,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부잣집에서 세상물정이라곤 모르게 자란 어떤 애가 루이비통 매장에 들어가서 몇백만 원은 족히 하는 명품백을 자기 부모 카드로 긁고 유유히 나오는 모습 같은 것.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것은, 사치라고 부를 만하다.
사치 :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그러나 이런 경우에 더 적합한 단어는 사치가 아니라 '철 없다'이다. 이런 광경은 그저 어떤 아이가 철 없이, 적절한 성장이 없이, 교양이라곤 없이 자라 어른이 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사치란 일반적으로 버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많을 때, 고가품 혹은 명품 같은 것을 분수에 맞지 않게 (빚 내) 계속 살 때를 의미할 것이다. 우리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별히 2030 사이에서 그러한 사치의 모습이 심심찮게 발견되노라고 미디어는 보도한다.
그러나 사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선, 나는 사치란 말에 별 관심이 없다. 불륜, 과도한 학원 수업, 고가 과외, 부동산 재벌 같은 말에 별 관심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다. 개개인의 삶, 생활은 저마다 다 별난 것이어서 별나다는 그것 자체가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이다.
저 사람은 이혼을 3번 했대.
새로 결혼한 여자가 30살 연하래.
30살인데 한남동에 100평짜리 집을 가지고 있대.
빌딩이 5채래.
잠을 3시간밖에 안 자면서 직원 100명이 일하는 회사를 소유했대.
이런 기사들을 본다. 사람을 만나면 다들 남 이야기다. 성공 이야기, 자산 이야기, 아이가 어느 대학 간 이야기, 의사가 됐다는 이야기, 재테크를 잘해서 노후 걱정이 없다는 이야기 등등.
나의 생각은 이렇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건 그저 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가장 크게 두는 것은 내 삶, 내 이야기다.
사치 풍조가 만연하다, 고 이야기를 하던데 이에 대한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쩌라고?
백 만원 버는데 버는 족족 다 쓴다? 나는 그런 이의 삶이 궁금하지 않다. 그건 그 사람의 이야기니까. 내가 알 수도 없고 알 방법도 없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사치를 하다 거지가 되든,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어 더 큰 사치를 하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다.
남 이야기에 너무 지나치게 빠지지 마시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실제로 그러하다. 남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정작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나의 삶, 나의 생활이 완전하지 않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신의 삶에 온전히 헌신하고 노력하고 의미를 구축하려 사는 사람은 타인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에게 의미있는, 가치있는 타인이란 오직 그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타인일 뿐이다.
나의 경우에, 내가 관심을 가져 온, 그래서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연구해 온 이들이란 대개 이런 사람들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도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정직하게, 헌신적으로, 시간을 보낸 사람들!! 수많은 작가들, 철학자들, 학자들이다. 그들이 뭘 사고,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어떤 집에 살았고 어떤 아내와 살았으며 어떻게 아이들과 교류했는지... 에 관해서는 관심이 크다. 나는 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것이 내 삶에 큰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사치에 관해, 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돈을 쓰는 편이다. 나는 사치란 것은 참 유치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렵채집인 시기의 인류, 호모사피엔스가 100명 내외의 무리 생활을 했던 시기, 10만 년 전 인류에게는 사치란 단어가 없었을 것이다. 화폐가 생기가 부와 계급이 생기면서, 사실은 집단 생산이 시작된 18세기 즈음부터 사치란 말이 본격적으로 그 의미를 가지게 됐으리라. 왕이, 왕비가, 부르주아가, 영주가, 귀족이 사치를 한다... 는 둥 하면서.
시간이 흘러, 중산층이 국가 경제의 허리로 등장하면서 이 사치란 말은 날개를 단 듯하다.
그런데 사람이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 돈을 버는 족족 집을 사는 데 탕진하는 것은 사치가 아닌가? 그 비싼 집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는 증거가 있을까? 아니, 그런 건 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생 전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산다. 어떤 사람은 책만 쓰며 삶을 산다.
뭐가 사치고 뭐가 검소인가? 웃기는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버는데 검소하면 훌륭하다고 말하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한 검소 자체가 훌륭하다는 말인가? 검소한 생활이 훌륭하다고 평가받으려면 다른 행동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가령, 그 사람은 재벌인데 검소해서 자신은 돈을 거의 안 쓰는데 전재산을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이럴 때엔, 그 검소한 삶의 재벌이 훌륭하구나, 말할 수 있다. 사실, 검소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의미, 어떤 가치도 없는 것이다. 돈 안 쓰고 그저 모으기만 하겠따는데 거기에 무슨 가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치도 조금 달라 보이겠지만 사실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사 속 문인들은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다 사치에 빠진 이들이다. 버는 것보다 소비가 많았던 경우는 허다하다. 카페에 가고, 살롱에서 술을 마시고, 여행을 가고, 값비싼 옷을 사거나 여행을 다니고 능력도 안 되는데 이웃을 돕거나 하여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는 흔한 일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길 만큼의 위대한 걸작을 남겼다. 그 사치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세상에는 내가 관심을 꺼야 할 단어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치니 검소니 하는 따위의 말은 솔직히 난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어떤 의미, 어떤 가치,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살고 있는가, 에만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을 하고 있는가?
오직 이것만이 내게 중요하다.